‘상하이자동차 먹튀 논란’으로 어수선한 주말을 보낸 후 맞이한 월요일(12일) 아침, KBS 라디오에는 해가 바뀌고 다시 시작한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이 흘러나왔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당면한 ‘경제 위기’만큼이나 심각한 ‘정치 위기’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주 저는 외국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서 참으로 놀랐습니다.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하고 서로 뒤엉켜 심한 몸싸움을 벌이는 우리 국회 사진들이 일제히 보도되었습니다”

청와대의 애청 프로그램이 KBS <개그콘서트>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새해 첫 라디오연설에서 국회 대치상황을 정면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 지난해 12월 28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방송법 개정안 반대 61%’화면. 지난달 27일 하루 동안 19살 이상 성인 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전화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다. (신뢰구간 95%, 표본오차 ±3%).
이미 지지난주 <개콘> ‘도움상회’는 국회의 대치 상황에서 ‘폭력’을 부각시켜 ‘폭력은 나쁘다’는 햇님반 달님반식 접근으로 ‘양비론’을 들고 나왔다. 이에 많은 시청자들은 한나라당의 직권상정 강행 등을 언급하며 ‘사태 본질도 모르는 채로 풍자하느냐’며 원성을 높였다.

그러나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개콘> ‘도움상회’보다 한층 퇴보한 수준의 논평을 내놓았다. 이날 연설문은 현재 국회 대립 국면을 ‘야당의 폭력’이라는 한쪽의 문제로 몰아세우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국제적인 경멸의 대상이 되다니, 대통령으로서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회의실 문을 부수는 해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때리고 제 머리와 가슴을 때리는 것 같이 아팠습니다”

외국 신문과 방송을 보며 놀랐다는 MB는,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안 단독상정으로 문을 걸어 잠가, 충돌의 원인을 제공한 상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민주당이 회의실문을 부순 상황만을 들어 가슴 아프다고 호소했다.

이어 상정조차 안하고 쏟아낸 새 법들에 대해 ‘법안처리가 늦어지면 피해가 서민에게 돌아간다’면서 한나라당식으로 야당을 협박(?)하고 나섰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촛불을 든 시민들의 ‘한나라당 날치기 법안 반대’ 구호는 청와대까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 지난해 12월 28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방송법 개정안 반대 61%’화면. 지난달 27일 하루 동안 19살 이상 성인 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전화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다. (신뢰구간 95%, 표본오차 ±3%).
“금년 1분기 3개월 2분기 3개월, 6개월이 경제가 가장 어려운 시기이고, 그래서 법안 처리가 더더욱 시급합니다. 법안처리가 늦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특히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분열을 조장하고 통합을 가로막는 ‘정치적 양극화’야 말로 ‘경제적 양극화’ 못지않게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대통령의 ‘남 탓’ 인식이 강력히 작용한 때문일까. 최근 한나라당의 대응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FTA 비준안 단독상정일 사태와 관련 민주당의 문학진 강기정,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이정희 의원에 대해 지난 9일 의원직 사퇴 촉구 결의안을 제출했고, 박계동 국회사무처장은 이들을 검찰 고발한 상태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정활동 지원을 맡고 있는 국회사무처가 유례없이 ‘야당 공세’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자 민주당도 이에 맞서 박계동 사무총장 등을 맞고소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임채진 총장도 “국회 자율권은 최대한 존중돼야 하지만 충돌 사태와 관련된 고소·고발이 접수된 만큼 그동안 유지해온 엄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되,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소속 정당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라”고 서울남부지검에 지시했고,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 12일, 문학진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노당 의원에 13일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이런 식이라면 이 대통령의 ‘정치 위기’ 걱정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분열을 조장하고 통합을 가로막는 정치권의 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그의 연설은 오히려 ‘분열에 기름을 붓는 격’인 형국이다.

이날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진보신당은 “청와대에 앉아서 정국을 파탄 지경에 몰아넣고는, 자신은 고결한 양 정치권을 질타하는 모습은 참으로 정직하지 못하다”면서 “시비는 먼저 걸어 놓고 자신이 다쳤다고 병원에 드러누워 목청을 높이는 자해 공갈단의 수법을 즐기는 대통령, 그 분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국민들은 고달프다”고 논평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이날 연설과 관련 “국회 사태의 근원적인 발단은 이명박 대통령이 MB악법을 밀어붙이는 데서 출발했다”고 지적하면서 “또한 실질적 발단은 12월 18일 한나라당이 외통위를 점거하고 경위까지 동원해 봉쇄한 데서 시작한 것 아니냐”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유발된 데 대해 야당 대표로서 누차 사과의 뜻을 표했지만 지금까지 한나라당 책임있는 인사가 사과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면서 “참으로 양심없는 태도”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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