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어청수 경찰청장이 잘리는 모양이다. 어제 오늘 어 청장이 나름대로 멋을 부린 발언 하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이다. 우습다. 이런 발언을 지금같이 사실상 퇴진확정 보도가 나올 때 해야만 ‘멋있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우습다. 본인이야 ‘의연하고 당당하게’라는 이미지까지 고려했겠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국민들은 20여년 만의 대규모 궐기였던 ‘촛불문화제’를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방방곡곡에서 펼쳤다. 그 때마다 최루탄을 섞은 물대포를 시민들의 얼굴을 향해서 퍼부었고, 촛불 든 시민들을 동네 강아지 때리듯, 몽둥이로 치고, 군홧발로 밟았다. 심지어 조계종 총무원장 차를 수색하고, 기독교 선교사 역할까지 자처함으로써, 불교계가 전국 집회를 몇 차례 열 수밖에 없도록 ‘토끼몰이’하듯이 몰아갔던 장본인 어청수 청장이 ‘자리에 연연치 않겠’단다.

▲ 경향신문 1월10일자 6면
지난해 가을 불교계가 전국적인 궐기를 시작하면서 어 청장의 퇴진 요구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터져나오기 시작함으로써 상당한 퇴진 여론이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리를 내놓을 수 없다’는 듯이 버텼던 어 청장. 그가 이미 청와대 고위층에서도 ‘버린 카드’로 취급하는 보도가 속속 터져나오는 와중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언론사들과 인터뷰하는 모양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 불편하다.

자리에서 쫓겨나는 공직자들을 수없이 봐 왔다. 퇴진 직전에 그들이 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중 가장 같잖은 특징이 ‘조직을 위한 길이라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발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혹시 임명권자가 마음 바꿔 유임시킬 가능성을 놓지 않고, 이벤트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어 청장의 입장에서 보면 검찰의 이번 ‘미네르바 구속사건’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길 사건일 수도 있겠다.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텨 보자’며 세간의 퇴진압력을 오롯이 거부하며 ‘국민과 여론을 보지 않고 임명권자를 향한 맹목적 충성심을 보일 수 있는 아주 기막힌 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터. ‘미네르바의 체포와 구속’을 성사시킨 임채진 검찰총장이, 어 청장 입장에서는, 참으로 부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특히 임채진 총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한, 굳이 분류하자면, ‘노무현 사람에서 이명박 사람으로 전향한 인사’이다. 아무리 전향한 인사라고 할지라도 충성심에서 보면, 어청수만 못하고, 업적에서 보더라도, 촛불문화제를 폭력진압한 어청수만큼 높이 평가받을 수 있으랴.

하지만 인사철에 결정적인 공적을 쌓아야 임명권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데, 바로 그 결정적인 국면에 ‘전향한’ 임채진 검찰총장이 덥석 미네르바를 체포·구속하는 공을 세움으로써,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중 한 명은 물러나야 할 시점이면, 졸지에 임 총장이 아닌 어 청장이 물러나야할 처지에 빠진 듯하다.

미네르바의 체포와 함께 어청수 청장 퇴진 기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이제는 ‘사실’인양 굳어지고 있다. 이 때 검찰은 굳히기 한 판이 필요했던 모양. 임채진 총장을 지키기 위해서 ‘미네르바 체포’를 넘어 아예 ‘구속’까지 시키는 ‘쾌거’가 필요했고, 법원은 그래도 경찰보다야 아무리 싸우고 다퉈도 검찰이 안으로 굽는 팔이라고 판단, 검찰이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쾌거’에 부역하는 ‘구속영장 발부’라는 정치적 선택을 한 것으로 읽으면 과한 평가일까? 아니면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될 만큼 근거 없이 ‘공익을 해하는 추측’이 될까?

결과적으로, 미네르바, 그는 ‘1타3피’의 공을 세웠다. 하나는 검찰이 ‘미네르바’의 신상공개를 하면서 ‘이명박-강만수 경제라인’의 능력과 체면이 시궁창에 처박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어청수 경찰청장을 단칼에 날려버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마지막 하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태인지 잘 모르는 ‘민주화 세대들’에게 아주 좋은 사례를 제공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일보 전진을 위한 거름이 되었다는 점이다.

구치소에서 있는 미네르바. 국민들의 따뜻한 지지와 성원을 즐기는 진짜 ‘멋지고 당당하며 의연한 미네르바의 수감생활’이 되길 기원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