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검찰이 미네르바로 지목된 박아무개씨를 체포한 뒤, 언론들은 연일 미네르바에 대한 보도를 실시간으로 쏟아내고 있다. 조중동을 포함한 일부 언론들은 박씨의 실명을 공개하는가 하면 그의 주거지 정보를 비롯한 사생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공간’에 대한 조중동의 일관된 논조는 익숙하다 치더라도, 조중동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왔던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미네르바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9일치 경향신문의 보도는 박씨의 사생활에 초점을 둔 채 비본질적 접근을 한 ‘조중동스러운’ 보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박씨의 주거지 사진과 이웃, 친구, 나아가 대학교수까지 동원해 박씨가 어떤 사람인지를 조명한 경향신문의 보도는, 어제치(8일) 중앙일보를 보는 듯한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경향신문은 4면 <고교동창 “그는 평범했던 친구”>에서 “‘미네르바’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청년이었다”고 보도했다.

▲ 경향신문 1월10일치 4면(종합).
경향신문은 이웃 주민들의 반응부터 시작해, 박씨와 3년 동안 고등학교 같은 반이었던 김모씨와 고3때 담임을 맡았던 신모 교사의 반응까지 덧붙였다. 박씨의 대학 시절에 대해서도 “경제에 대한 관심 역시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2학년 1학기 때 교양선택으로 ‘지구촌 경제사와 직업세계’란 강의를 수강한 것이 전부였다”고 학점까지 친절하게 보도했다.

경향신문 보도의 조중동스러움은 박씨의 대학시절 지도 교수인 방아무개 교수의 코멘트에서도 잘 드러난다. 계속해서 박씨의 경제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뽑아내고자 하는 감각이 보이는 대목이다.

“박씨의 지도를 맡았던 방모 교수는 “학교에 96년부터 근무해서 초창기 학생들은 기억에 많이 난다”며 “박씨는 특징이 많지 않았지만 성실했고, 열심히 했던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경제 부문에 대한 소양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타입도 아니었다”며 “공학하는 사람이 경제학을 충분히 이해해서 다음어진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정말 많은 노력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경향신문의 모든 미네르바 관련 보도가 조중동스러운 것은 아니다. 경향신문은 3면 <고소없이 수사 ‘사이버 모욕죄’ 추진… 더 악용 소지>에서 미네르바 수사를 계기로 한나라당이 추진하려고 하는 ‘사이버 모욕죄’의 위험성을 부각시켰으며, 같은 면 <미네르바 열풍, 李정부 신뢰상실 탓>에서도 정부 경제 정책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보도로 주목받은 경향신문의 보도라기에는 4면에 실린 기사는 무척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조중동의 미네르바 관련 보도를 비판하고, 검찰이 주장하고 있는 미네르바의 혐의 사실의 진위여부에 대한 보도를 경향신문에 요구하는 것은 분명 지나친 게 아닐 것이다.

한겨레 “미네르바의 글이 공익 해할 목적이었나?” 의문 제기

반면, ‘학벌 지상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미네르바 구속 수사에 의문을 제기한 오늘치 한겨레 보도는, 박씨의 사생활과 지인들의 코멘트로 도배를 한 대다수 언론 가운데 유독 빛이 난다.

한겨레는 3면 <‘공익 해할 목적’ 희박… ‘구속수사’ 무리수>에서 검찰의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에 의문을 제기했다. 검찰이 박씨에 대해 전기통신기본법 47조1항(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위반 혐의를 두고 있지만, 박씨의 글이 공익을 해할 목적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한겨레는 또 4면 <당시 정부 ‘오프더레코드’로 “외환시장 개입” 브리핑>을 통해 검찰이 문제 삼고 있는 지난해 12월29일치 미네르바의 글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겨레는 “정부가 당시 외환시장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미네르바의 글이 나오기 전, 외환당국은 수출입 기업과 금융기관 등에 달러 매수를 하지 말도록 협조를 요청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고 지난해 12월24일 기획재정부 외환정책 당국자의 비보도 전제 요청 사실을 밝혔다.

▲ 한겨레 1월10일치 4면(종합).
한겨레는 나아가 4면 <‘'학벌 낮으니 속았다’…또 드러난 ‘간판사회’>를 통해 미네르바 수사를 계기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학벌 지상주의’를 지적하며 “9일 일부 언론은 ‘공고 전문대 졸업’ 학력을 거론하며 ‘돌팔이 의사에게 당한 꼴’이라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그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고 비판했다.

▲ 한겨레 1월10일치 4면(종합).
한겨레의 이같은 지적은 오늘치 중앙일보 사설 <‘미네르바’ 계기로 인터넷문화 성숙돼야> 에도 적용할 수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정체가 30대 무직자 박모씨였다는 검찰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경제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익명으로 정부의 경계 정책을 비판하면서 인터넷 스타로 떴다는 사실은 사이버 문화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앙일보는 이 짧은 한 단락 안에서 △미네르바의 정체가 30대 무직이라는 점에 놀랐고 △경제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익명으로 정부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는 점을 지적했고 △이같은 사람이 인터넷 스타로 떴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통틀어 ‘사이버 문화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사의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방송법 개정안 통과에 열을 올렸으나, 언론노조를 비롯한 거센 반대 여론으로 결국 방송법이 통과되지 못하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던 조중동. 그러나 ‘미네르바’ 체포 이후 상당히 들뜬 표정을 지면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참에 인터넷 공간의 폐해와 문제점을 지적해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사이버 모욕죄’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행보도 조금씩 보이고 있다.

현재 조중동을 비롯한 많은 언론이 박씨에 대한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은 채 그들 나름의 ‘국민의 알권리’라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언론으로서의 정도를 걷되, 미네르바의 글이 진짜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인터넷에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보도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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