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근처에서 늦은 밤 혼자 걸을 때마다 들르는 곳이 있다. 길가 한 중간에서 바람에 날리고 있는 ‘사주·역학’이 적힌 천막을 젖히면 당황해하며 엉거주춤 인사를 하는 점쟁이가 있다. 목소리도 가늘고 말끝마다 ‘~하거든요’라는 수줍은 말투를 쓰는 그 젊은 남자는 힐끗 쳐다보기만 해도 용한 점쟁이는 절대 아닐 거라는 확신을 주는데 실제로도 그가 미래를 맞힌 적은 거의 없다. 게다가 갈 때마다 요즘 새로운 사주 해석을 해보는 중이라며 예언은커녕 “이건 맞나요?”라고 묻기까지 하고 어떤 날은 자신의 사주를 한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그 천막을 열고 들어서는 이유는 단 하나, “정말 그럴까요?”라고 되묻는 말에 언제나 “제가 사람 사는 걸 어떻게 다 알겠어요”라고 웃으며 돌아오는 대답을 듣고 싶어서다. 이상도 하지, 그 흔해 빠진 말을 점쟁이인 그에게서 듣고 나면 돌아오는 길이 홀가분해진다.

국내에서도 몇 백 만부가 판매되어 와인 열풍을 일으키는데 일조한 만화 <신의 물방울>이 발행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나 올해는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방영될 예정이다. 음식만화의 경전과 같은 <맛의 달인>이나 풍류의 도락을 가르치는 <오센> 등 이미 판매부수가 보장되는 음식만화들이 술을 부분적으로 다루기는 했지만, 술 만화가 하나의 전문 장르로 등장한 것은 제조의 장인을 다룬 <명가의 술>이었고 그 성공을 알린 것이 바로 <신의 물방울>이다. 와인에 대한 지식과 풍부한 표현으로 와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12사도라 불리는 최고의 와인을 찾는 여정이라는 줄거리를 통해 재미를 놓치지 않았던 이 만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10권도 채 되지 못해서 진부해지고 말았다. 그 진부함의 이유는 비슷한 시기에 발행되어 조용히 12권을 넘기고 있는 또 다른 술 만화 ‘바텐더’를 통해 찾을 수 있다.

▲ 만화 <바텐더> ⓒ학산문화사
‘바텐더’는 프랑스에서 ‘신의 글라스’라 불리며 이름을 떨치던 바텐더 사사쿠라 류가 일본으로 돌아와 여러 바를 거치며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마시는 칵테일에 대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진다. 미리 배수의 진을 치자면, 소개만 봐도 밋밋하기 짝이 없는 이 만화는 고민을 안고 있는 손님이 찾아오고 주인공이 해결한다는 에피소드의 고만고만한 반복과 칵테일의 의미를 소개하는 바텐더의 말 한마디로 갈등이 해소되는 참으로 만화적인 결론과 교훈적인 휴머니티의 지겨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 ‘바텐더’의 장점은 ‘인간은 바텐더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다. 바텐더라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라는 전제에서 나온다. ‘바는 나무, 텐더는 부드러움’, 술잔을 내려놓는 딱딱한 널빤지를 상냥하게 만드는 것이 ‘부드러운 막대기’인 바텐더고 그것은 사사쿠라 류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칵테일을 마시고 돌아가 자살한 손님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손님을 대할 때마다 자신의 진지한 ‘참견’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알지 못해 다른 바텐더 앞에 혼자 앉는 한 명의 손님이기도 하다. 이 만화를 읽는 것은 그렇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한 진지함과 성실함을 지켜내면서도 타인과 만나 서로가 서로를 흔드는 조우의 순간을 거절하지 않고 그 순간을 통해 삶을 배워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신의 물방울’은 사람을 매개로 술이 풍부해지지만, ‘신의 글라스’는 술을 매개로 사람이 풍부해지길 바란다.

이 만화에서는 바의 기원을 ‘갱들의 은신처’라고 말한다. 그래서 ‘바텐더’는 아직도 삶이 거친 사람,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지켜나가는 싸움이 아주 가끔 조금만 상냥해주길 바라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병에 걸렸지만 치료를 거부하고 독한 럼을 마시지 않고는 죄책감에 잠들 수 없는 마리아 멘도사의 에피소드는 아르헨티나의 저항 가수이자 고난받는 이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누에바 깐시온의 기수 메르세데스 소사를 모델로 한다.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녀에게 사사쿠라 류가 건넨 말은 “하지만 그 그릇이 깨지면 영혼도 쏟아진다”는 참 시시한 것이었지만 그녀가 생명을 원하게 만들고 다시 Gracias a la vida를 노래하게 한다.

비록 바는 아니지만 내가 길거리 점쟁이에게서 얻는 것 역시 삶 그 자체에 대한 욕망이다. 아직도 사는 법을 몰라 헤매지만 점쟁이도 모른다는데! 그런 엉뚱한 낙관으로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언제나 늦지 않았다. Gracias a la vida 인생이여,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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