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아무리 문화산업의 꽃이라 한들 아직 그 노동은 춥고 그 이름은 여전히 천진난만하다. 그 간극 속에서도 유희를 멈추지 못하는 만화애호가들의 ‘차떼고 포뗀 2008년의 만화’를 펼쳐 본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화방에 앉아 있어도 못본 만화가 쏟아지고 웹툰이라는 새로운 만화장르가 시작된 지도 십여년,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만화의 열락을 즐기고 있지만 아직도 40대 노동자가 된 ‘2003 공룡 둘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또 무슨 헛헛함이람. 이 주말, 한 번에 담을 수는 없는 ‘나를 키운 팔할의 만화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며 어느 비오는 주말을 기약한다.

지난해 말, 네이버 게시판에 어느 중학교의 화장실 사진이 등장했다. 수많은 네티즌들을 ‘움찔’하게 만들며 꿈의 화장실이라 불렸던 그 화장실에는 문마다 네이버의 유명 웹툰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인터넷만화의 1세대로 불리는 <스노우캣>의 등장 이후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작가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펌질’하며 보았던 웹툰은 포털 사이트 내 킬러 콘텐츠가 되었고 돈 안 되는 그림이나 그린다고 집에서 구박받는 폐인의 일상을 공유하던 작가들은 문화산업종사자가 되어 있다. 바야흐로 웹툰의 시대, 그 수많은 이름을 다 불러볼 수는 없겠지만 사무실에서 입술을 깨물며 스크롤바를 내리게 만든 대표 선수들을 호명해보자. 웹툰의 강자 네이버 VS 다음, 부르고 나니 마치 대원 VS 학산 같다.

네이버 : <마음의 소리> & <입시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

▲ 조석의 <마음의 소리>
초기 네이버 웹툰을 성공적인 콘텐츠로 안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골방환상곡>의 워니는 집안도 외모도 능력도 보잘 것 없는 계급적 기호를 드러내는 주인공이었다. ‘엄친아’라는 유행어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연재 중단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정치적 입장을 만화 속에서 다루었기 때문이라는 루머를 공식 해명하는 헤프닝이 일어난 것도 워니라는 주인공이 가진 기호가 사회적으로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회당 조회수가 250만이 넘는 조석의 <마음의 소리> 역시 육각형의 큰 얼굴을 가지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통닭집 막내아들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 만화는 <골방환상곡>처럼 백수를 기호화하는 대신 루저의 감수성을 표방하고, 오히려 자신이 가진 사회적 조건을 더욱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서 무화시키는 웃음의 전략을 선택한다. 마음의 소리, 그것은 우리가 가진 사회적 박탈감과 그것에 대한 욕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의 지점이다. <마음의 소리> 주인공은 방 안에 앉아 “난 시크한 도시 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라는 멘트를 날린다. 그리고 그 방은 얼마 전 바퀴벌레들이 주인공을 보며 “우주의 아침을 여시며! 생명을 꽃피우는 창조주님!!”이라고 찬양하던 방이다. 댓글의 대부분은 작가 조석이 오늘 웃겼는지 웃기지 않았는지에 대한 판정이다.

▲ 김규삼의 <입시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
김규삼의 <입시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는 오히려 사립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입시경쟁과 사학비리, 체벌 등의 사회적 문제를 빼어난 말솜씨로 시니컬하게 다룬다. 이사장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고 훈시하며 가족에게 매점운영권을 넘겨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형편없는 급식을 제공하며 “학교의 주인은 학생입니다”라고 반발하는 학생에게 깔끔하게 “착각하고 있나본데, 학교의 주인은 나에요”라고 정리해준다. 수학교사는 모든 것을 체벌로 귀결시키고 국어교사는 학생에게 멋진 상담을 해준 후 고액의 상담료를 받는다. 그리고 재벌 아들인 학생 김영수는 “아빠, 난데”라는 전화 한통으로 교사를 자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유일하게 비판을 제기하는 학생인 불사조는 그러나 전교1등에 수능은 만점을 받았으며 아무리 비관자살을 해도 죽지 않는 신체를 가지고 있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루지만, 승자는 언제나 이사장이고 교사고 김영수다. <정글고>는 비판적인 지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무기력하게 복종시킨다. ‘비판 다 했으면 공부하러 가라’

다음 : 강풀 & 집단 풍경

다음은 강풀을 대표주자로 내세워 만화의 서사성을 웹툰에서도 유지하고 있다. 2003년 순정만화에서 2008년 이웃사람까지 강풀은 웹툰에서 컷에 대한 가장 뛰어난 연출력을 가진 작가다. 그의 작품은 끊임없이 영화화되었고 웹툰이 가진 문화콘텐츠의 가치를 인정받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의 연이은 실패는 강풀의 장점인 만화적 연출력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만화가 가지는 여백의 풍부함을 문제의식과 대사가 따라가지 못한다. 특히 그의 정치적 올바름은 그 단순성을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연출한다. 매번 그의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게 되지만 그 감동은 ‘옳은 것이 옳다’의 반복이다. 강풀은 가장 대중적인 웹툰 작가인 동시에 가장 상투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 집단 풍경의 <에스탄시아2>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집단 풍경의 ‘에스탄시아’는 SF의 치밀한 서사적 구조가 웹툰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뛰어난 사례로 미국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현재 속편을 연재 중인 <에스탄시아>는 이상향으로 가는 열차탑승객들의 모험을 그린다. 출발지가 되는 사키아는 기억이 지워진 에스탄시아의 죄수들이 모여 사는 도시, 이 도시를 벗어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에스탄시아로 가는 열차를 타는 것만큼은 허용되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열차를 탔지만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래된 도서관의 사서 케이가 탑승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스탄시아>는 배경에서부터 각각의 에피소드까지 SF가 주는 자유로운 상징을 마음껏 구사해 그 철학적 무게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작화와 채색까지도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웹툰의 시대라고 해서 만화작가의 등용문이 넓어진 것은 아니다. 작가들은 이 양대 포털과의 계약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각 포털은 사이트의 아이덴티티에 따라 콘텐츠 전략을 달리하고 있다. 네이버 웹툰에서 보이는 정치적 순결성과 다음 웹툰에서 보이는 정치적 올바름은 작가들의 경향을 보이지 않게 몰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더욱 뛰어난 상상력과 발랄함을 가지고 각개각진하고 있는 작가들을 찾는 것은 오늘도 새로운 만화를 찾아 인터넷을 뒤지고 있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P.S, 네이버가 대표 작가들 대부분이 신비롭고 무의미한 말놀이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제발 정부의 정책 홍보용 만화를 만드는 것만큼은 사양해주었으면 좋겠다. 정책 홍보용이라서 볼썽사나운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담는 순간 그들의 ‘센스’는 사라지고 초라한 그림만 떠다니는 그 전락을 견디기가 좀 힘들다. (우리 오빠한테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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