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치 조중동의 ‘미네르바 체포’ 보도는 남달랐다. “경제 전문가를 가장한 전문대를 졸업한 30대 무직자에게 휘둘렸다”는 보도 태도는 지난해 촛불부터 익히 보아온 ‘인터넷’에 대한 조중동의 인식과 정확하게 궤를 같이 한다 치더라도,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박아무개씨의 프라이버시를 철저하게 묵살해 버린 오늘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는 유독 튀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검찰 발표로 “전문대를 졸업한 30대 무직”이라고 알려진 차원을 훌쩍 넘어 실명을 공개했고, 사진을 통해 그의 주거지까지 공개했다. 그의 출신 학교가 이니셜로, 그가 사는 구, 동 호수까지 보도됐다. 나아가 박씨의 구체적 신체 조건과 차림새가 묘사되었으며, 여동생과 동네 주민들의 코멘트까지 동원돼 지면을 더욱 ‘풍성’하게 장식했다.

▲ 조선일보 1월9일치 5면(종합)
검찰은 미네르바에 대해 지난해 12월29일 다음 아고라에 올린 정부의 긴급 업무 명령과 관련한 내용을 문제삼아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으로 지난 7일 긴급체포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미네르바의 혐의 내용이 아닌 그의 사생활에 초점을 맞춰 ‘비본질적’ 접근을 했으며,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실명과 사생활을 노출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마치 확정판결이 난 죄인처럼 오인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조선일보는 1면 <‘미네르바’ 체포…인터넷에 허위 사실 유포 혐의>에서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박아무개씨의 실명을 공개했다. 5면<“경제 獨學한 30세 무직男”>에서는 검찰의 발표를 인용, 이니셜을 통해 학력과 대학에서의 전공을 보도했다.

조선일보 실명 보도의 영향은 컸다. <매일경제> <머니투데이> <아시아경제> 등도 기사에서 박씨의 실명을 공개했으며,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도 나아가 논평을 통해 실명을 공개했다.

중앙일보의 보도는 실명 공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프라이버시 묵살의 절정을 이룬다.

중앙일보는 2면 <검찰 “돌팔이 의사에 당한 꼴”>에서는 구체적인 키, 안경을 비롯한 옷 차림새 등 박씨의 신체 조건과 겉모습을 묘사하는가 하면, 인터넷 IP(가운데를 ***으로 처리하긴 했지만)를 공개했다.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미네르바’ 박씨는 자신의 정체를 가까운 이웃들에게도 철저히 감추고 살았다”로 시작하는 10면 <“오빠, 몇 달 간 집에서 온종일 인터넷에 글 써”>를 통해선 여동생과 그의 지인, 주민들의 코멘트를 통해 박씨가 어떤 사람인지를 묘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박씨의 동네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다. “박씨의 여동생과 부모가 취직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을 내비치곤 했다”는 것부터 시작해 학벌에 대한 걱정, 경제적인 부분, 부모가 하는 일까지 동네 주민들의 코멘트를 통해 기사는 박씨에 대한 정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중앙일보는 또 “같은 시기, 빌라 주민들도 열린 문틈 사이로 그가 컴퓨터를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며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미네르바 신드롬’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던 때”라고 보도했다. 이어 “그의 집은 유난히 택배 배달도 잦았다”라면서 “경제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배달시켜 읽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는 상당수의 취재원의 코멘트를 인용해 보도했지만, 글의 전반적인 흐름을 통해 해 박씨에 대한 이미지를 “주로 집에서 하루를 보내는 청년”이자 동시에 “무직자였지만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만들었다.

▲ 중앙일보 1월9일치 10면(사회)
조선일보의 실명 보도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 헌법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제27조 제4항)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피의자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 될 때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기에 수사 단계에서의 범죄 관련 보도는 익명 보도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나아가 주거지를 비롯한 지나친 사생활과 관련한 보도 내용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에 해당될 수 있는 요소이기에 중앙일보의 보도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또 언론 보도에 있어 국민의 알권리와 프라이버시 보도는 상충되는 개념일 수 있지만, 박씨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보도는 알권리 차원에 해당되지 않는다. 검찰이 혐의 사실로 주장하고 있는 “허위 사실” 유포와 박씨의 주거지를 비롯한 사생활 정보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기에, ‘알권리 차원’이라는 최소한의 반론조차 통하지 않는다.

장주영 변호사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범죄 관련 보도를 할 때 수사 단계에서 익명 보도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실명을 공개하고 주거지라든가 지나친 사생활과 관련한 보도 내용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름과 거주지 등을 포함한 사생활을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알권리 차원도 아니다”면서 “사생활이 공개되어서 유죄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마치 죄를 저지른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쪽(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서는 알권리 차원이라고 주장을 하겠지만 알권리에도 제한이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을 보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국민들이 알아야 할 대상이면 모르겠는데 실명과 출신대학 등을 비롯한 사실들이 왜 궁금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미네르바가 주장했던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에 대한 법적 차원이 중요하지 개인 신변에 대한 보도는 비본질적인 부분으로,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네르바에 대한 높은 관심을 신문 지면에 반영하려는 의도를 감안하더라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는 검찰보다 훨씬 ‘오버’한 것이 분명하다. 이들 신문이 그토록 원하는 방송을 소유하게 된다면, 리포트를 통해 ‘미네르바 체포’를 어떻게 보도할지 눈에 선하다.

▲ 싸이월드 뉴스에 송고된 중앙일보(1월9일치 10면) 기사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 캡처. “소설을 써라” 등 비판적인 댓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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