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뮤지컬 배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영화는 <쉬리> 이후 할리우드 영화와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춘 데 비해 유독 뮤지컬계는 창작뮤지컬이 맥을 못 추는 것이 현실이다. <남한산성>이나 <홍길동> 등 우리 문화를 가지고 창작뮤지컬을 시도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멸하고 만 창작뮤지컬이 어디 한두 작품이던가.

창작뮤지컬이 답이 안 나온다고 라이선스물을 가지고 온다 해도 능사는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해 암표가 몇 십만 원씩 거래되던 <데스노트>가 만일 김준수와 홍광호라는 뮤지컬계 거물급 배우가 출연하지 않은 작품이었다면, 스토리 전개에 있어 개연성이 떨어지는 지점과 연출력 결핍에 대한 언론의 혹평이 줄을 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김준수와 홍광호라는 배우들의 후광으로 간신히 혹평을 면한 씨제스컬처의 <데스노트>도 이런 지경이다 보니 라이선스물을 가지고 성공한다는 것도 만만하지 않은 시장이 한국 뮤지컬계다.

뮤지컬 <마타하리> ⒸEMK뮤지컬컴퍼니

그런데 <마타하리>는 달랐다. 만일 뮤지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관객이 이 뮤지컬을 관람한다면 ‘이 작품이 창작뮤지컬 맞아?’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뮤지컬은 화려한 외연을 갖추고 있었다. 알다시피 마타하리는 실존 인물이다. 세계사 시간에 졸지만 않았다면, 또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그레타 가르보가 주연한 흑백영화로 소개된 바 있다), 그녀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이중간첩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터. 마타하리가 죽음으로 치닫는다는 비극적인 정서를 환기하기 위해 뮤지컬은 물랑 루즈적인 화려한 위용으로 창작뮤지컬의 블록버스터급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한국 뮤지컬 관객은 뿜어내는 고음을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관객의 이런 음악적인 선호도를 반영하기라도 한 듯 뮤지컬의 넘버는 ‘고음 홀릭(Holic)’에 빠졌다. <마타하리>를 제작한 EMK뮤지컬컴퍼니가 고음을 사랑하는 경향은 이미 <팬텀> 때부터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본다.

여주인공인 마타하리 역을 맡는 김소향과 옥주현만 성대를 잘 관리해야 하는 책무를 부여받은 게 아니라, 라두 대령을 연기하는 류정한과 김준현, 신성록 세 명의 남자배우 역시 뒤로 가면 갈수록 폭발적인 고음을 뿜어야 하기에 <마타하리>는 ‘고음 잔혹사’로 불릴 만큼 배우의 가창력이 절대시되는 ‘고음 홀릭 뮤지컬’이다.

뮤지컬 <마타하리> ⒸEMK뮤지컬컴퍼니

화려한 쇼잉과 배우들이 소화해야 할 고음 처리가 많은 넘버에 이야기 구성까지 맛깔스러웠다면 아주 잘 차려진 성찬이 되었겠지만, <마타하리>가 진정으로 잘 차려진 성찬이 되고자 한다면 필요한 덕목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러닝타임이 길어도 너무 길다. 러닝타임이 긴 뮤지컬을 예로 든다면 <맨 오브 라만차>나 <위키드> 등 셀 수도 없겠지만, 이들 뮤지컬은 잘 짜여진 스토리라인 안에 세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을 꽉 메울 줄 안다.

그런데 <마타하리>는 아직 덜어내야 할 요소가 아직은 많아 보인다. 집중해야 할 부분에만 집중하고 덜어낼 동선은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 때 <마타하리>는 진정한 월드 프리미어의 위용을 갖추고 세계에서 구애받는 성공한 창작뮤지컬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레플리카 뮤지컬이 아닌 창작뮤지컬이기에 얼마든지 개선의 여지는 충분하다. <마타하리>가 매력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는 것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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