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다’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난 1년간 미디어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건에서 단 두 번 물러나는 ‘시늉’을 했다.

▲ 2007년 11월12일자 매일경제 2면.
첫 번째는 미 쇠고기 수입을 놓고 60만이 넘는 ‘촛불’이 반발하자, 대국민 홍보가 부족했을 뿐 수입거부와 ‘재협상’은 없다고 버티던 정부도 일부 위생 안전 조치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물러섰다. 당시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미 쇠고기를 꼭 수입해야 하나’라는 국민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하지만 미 쇠고기 수입은 정부의 의지대로 성사됐다.

이 과정에서 불거졌던 ‘대운하 정책’도 마찬가지다. ‘홍보 부족’을 핑계삼던 정부가 한 발 물러서 “대운하는 하지 않겠다. 다만 여론이 바뀌면 고려할 수 있다”로 선회했다. 하지만 전국에 ‘망치 소리’를 울려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운하식’ 경제 정책은 이미 진행중이다. 항간에는 시멘트 사업이 곧 활황을 맞이하니 관련 주식을 사두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MBC본부가 핵심동력이 됐던 언론노조의 총파업과 민주당의 국회 본회의장 점거를 통해 지난해 말까지 ‘진작’ 통과됐어야 할 각종 법안이 유예기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론관련법안 중에는 방송을 재벌과 조·중·동이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송법 개정안과 인터넷 게시글과 블로그 포스트에 대해 검·경이 아무 때나 검열과 수사에 나설 수 있는 사이버모욕죄 등이 담겨 있다. ‘미디어산업 발전’ 논리와 ‘클린인터넷’을 앞세웠지만 MBC와 다음 아고라를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쉽게 읽히는 대목이다.

국정운영에 걸림돌이자 ‘장기집권’ 시나리오가 깨질 수 있는 MB정부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안인 법 제정이 ‘언론노조 총파업’,‘민주당 국회 점거’ 그리고 인터넷을 비롯한 ‘여론’에 밀려 일시 후퇴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안도 2월 혹은 그 다음 회기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미네르바 체포는 인터넷 ‘공론장’에 대한 전쟁선포

지난 ‘촛불’을 거치면서 증폭된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여론의 인터넷 중심지는 다음 아고라가 되었다. 이러한 결과가 포털사업자 다음의 주도적인 계획 하에 이루어졌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다음 대표는 검찰에 수차례 조사를 받았을 것이다.

검찰은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아고라 논객 중 ‘매머드급 스타’ 미네르바를 겨냥했다. 지난해 12월29일 기획재정부가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하라고 긴급 공문을 전송했다”는 글이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되어 7일 긴급체포했다고 한다.

검찰은 8일 브리핑을 통해 조사를 받고 있는 “박모씨(30대)는 전문대 비경제학과를 나와 무직이며 독학으로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친 정부여당의 8일자 조선닷컴 메인기사를 보면 미네르바 체포를 통해 얻고자 하는 부분이 잘 보인다. “만약 앞으로 더 많은 허위사실이 밝혀질 경우 미네르바에 대한 네티즌의 열광은 삽시간에 수그러들 가능성이 높다”(미네르바, 영웅인가 사기꾼인가?)라는 대목이다.

▲ 한겨레신문 9일자 3면

검찰과 정부여당은 ‘아고라’에서 추앙받고 있는 미네르바라는 인물이 한국사회의 ‘0.1%’ 계층에 속한 것이 아니라 ‘전문대졸의 30대 백수’라는 것을 알려 정부여당에 대한 인터넷의 비판 여론을 무너뜨리고 싶은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의 체포 소식은 인터넷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검찰의 조작사건 의혹’ 제기부터 ‘진짜 미네르바가 아닐 것’이라는 등의 다양한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진성호와 정두언 의원이 직접 비판여론 잠재우기에 나선 것과 미네르바 체포 사이에서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지난 ‘촛불’로 인한 평가와 직권상정을 통한 법안처리의 ‘후퇴’를 통해 입지가 좁아진 친 이명박계의 활로모색과 국회에서 벌어지게 될 2차전을 위한 사전작업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 시기 미네르바의 체포가 단순한 ‘범법자’ 검거라고 믿기는 어렵다. 경제와 관련한 예측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가 허위사실로 처벌을 받는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코스피 3000 발언’ 논란이 재점화되리라는 점은 검찰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건드리면 ‘시끄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행’한 배경에는 정부와 한나라당 내 친이계의 절박함이 담겨져 있다.

미네르바는 100편 가까운 글을 쓰면서 신상에 대해 밝히기를 극구 거부했다. 검찰이 밝힌 바 대로 사회적 ‘자격증’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자격증’ 혹은 ‘타이틀’이 없는 그도 인터넷 공론장에 나오면서 자기검열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심할 정도로 할 말을 다하고 사는 강마에 캐릭터에 빠져들면서 탤런트 김명민의 일상생활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아고라’의 미네르바도 사실 그러한 존재다. 국내외를 넘나드는 경제 지표와 함께 자신의 세계관으로 바라 본 정부여당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내는 비평과 욕설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그의 말에 많은 부분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비판 여론의 아이콘이 됐지만 그의 신상에 대해서는 (궁금하긴 하지만) 굳이 몰라도 되는 그런 존재였다.

정부여당은 표면적으로 강조하는 ‘홍보’와 ‘소통’으로 인터넷 공론장을 변화시키려 하기 보다는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체포 수사를 통한 강압적인 진압 전쟁을 선포했다. 정부여당은 2008년 연말엔 국회에서 전쟁을 벌이더니 2009년 벽두부터 인터넷에서 또다시 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이기고 싶으면 감옥부터 크게 늘려야 할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모두가 미네르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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