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한국 야구와 한국 야구 선수에 대한 홀대 내지 무시가 도를 넘고 있다.

얼마 전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한국 프로야구 선수의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 상한액을 일본 프로야구의 40% 수준에 불과한 800만 달러(약 93억 8000만 원)로 제안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이번에는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포함된 계약과 함께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한 김현수가 구단으로부터 마이너리그행 거부권을 포기하고 마이너리그로 갈 것을 종용 받고 있는 것.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난 18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한국 프로야구 선수의 포스팅 상한액을 800만 달러(약 93억 8000만 원)로 제안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자마자 국내 야구계는 들끓었다.

베이징올림픽,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 프리미어12 우승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증명한 한국 프로야구 정상급 선수들의 기량을 고려할 때, 메이저리그 무대의 문을 노크할 정도의 객관적 기량을 보유한 한국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기량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일본 선수들과의 비교에서 결코 뒤질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팅 상한액을 일본 선수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게 책정한 것은 객관성이나 현실성이 결여된 처사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메이저리그의 KBO리그에 대한 인식은 그들의 리그에 들어가는 조건을 그들 나름대로 정했다는 점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는 하나 한국 야구계나 야구팬들의 입장에서는 분명 자존심이 심하게 상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미국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런데 이번에는 메이저리그 구단인 볼티모어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인 김현수를 테스트용 선수 취급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 또 다시 공분을 사고 있다.

김현수는 당초 볼티모어와 계약할 때 2년간 70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계약서상 김현수에게는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만약 김현수가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하면 볼티모어는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시키거나, 김현수에게 보장된 700만 달러를 책임지고 방출하면 된다. 역시 규정에 따라 김현수는 최저 연봉을 받고 다른 빅리그 팀과 계약할 수 있다.

물론 처음 김현수가 미국에 갈 때만 해도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겠지만, 어쨌든 김현수가 시범경기 16경기에서 1할8푼2리의 부진한 타격을 보이자 벅 쇼월터 감독과 댄 듀켓 단장은 김현수를 방출하는 대신 마이너리그로 보내면서 그를 구단에 묶어 두려고 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활약하고 싶은 열망이 큰 김현수 입장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을 종합해 볼 때, 그가 구단의 이와 같은 압박에 당차게 마이너리그행 거부를 선언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내외 야구 전문가들이나 동료들은 김현수가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훈련 중 김현수와 벅 쇼월터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민훈기 메이저리그 전문 기자는 지난 30일 자신의 SNS에 이날 볼티모어 고위 관계자가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25인 로스터에 김현수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여러모로 볼티모어 구단의 조치는 매너가 없는 부분이 아주 많다”며 “마이너 거부권이 있으니 선수측과 충분히 상의를 하고 의견을 통일한 후 발표해도 사실 기분이 안 좋을 사안들을 이런 식으로 흘린다는 것은 참 예의 없는 짓이다…한국 선수 수입해 캠프만 달랑 보고 당장 맘에 안 들면 손해 없이 버릴 수 있다는 자세…내가 에이전트라면 맘 같아선 마이너 거부권 행사하고 700만 달러 보장받고 차라리 방출하라고 하겠다.”고 볼티모어 구단의 태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해외 스카우트 코치로 활동 중인 라이언 사도스키 역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현수가 마이너 행을 받아들이는 건 팀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과 같다. 볼티모어는 선수와 계약조건을 지키지 않으려 한다. 팀은 선수를 방출하고 개런티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 차라리 다른 팀 마이너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MLB 데뷔하여 볼티모어에게 복수해주길"이라고 의견을 냈다.

이번 볼티모어 구단의 태도는 타국 선수에 대한 무시 내지는 무성의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보면 메이저리그 선수에 대한 구단의 부당한 권리 침해로도 볼 수 있다.

이에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도 이번 사태에 개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MLBPA는 '김현수 사태'에 대한 입장을 묻는 SBS의 이메일에 답을 보내 "현재 김현수의 에이전트와 함께 계약사항이 준수되고 선수의 권익이 보호되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소속 선수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당하는 경우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맺은 단체 협약에 따라 구단의 행동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선수노조는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은 선수가 마이너리그행을 수락하는 선례를 만들 경우 다른 선수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해 개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김현수 사태에 대해 한국 야구계가 분노하는 것이 단순히 김현수가 한국 선수이기 때문에 발현되는 동포의식이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분명한 권리 침해 상황이기 때문임을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가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한국 선수들과 계약을 할 때 앵무새처럼 내뱉는 말들이 “오랫동안 지켜봐왔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김현수 사태를 지켜보며 그렇게 오랫동안 지켜봐왔던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를 불과 16차례의 시범경기만으로 판단해 버렸다는 사실에 실망스럽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 역시 김현수에 대한 볼티모어 구단의 태도에 대해 “자존심이 상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뒤 지적한 말이 “선수가 10년간 쌓은 경력을 16경기만 보고 폄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김현수는 더 이상 볼티모어 구단의 입장을 생각해 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한 바를 당당하게 밀어 붙이는 것이 한국 야구의 자존심을 위해, 앞으로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릴 후배들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야구 인생을 위해 유익한 태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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