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고 싶지 않았다. 북적거리는 느낌과 부산한 도시의 연말이 싫지는 않았지만, MB악법을 막아내기 위해 여의도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맘도 있었지만, 31일 보신각 종소리에 출렁이는 촛불 하나 나 또한 들고 싶었지만 서른 살을 맞이하는 장소로 왠지 서울은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훌쩍 떠났다. 미안함과 미련을 배낭에 짊어지고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도를 택한 커다란 이유는 없었다. 나도 모르는 커다란 필연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강정마을에서 해맞이 행사가 있다는 소식은 제주도여행에 살짝쿵 매력을 더 했던 것이 사실이었고, 눈이 아름답게 세상을 감싸던 강정마을에서 나는 그렇게 기다렸던 서른 살이 되었다.

▲ ⓒ강정의딸
한국에서 제일 따뜻한 곳, 서귀포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해안을 곁에 두고 달리던 도로는 어느덧 집집마다 노란 깃발이 펄럭이는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제법 여유있는 도로에는 딱 시골마을이라 느낌이 드는 슈퍼가 자리잡고 있었고, 길옆으로 늘어진 담벼락과 길위에는 여러 가지 그림들과 글귀들이 강정마을의 바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 이것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평택 대추리, 도두리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가장 아름다운 동네들만 골라서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제주도 서귀포 서쪽에 위치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있고 주민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더라, 딱 이 정도 밖에 알지 못했다. 세상 모든 이슈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명색이 자칭 평화운동가인데 군사기지에 삶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신문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의 배경지식과 관심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460㎞만큼의 거리가 서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제주도가 위치해있는 좌표이며, 서울의 온갖 특혜를 한몸에 누리고 있는 나 또한 그 거리에서 한발짝 다가서는 노력조차 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맞이 행사는 바다와 ‘구럼비’라 불리우는 바닷가 일대에서 열렸다. 바다가 육지와 만나는 공간이 갯벌이 아니라 크지 않은 바위들이 올록볼록 솟아있는 독특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고, 이 일대를 ‘구럼비’라고 부른다고 했다. 견문이 짧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저 신비로운 풍경이, 몇 만년 동안 바람과 파도와 새들의 발자국이 만들어 왔을 저 모습들이 군사기지를 만든다는 이유로 한 순간에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길가에는 평화를 염원하는 방사탑이 세워져 있었고, 그 너머 바다에는 이제 저물어가는 2008년의 마지막 해가 한줄기 붉은 빛을 남겨두고 있었다.

당신의 서울은 평화로우십니까?

▲ ⓒ강정의딸
함께 간 친구가 질문을 던졌다. 왜 군사기지들은 다 시골에 세워지는 것일까? 대추리, 도두리, 무건리, 매향리…. 물론 용산에 미군기지가 있기는 하지만 새로 세워지는 군기사기지가 ‘리’가 아닌 ‘동’에 세워진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군대가 모든 사람의 평화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군대가 모든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신하균이 연기했던 표 소위는 한국전쟁 당시 한강철교를 폭파한 죄책감으로 탈영한, 요새 관점으로 보자면 병역거부자였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 지키는 대상은 누구였을까? 다리 위에 있던 사람들은 군대가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건너가야 할 사람들이 다 건너고 나서 다리는 폭파되었다. 군대는 언제 어디서나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며 존재해왔다.

군사기지 건설은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강남에 살고 있는 부자들을 위해 강정마을이나 무건리 같은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일이다. 서울사람들과 지역의 주민들을 이간질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서울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의 평화가 누군가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역민들의 반응을 지역이기주의나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로 받아들이곤 한다.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지역민의 기지건설 반대운동을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붙인다.

한편 나를 포함해서 기지건설에 반대하는 평화운동가들도 기지건설에 찬성하면서 보상금을 받고자 하는 지역민들의 모습에 실망감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서울에 살면서 서울이 주는 온갖 혜택을 다 누리고 있으면서, 그리고 그런 삶의 방식을 아주 꿋꿋이 유지하고 있으면서 지역민들이 그와 같은 개발의 혜택을 욕망하고 있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다. 물론 지역주민들이 군사기지 같은 거 반대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 전에 군사기지가 왜 그 곳에 들어서는지, 그 군사기지가 지켜주는 평화는 어느 동네의 것인지, 내가 누리고 있는 온갖 삶의 편의와 평화가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서울이 평화롭다면 우리는 그저 그것을 향유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 ⓒ 강정마을 다음 카페 <해군기지 건설 반대! 강정을 생명평화의 마을로~!!>

평화를 위해 평화를 희생시키는 군사기지

서울에 사는 것이 자랑스러운 적은 없었지만, 이렇게 부끄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의 마지막 밤에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 풍경을 진실되게 담을 수 있는 카메라가 있다면, 혹은 진실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에 눈이 내리는 것인지, 눈이 내려서 겨울밤이 아름다운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확실히 인간이 만들지 아니한 것을 인간이 완벽하게 표현해내기란 불가능한 것인지도. 우리가 이 광경을 완벽하게 담아내서 전달할 수 없다면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 누구라도 와서 볼 수 있도록. 때문에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서는 안된다.

아니 강정마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 어디에도, 혹은 한반도 어디에도 한국군의 해군기지가 새롭게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지나친 육군 중심의 국방의 문제를 전혀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육·해·공을 떠나서 어떤 형태의 군사기지도 사실은 더 이상 생겨날 이유가 없다. 군사적 방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강한 군대를 가지는 것이 국민의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거듭 말하지만 모든 군대는 누군가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의 삶을 희생시킨다. 대개의 경우 지킴받는 누군가는 힘이 센 자들이고 희생당하는 누군가는 약한 자들이다. 그런데 좀 더 골똘히 바라보면 힘이 센 자들도 딱히 지킴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안심을 얻을 뿐이다. 군대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적을 상정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돈많고 권력있는 사람들의 불안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지금 명백히 존재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다.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강한 자들의) 미래의 평화를 위해 (약한 자들의) 현재의 평화를 해치는 모순은 군대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군사기지를 넓히는 것과 같은 전쟁준비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게 한다.

▲ ⓒ강정의딸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눈은 밤새 내렸다. 새벽이 되자 사람들은 다시 ‘구럼비’ 바닷가로 모여들었다. 밤을 지새운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 약간의 추위가 서려있지만 아주 피곤해보이지는 않았다. 해가 뜨기 전에 풍등을 날리는 행사를 한다고 했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풍등에 소원을 적어 날려보냈다. 아직은 어두운 새벽 유난히 밝게 보이는 풍등들이 바다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져갔다.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간 것일까? 아니면 바다 위를 거세게 활보하는 겨울바람에 고꾸라진 것일까? 내가 날린 4개의 풍등은 채 바다까지 가지도 못한 채 불어닥친 거센 바람에 추락하고 말았다. 풍등이 저 멀리 훨훨 날아가면 풍등에 적힌 소원도 쉽게 이뤄질 것만 같았는데. 쉽게 이뤄질 수 있는 희망이란 애시당초 희망이라 불리지 않는 것인지도. 어느덧 해가 떠오를 시간이 지났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수평선 끝자락은 그러나 구름과 바다의 격정적인 포옹 때문에 해의 모습이 보일 만한 틈새가 없었다. 하지만 밝아오는 하늘이 해가 솟았음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태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진실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강정마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이 사람들의 삶에는 ‘평화’라는 이름이 퍽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온실 속의 화초가 누리는 것과 같은 평화라기보다는 제주도의 거센 바닷바람에 깊게 팬 주름살 같은 평화의 느낌이었다. 2009년 해맞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해 커다란 방명록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평화에게 기회를”이라고 적고, 내 친구는 “바다는 용왕님이 지킨다”라고 적었다.

애써 찾아가지 않았던 평화가 나에게로 왔다. 평화의 결과로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아가게 되었다. 현재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착하게 살다가 조용히 죽는 삶을 꿈꾸지만 버리지 못한 욕심이 심장에 붙어있어 떨쳐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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