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사건의 전말을 이렇다. 미디어스에서 기획을 자처(!)하고 있는 나는 침대에 누워 정신줄 놓고 연말 시상을 시청하며 이 대목 장사를 어찌 직업 그리고 사회적 올바름과 연결할 수 있을까를 뒤늦게 고민하던 찰나, <2008 어워드를 빛낸 수상‘소감’자들>이란 불세출의 날림 기획 하나를 떠올리게 됐다. 콘셉은 이러했다. 언론사 총파업이 벌어지고 있는 유례없는 난국에서 그 흔한 수상 소감에서조차 튀지 못하는 평범한 연예인들과는 달리 차려진 밥상에 튀는 숟가락 하나 올려 논다는 맘으로 금기시되는 언어들을 구사한 이들을 인터뷰하는 기획이었다. “당신은 왜 그랬나요?”

잡생각도 이쯤이면 하나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자만하며, 나는 밑도 끝도 없이, 성사될 가능성에 대한 일말의 자신감 하나 뿐이었던 잠들기 직전의 그 혼미한 기획을 급기야 편집국 회의에서 누설하고 말았다. 그것은 평소, 미디어스 편집국 누구도 나만큼 TV 시청은 하지 않음을 확신했기 때문이었고, 격무에 지친 편집국 사람들 누구도 내 큰 목소리를 제압하지 않으리라는 영민한 처세술의 일환이었다. 기대는 충족됐다. 누구도 내 발언에 아무도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거나 혹은 걍 내버려뒀거나 이)다. 이로써 릴레이 기획 인터뷰의 라인업은 완성됐다. 어디서? 내 마음속에서. 황현희, 문소리, 김명민+알파(이문세, 이문식, 유재석 등등)로 구현된 화려한 라인업의 완성이었다. 흐뭇했다.

▲ KBS 연예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고 소감을 말하고 있는 황현희ⓒKBS
순간 가속성과 초반 에너지를 유일한 옵션으로 지닌 나는 맨땅에 헤딩을 시작했다.(참고로, 이번 인터뷰 섭외는 내 인생 거의 최초의 시도였다.) 그 첫 번째 타킷이 황현희였다. 그 시작은 순조로웠다. 포털에 이름을 치니, 금세 황현희의 소속사가 나왔다. 전화를 걸었다. 황현희를 담당하는 매니저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받았다.

미디어스를 소개하고, 기획의 의도를 말했다. 간단했다. 삽시간에 OK를 했다. 황홀했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연예인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한들 이토록 성의를 다해 인터뷰를 해주겠다는데, 지들이 별 수 있겠어.’ 의기양양, 편집장에게 보고를 했다.

드디어 인터뷰 전날, 내일 뵙겠다는 확인 문자를 넣고 함께 갈 기자와 인터뷰 내용을 조율했다. 영상과 함께 갈 것인가 잠시 고민스러웠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었다. 평화로웠다. 흡족했다. 모든 것이.

파국은 밤 9시가 넘어 시작됐다. 핸드폰에 황현희 매니저 전화번호가 떴다. ‘내일 보면 되지, 뭘 확인까지.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실까’ 싶었지만 무릇 세상만사에는 도리가 있는 법. 친절히 받았다. “여보세요.”

파국의 시작이었다. 그날 나는 3년에 한 번쯤 찾아올까 말까 하는 극심한 장염의 고통에 신음하던 중이었다. 몹시 컨디션이 안 좋았다. 매니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인터뷰를 승낙하긴 했지만, 그래서 해야겠지만, 조건이 있다고. 황현희를 인터뷰하려면, 우선 수상소감이 아니라 PR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같은 소속사의 다른 개그맨 인터뷰를 반드시 기사화해줘야 한다고. 당황스러웠다. 그는 덧붙였다. 수상소감에 대해 개콘 PD의 함구 지시가 있었고, 다른 개그맨의 기사도 ‘조중동’을 제외한 어디에도 꽂을 수 있지만, 미디어스와 먼저 약속한 것이니 윈-윈을 제안하는 것뿐이라고. 허탈했다. 그는 미디어스를 전혀 몰랐다.

내가 황현희를 비범하게 보기 시작한 것은 <프레시앙>이 되겠다는 그의 글을 봤을 때부터였다. 개콘에 황현희 만큼 웃기는 개그맨은 많지만, 인터넷 매체를 위해 기꺼이 이름을 팔아주는 개그맨은 그가 유일하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는 ‘시사’로 분류되는 개그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매니저가 완전히 ‘쌈마이’ 같은 제안을 하니 아찔했다. 전화 한 통화로 연예 권력의 실체와 업계의 관행이 한 방에 학습되는 기분이었다. 순간, 멍해졌다.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편집장은 역시 노련했다. 기사화해주는 조건에 대한 역제안을 하라고 했다. 카드가 되겠다 싶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역제안에 대해 한 마디로 매니저는 냉랭했다.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화를 냈다는 뜻은 아니다.) 단숨에 내가 선수가 아님을 간파한 눈치였다. 다른 개그맨 기사를 쪽기사화 해주는 대신, 황현희에게 묻고 싶은 것을 다 묻겠다는 우리의 제안을 어림 반푼어치 없어 했다.

▲ 황현희에게 묻고자 했던 질문들

그렇게 황현희 인터뷰는 꽝 났다. <프레시앙>이자, 시사 개그맨이자, 언어유희의 동시대적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개그맨을 만날 수 있겠다던 나의 꿈도 사라졌다. 연락을 주기로 한 문소리 매니저마저 연락이 없다. 백분토론에서 유시민이 그런 말을 했다. 힘이 센 고양이는 쥐를 괴롭히지만, 죽음 앞에 선 쥐의 기분을 헤아리지는 못한다고. 연예 권력은 고양이이고, 인터넷 미디어는 쥐인 것일까? 기분, 참 을씨년스럽다.

나의 릴레이 기획 인터뷰는 실패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겠다. 어쩌면, 내일 몹시도 바빴을 문소리 매니저가 전화를 줄지도 모르고 김명민, 이문세, 이문식, 유재석이 모두 흔쾌히 인터뷰에 응할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 모두가 아니더라도 포기하지는 않겠다. 그땐 또 내 귀로 확인하게 될 연예 권력과 오만한 실체와 졸렬함에 대해 쓰면 되니까. 오해하지 마시라. 인터뷰 안 해준다고 이러는 거 아니다. 나안~ 인터뷰로 장사하려는 그 잡스런 이유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