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고 조중동은 분노의 산으로 올라가시었더라.

어찌되었건, 여야가 합의를 이뤘다. 그 합의 덕택에 온 국민이 국어 공부를 톡톡히 했다. ‘협의’와 ‘합의’의 다름이 널리 알려졌다. 여야 모두 나름의 후폭풍에 휩싸여 있지만, 가장 망연자실한 곳은 역시 조중동이다. 지난 한 달 여간 조중동은 비감한 심정으로 사운을 걸고 ‘직권상정’에 사력을 다해왔다. 정권이 교체되고 의회까지 장악했지만 조중동이 작심해도 안 되는 일은 이제 안 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한 심정 누가 알아주겠는가? 조중동이 산으로 올라가셨다.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의 처량함을 달래고자 분노의 산에 들었다.

2. 한나라가 모여들자, 조중동은 자리를 잡고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나니.

비록 직권상정에는 실패한 조중동이지만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가는 법이다. 조중동이 모드를 전환하자, 순식간에 한나라가 모여들었다. 가파른 내리막 앞에 조중동이 자리를 잡고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을 닮아간다고, 중앙일보는 합의는 했지만 해석을 달리하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동아일보는 법안전쟁이 7가지를 남겼다고 가르쳤다.

▲ 당 안밖에서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미디어스
3. 그때, 홍준표와 박계동이 저항하다가 현장에서 사진이 찍힌 국회의원 한 명을 끌고 와서 조중동 앞에 세우신 바.

바로 그 때였다. 자사 그리고 자사와 혼맥으로 얽혀있는 재벌 친지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사력을 다해 ‘MB악법’을 보호해주던 조중동이 서서히 ‘MB무능’으로 방향을 전환하려는 찰나, 그 하루의 시간에 빨간색을 사랑하게 된 홍준표와 박계동이 끝까지 저항하다가 현장에 사진을 남긴 국회의원 한 명을 조중동 앞에 세웠다.

4. 조중동에게 고했습니다. “이 국회의원이 현장에서 찍혔나이다.”

홍준표가 약속했다. 폭력 행사하는 국회의원들은 금배지를 떼게 만들고야 말겠다고. 박계동은 한 마디 더 나갔다. 특수공무집행방해죄는 유죄가 입증되면 최하 집행유예 이상인 죄라고. 정해진 시간까지 공개사과를 않는다면, 의원직을 잃게 만들겠다고.

5. 조중동은 사설에서 이런 국회의원은 글로 쳐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하셨더라.

가만있을 조중동이 아니다. 아니 가만있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는 조중동이 아니다. 조동이 즉각 사설로 응했다. 조선일보가 근엄함을 가장하여 묻는다. 국회에서 난동 피우는 저 의원의 지역구는 어디냐고. 결국, 무법 사태의 책임은 MB의 최측근 이방호를 떨어뜨리고 수준 미달의 후보를 여의도로 보낸 지역구민이 져야 한다는 명령이다. 조선일보가 개탄하는 무법 사태란 무엇일까? 법이 입법되지 아니한 상태. 혹시, 홍준표가 아니라 이방호라면 입법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상태. 동아일보는 고백했다. 그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게 부끄럽다고. 국민으로서 낯 뜨겁고 외국인이 볼까 봐 겁난단다. 동아일보가 휘둘러대는 무딘 문장 중에 ‘국민이 불쌍하다’는 표현이 있다. 이 사설에도 여지없이 들어갔다. 동아일보는 이렇게 이타적이다. 스스로 불쌍한 것은 모르고 언제나 국민을 구휼히 여길 뿐이니, 우매한 국민인 나는 이에 어떻게 감읍해야 할지 아리송할 뿐이다.

6. “우리 중에 부끄러운 자 모두, 이 국회의원에게 돌을 던지자”

속도전은 끝났고, 전쟁은 휴전을 맞았다. 특강을 할 정도로 현대사에 대한 수준급의 이해를 갖고 있는 저들은 어쩌면, 이번 휴전이 6·25처럼 긴 휴전이 될 것임을 이미 예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법안을 전리품쯤으로 여기며, 이미 따논 당상이라 믿었던 이들이다. ‘합의’ 자체를 회복하기 힘든 내상으로 이해하는 그들이다. 어쩔 수 없이, 실존적 분노로 돌을 들긴 했는데, 제대로 겨누자면 그 돌은 서로를 향해 던져져야 마땅한 것인데….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업자 정신의 도덕률이 어찌 그리 가벼울 수 있겠는가. 모두가 부끄러움에 돌을 들긴 했지만 아직은 차마 그 부끄러움이 내면의 문제라고 고백하기는 싫은 그들이 돌로 내려치고자 하는 대상을 갈구하고 있다. 이 국회의원에게 돌을 던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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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어있던 1인치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은 가장 유명하고 강력했던 국회 책임자로 기록될 것이다ⓒ미디어스
. 이 말씀을 하시고 박계동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이번에는 목소리로 형벌을 쓰셨더라.

흘러간 정치인에서 엉겁결에 정국의 핵심인물로 재부상하는 천운을 거머쥔 박계동이다. 발악을 마다할 이유가 없고, 상황을 영민하게 읽을 까닭은 충분하다. 박계동이 오늘(7일)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는 회의장 문을 뜯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은행금고 수준으로 잠금장치를 개선할 계획이란다. 회의장을 점거하면 감옥 같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겠다고 한다. 국제적인 망신거리는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 더 망신스러운가 머뭇거리게 된다. 해머와 망치를 들고 가지 않으면, 예산안 심사에 참가할 수조차 없는 국회, 아니면 소수당 대표를 기꺼이 경위와 방호원에 맡기는 국회, 그것도 아니면 감옥 같은 느낌이 드는 국회.

8. 많은 사람들이 본회의장 앞을 떠나가고 이제 박계동과 거기 홀로 서 있던 국회의원만 남게 되었나니.

애매한 판정승이건만, 상황에 대한 승리적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이제 잠시 후면 유례없는 관심과 지지 속에 진행되던 언론노조 파업도 잠정 중단에 돌입한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본회의장은 고요해지고, 이제 마지막까지 홀로 섰다는 이유로 승냥이떼에 몰려있는 그 국회의원만 남게 된다.

▲ 지난 여름 촛불을 들고 있는 강기갑 의원ⓒ미디어스
9. “조중동이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촛불을 정죄하지 않겠다.”

강기갑은 지난해 여름 촛불정국에서 유일하게 연단을 허락받은 정치인이었다. 촛불은 조중동을 쓰레기로 뒤덮었고, 밥줄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조중동의 위상은 총체적으로 하락했다. 조중동이 이번 파업을 주도한 MBC를 향해 불공정하고, 정파적이라며 총공세를 펼쳤지만, 먹혀들지 않은 이유는 MBC보다 조중동이 훨씬 불공정하고 정략적임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중동이 강기갑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역사적 이유가 여기서 성립된다. 그렇잖아도 빌미만 궁리하던 중이었는데, 때마침 잘 걸렸다 싶은 것이다. 그것은 방송을 향한 한나라당의 분노가 곧 촛불을 향한 조중동의 분노이고 강기갑을 향한 모두의 분노이다.

10. 강기갑이 대답했습니다. “정죄 받지 않겠습니다.”

85개 법안을 놓고 겨루던 정국이 갑자기 강기갑으로 확 좁혀졌다. 심각한 비대칭이다. 맞다. 분명히 스쳐지나가는 정국이다. 말하자면, 강기갑은 ‘MB악법’ 정국이 ‘MB무능’ 국면으로 넘어가는 정거장이다. 그런데 잠깐 쉬어가는 이 정거장이 던지는 함의가 만만치 않다. 상대를 민주당이 아니라 촛불에 관한 기억을 갖고 있는 모두로 확대해야 한다는 경고, 2월 국회의 동선을 얌전히 묶어두겠다는 포석, 뭐든지 뜻대로 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나갔지만, 누구든 뜻대로 죽일 수 있는 힘은 넉넉하다는 과시까지. 시골 촌부 강기갑은 분명히 답했다. 정죄 받지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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