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 중에는 작품보다 배우 그 자신이 더 앞서 존재하는 몇몇 사람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배우를 꼽으라면 박신양이 아닐까? 그 박신양이 2011년 <싸인> 이후 오랜 칩거 끝에 KBS2의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로 돌아왔다. 첫 회를 본 소감? 역시 박신양이다. 몇 년의 칩거가 무색하게 <동네변호사 조들호> 첫 회에서 박신양은 펄펄 날았다. 드라마는 미지수이지만, 그저 박신양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모처럼 박신양 연기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첫 회

박신양이 오랜 침묵을 깨고 TV에 얼굴을 비춘 것은 뜻밖에도 드라마가 아니라 tvN의 <배우학교>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중후한 연기자 이원종부터 앳된 아이돌 남태현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 등장했다. 첫 회 '예능'이란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걸맞게 자기소개를 눙치던 유병재에게 박신양은 정색한다. 그런가 하면 능숙하게 출연의 변을 늘어놓은 이원종에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직언한다. 예능 한번 해보겠다고 출연을 결심했던 학생들의 오금이 저리게 만든 건, 바로 선생 박신양의 '진정성'이었다.

제 아무리 예능의 탈을 써도, 결국 '연기'는 진정성이 없다면 거짓이라는 박신양의 신념이 졸지에 프로그램을 다큐로 만든다. 결국 예능 <배우학교>는 '예능'과 '다큐'의 경계선에서 선 진정성의 딜레마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예능이건 다큐건, 그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 박신양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은 확인되었다.

KBS 2TV 새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그리고 그 신념은 오랜만에 그가 출연한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첫 회를 통해 바로 입증된다. 선배 연기자 이원종조차도 그 앞에서 쫄게 만들었던 박신양의 진정어린 연기는,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한 시간을 넉넉히 채우고도 남는다. 법정씬이라는 묵직한 장면에서 이제는 클리셰가 된 휠체어에 앉은 회장을 전동벌레 한 마리로 펄쩍 뛰게 만들며 그의 거짓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장면, 그리고 진실이 드러나려는 순간 역으로 회장의 뇌물수수로 검사에서 노숙자로 급전직하고, 다시 변호사로 법정에 서기까지의 드라마틱한,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만화 원작의 허구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내용을 박신양의 연기로 설득해 간다.

회장 앞에서 '바다의 왕자'를 부르며 재롱을 떠는 검사도, 그의 거짓을 벌레 장난감 하나로 드러내는 의로운 검사도, 그리고 한 끼의 밥을 위해 줄을 서는 노숙인도, 그리고 다시 법정에 나타난 변호사도, 박신양의 연기로 그들은 하나의 캐릭터로 연결되며 조들호가 완성된다.

정재계 커넥션에 대항한 정의로운 변호사라 하니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바로 2014년 작 <개과천선>이다. <개과천선>에서 최고 로펌의 가장 속물적인 변호사에서 정의로운 변호사로 변신하여 역시나 정재계 커넥션에 대항하는 김석주를 연기한 김명민은, 박신양처럼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 배우이다. <개과천선>에서 김명민은 가장 비도덕적인 로펌 최고의 변호사부터 머리가 조금 이상해진 어리숙한 김석주까지 종횡무진 ‘김명민’이란 진기명기를 펼쳤다. 첫 회부터 변화무쌍한 활약을 보인 박신양은 <개과천선>의 김명민을 떠올린다. 두 배우 모두 가장 자신을 돋보이는 장르로 '법정'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박신양만이 아닌 좋은 작품으로

KBS 2TV 새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하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조기종영하다시피 한 <개과천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 빛처럼 갑갑한 세상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었다면, 비슷한 설정의 <동네변호사 조들호> 역시 그것이 가능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신양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캐릭터 등 원작과 달라진 내용, 심지어 원작에는 없었던 이은조(강소라 분)의 등장이 과연 원작의 주제 의식을 제대로 살려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특히 첫 회 보육원 동생의 죽음으로 노숙자였던 조들호가 다시 변호사가 되는 계기는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작위적이란 느낌이 강해, 작품성에 있어 의문 부호가 달린다.

특히나 <개과천선> 이래 최근 <리멤버>까지 정재계 커넥션을 상대로 통쾌한 한 방을 먹이는 '사이다'성 드라마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그런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어느 정도 선보일지가 또한 관건이 될 것이다. 거기에 첫 회부터 기구한 인생 유전을 보인 조들호에게서 작가 이향희 작가의 전작 <쩐의 전쟁>의 기시감도 느껴지니, 이 점 역시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발목을 잡는 숨겨진 복병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첫 회에선 이런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연기로 돌아온 박신양을 보는 맛에 즐거웠다. 부디 이 즐거움이 작품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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