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9시 30분,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4·16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위원장 이석태, 이하 특조위)의 제2차 청문회가 열렸다.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이준석 선장을 비롯해 강원식 1등 항해사, 김영호 2등 항해사 등 세월호 선원들이 다수 참석하고, 이틀째에는 청해진해운 관계자들도 참석할 예정이어서 ‘어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지’에 관심이 모이는 상황이었다.

비록 수사권과 기소권은 부여받지 못했지만 이날 2차 청문회에서는 의미 있는 발언들이 나왔다. 특히 참사 생존자이자 당시 세월호 여객영업부 직원이었던 강혜성 씨가 ‘청해진해운 지시로 배 안에 대기해 있었다’는 발언을 해 파장이 일었다. 강혜성 씨는 사고 당일 오전 9시 26분쯤 양대홍 사무장(사망)이 ‘10분 후에 해경 올 거야. (승객들) 구명조끼 입혀. 선사(청해진해운) 쪽에서 대기 지시가 왔어. 추가 지시 있을 때까지 구명조끼 입히고 기다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양 사무장이 지시에 앞서 무전기 채널을 바꾸라는 뜻에서 ‘CC(Channel Change)’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강씨는 “다른 사람들이 듣지 않아야 될 말을 저에게 전달하고자 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선사 대기지시가 내려왔다는 얘기를 다른 사람이 들으면 곤란한 얘기라고 생각했느냐고 재차 묻자 강씨는 “저는 그렇게 판단한다”고 답했다.

또한 강씨는 참사 당일 청해진해운 해무팀 홍모씨와 직접 통화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을 말한 이유를 묻자 강씨는 “(사고 현장에 있었던) 여객영업부 직원들 희생에 누가 될까 싶어 그동안 말하지 못했다”며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

검찰 조사에서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답한 이준석 선장은 ‘방송을 했다’고 말을 바꿔 유가족들의 원성을 샀다. 이준석 선장은 “탈출하기 전에 김영호 2등 항해사에게 퇴선 지시하라고, 안내소에다 연락을 하라고, 여객부에게 방송 지시하라고 했다”고 답했다. 말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 20일 동안 밤 1~2시까지 계속 조사를 받았는데 나중에 반성하는 뜻을 가지라고 그래서…”라며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제주 VTS(해상관제시스템)과 세월호의 사고 당시 운항 및 교신 내용 기록이 조작(편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 조타기가 고장 난 채로 세월호가 운항되었다는 주장이 나왔고 관계자들은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게나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새로운 사실’(new fact)이 드러났음에도 지상파 3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청문회 소식에 입을 닫았다.

“모든 권력은 청와대에서 나온다”며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그렇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청문회에 대한 ‘관심’을 부탁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고 김유민 학생 아버지)의 말은 지상파의 침묵 덕에 더 ‘이유 있는’ 호소가 됐다.

참사 진상규명보다 중요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치맥 파티’

지상파 3사 메인뉴스는 2차 세월호 청문회가 열린 28일 저녁, 단 한 군데도 관련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주말 동안 예고기사 단신조차 내보내지 않았다. 반면, 3사가 똑같이 ‘비중 있게’ 보도한 소식도 있었다. 바로 중국인 관광객들의 인천 치맥 파티였다.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는 일제히 ‘치맥 파티’라는 표현을 동원, 수천여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월미도 해변에 모여 치킨을 먹는 ‘이색 풍경’을 좇았다. MBC <뉴스데스크>는 하루 전 ‘예고 보도’까지 내보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3월 28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JTBC <뉴스룸>, SBS <8뉴스> 보도. 이날 4사 메인뉴스 가운데 세월호 청문회 소식을 전한 곳은 JTBC <뉴스룸>뿐이었다.

리포트 내용이 차별화될 리 없었다. 3사 모두 월미도 해변을 채운 중국인 관광객들이 치킨과 맥주를 드는 장면을 보여준 뒤 ‘한류를 현지에서 즐긴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반드시 인천에 와서 치킨과 맥주를 먹으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중국에서도 먹어봤지만 더 맛있는 거서 같아요” 등 있어도 없어도 될 만한 관광객의 멘트, 이 ‘수많은’ 관광객들은 중국 화장품 업체 아오란 그룹 임직원이며, 단일 단체 관광객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인 만큼 주문한 치킨과 맥주의 수량, 가이드 수도 최대라는 얘기였다. 이들이 먹은 치킨을 쌓으면 웬만한 산 높이에 이른다는 ‘비유’까지 판박이었다.

방송사별로 약간 다른 점도 발견되긴 했다. KBS <뉴스9>에는 “6000명을 한꺼번에 유치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번을 계기로 지속적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유정복 인천시장의 멘트와, 이번 방문 기간 중국인 관광객들이 먹고 마시고 쓰는 돈이 27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광공사의 ‘전망’이 들어갔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치맥이 나오는 것을 봤는데 실제 현장에 와서 보고 참여하니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라는 관광객의 멘트를 통해 자사 드라마의 인기를 부각했다. 유정복 시장뿐 아니라 “우리나라 관광 산업의 발전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니 보람있다”는 치킨집 점주의 인터뷰가 포함된 것도 특징이다.

이밖에 각 사는 그날의 리포트를 통해 세월호 청문회 대신 ‘무엇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KBS <뉴스9>는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서울시민들이 전쟁 공포로 탈출하고 있고 우리 군인들의 자살이 속출한다는 황당한 보도를 내놓는다는 소식을 별도의 리포트로 처리해 북한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자랑했다. 각종 뉴스 프로그램,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전한 ‘태양의 후예 열풍’도 어김없이 다뤘다. ‘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한국의 군대 로맨스’라는 제목의 BBC 보도를 잊지 않고 ‘간추린 단신’으로 챙겼다.

MBC <뉴스데스크>는 이번에도 ‘동식물’과 ‘환경’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20년 새 봄철 꽃가루가 5배나 증가해 알레르기 환자가 급증했다는 뉴스,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가 시베리아를 가는 길에 충남 천수만에 들렀는데 특별 선물로 볍씨 1톤이 뿌려졌다는 뉴스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명문대생이 여중생을 2년 동안 감금해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는 ‘눈이 확 뜨이는’ 국제뉴스도 있었다.

SBS <8뉴스>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치맥 파티 이후 <휴관일 문 열어준 궁궐…中 관광객 또 올까?>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8뉴스>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각종 노력을 열거하며 “중국인 관광객들의 한국 재방문율이 주요국 가운데 가장 낮기 때문이다. 싸구려 단체 관광이 주범이라는 지적”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 전담여행사 170곳 중 40%를 퇴출시키는 등 단체 관광 정상화와 비즈니스 관광 집중 지원 계획을 밝힌 정부의 입장을 덧붙였다. ‘공안 천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수난을 당하는 중국 경찰의 안위를 걱정하거나, 뜨고 있는 홈 카페 시장을 살펴보았고 낙산 앞바다에서 떼지어 헤엄치는 돌고래의 장관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색 풍경’은 방송뉴스가 좋아하는 아이템 중 하나다. JTBC <뉴스룸>도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세월호 참사가 2주기를 맞는다는 앵커 멘트와 함께, 2차 청문회의 주요 장면을 전했다. <뉴스룸>은 이준석 선장의 말 바꾸기, 청해진해운의 대기 지시, 세월호 항적과 교신 내용 조작 의혹 등을 두루 다루면서, 청문회 이틀째(29일)에 주로 다뤄질 주제가 무엇인지도 소개했다. 이 모든 내용이 1분 30초짜리 짧은 리포트 안에 들어갔다. JTBC가 늘 말하는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서울 한복판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공식 청문회’가 열리고 있으며, 어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는지를 이 리포트 하나로 확인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3월 28일 JTBC <뉴스룸> 보도

지상파 3사 메인뉴스가 세월호 청문회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1차 청문회 때도 지적된 바 있는 증인들의 무성의한 청문 태도, 수사권과 기소권보다 약한 ‘조사권’만 지니고 있는 탓에 ‘청문회 불참’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점 등 ‘특조위’의 ‘청문회’가 지닌 한계를 짚거나, 그간 세월호 청문회에서 드러난 사실을 정리해 참사 당일 상황을 재구성해 볼 수도 있고, 특조위와 청문회를 무력화시키려는 다양한 시도를 돌아볼 수도 있었다. 방송뉴스는 늘 그렇듯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