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덜 추운 것 같다’는 기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의도는 이내 구름 아래 찬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오후 2시에 가까워지자 광주, 부산, 서울, 전주, 여수, 울산, 춘천, 삼척, 제주 등 전국 곳곳의 언론노조 소속 지부 이름이 씌여 있는 깃발들이 하나둘씩 국회 앞으로 모여들었다.

▲ 광주, 부산, 서울, 전주, 여수, 울산, 춘천, 삼척, 제주 등 전국 곳곳의 언론노조 소속 지부 이름이 씌여 있는 깃발들이 입장하고 있는 모습 ⓒ정영은
6일부터 1박2일간 ‘언론 7대 악법 저지’를 위한 상경 투쟁을 벌이기 위해 모여든 전국 3천여 언론 노동자들은 차례차례 아스팔트 바닥에 털썩 앉기 시작했다. 그들은 왜 이 추운 날씨에 전국 각지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모여 있을까.

▲ 윤행석 광주MBC PD ⓒ정영은
광주광역시에서 버스로 올라왔다는 광주MBC의 윤행석 PD 조합원은 “중앙도 그렇겠지만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 정책에 대해 지역 언론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굉장히 크다”면서 “정부와 한나라당은 미디어 법안을 시작으로 미디어렙 민영화 등을 계속 밀어붙일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전국 19개의 지역MBC 중 10개 이상이 대부분 명퇴, 안식년 등을 시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나라당 방송법이 통과되면 지역방송사는 자체적으로 존립이 불가능해진다. 지역민방과 지역MBC를 묶는 등 통폐합될 것”이라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현재 전면 제작거부로 파업 중인 광주MBC는 대체편성, 재방송을 통해 로컬 시간대를 채우고 있다.

지난달 26일 언론노조의 총파업 이후 제작 거부 중인 윤 조합원은 ‘미디어악법’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 매일 오전 집회와 함께 광주시내 거리 선전전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일부 신문의 ‘밥그릇 투쟁 운운’에 대해 “우리 배만 부르게 하는 파업이라면 지역시민들도 냉담하지 않겠느냐”며 “광주지역 촛불문화제와 거리에서 만난 시청자들의 뜨거운 응원을 통해 우리의 파업이 공감받고 있어서 더욱 힘이 난다”고 전했다.

‘언론관계법 개악 철회하라’는 손팻말을 흔드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날 오전 제주공항에서 총파업 상경투쟁 기자회견을 열고 도착한 전국언론노조 제주지역 본부 소속 방송과 신문 조합원들도 눈에 띄었다.

▲ 위영석 언론노조 한라일보 지부장 ⓒ정영은
신문 지면파업을 통해 MB정부 미디어정책의 문제점을 매일 보도 중인 한라일보의 위영석 지부장과 인사를 나눴다. 그는 방송사 연봉과 밥그릇 싸움 운운하는 일부 서울지역 신문의 보도에 대해 “제주지역 한 방송사에서는 무급휴직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분명 이번 싸움은 생존의 문제이지만, 우리는 단지 밥그릇만 말하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의 여론 다양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지역언론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싸우는 것”이라면서 “지역은 지금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 다양성에 대해 묻자, 위영석 지부장은 지난해 4월 총선 얘기를 꺼낸다. 제주지역은 지난 총선 당시 호남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야당의원만 3석이 당선된 곳이다. 그는 “제주 지역민들은 4·3문제 등 과거사에 특히 민감한데 이명박 정부는 과거사위원회를 통폐합해 축소시키는 정책 발의를 했기 때문”이라며 “중앙언론이 제주지역 야당 의원 당선의 의미를 알고나 있겠느냐. 지역민을 위해서도 제대로 된 지역 언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주영 강원민방(GTB) 기술관리팀 엔지니어 ⓒ정영은
이날 아침 강원도 춘천시에서 올라온 언론노조 강원민방(GTB) 지부의 이주영 기술엔지니어 조합원은 칼바람에도 “연말 상경투쟁에 비하면 한결 덜 춥다”며 북쪽 출신(?)답게 “괜찮다”고 답한다. 그는 이번 연말연시, 서울의 명동과 춘천의 명동을 오가며 촛불집회와 거리 선전전을 이어갔다고 했다.

지역민방에 소속돼있는 그는 이번 총파업에 대해 “민영방송이든 공영방송이든 방송사 소유 형태에 따라 어디에는 이득이 가고 안가는가를 떠나서, 누가 봐도 아닌 건 아닌 거다”라며 “한나라당의 7대 악법으로 민영방송에 삼성 등 재벌 자본이 들어오면, 일단 노조원들 대상으로 구조조정부터 시작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지역민방의 경우, 총파업에 또다른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SBS가 어렵더라도 전면파업을 했으면, SBS 프로그램을 네트워크로 상당수 내보내고 있는 민방들도 전면파업을 결심하기 쉬웠을 것”이라며 “민영방송사들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태에서 부분 파업을 벌이며 싸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번 법안을 막아내지 못하면 민영미디어렙 도입 등 이명박 정부의 수많은 시장주의 정책들이 뚫릴 수밖에 없다. 미디어렙이 도입되면 지역민방은 수익이 20~40% 떨어지는데 굉장히 치명적”이라며 “주변 분들의 격려가 많지만, 아직도 한나라법안의 문제점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일단 시청자들에게 파업의 정당성과 지지를 많이 알려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만난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하나같이 여의도 칼바람 앞에서도 ‘국민들의 격려와 응원’에 감격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언론을 지키는 것’이라며 파업에 나선 전국의 언론노동자들은 이날 국민들에게 “권력과 재벌과 수구족벌신문에 맞서 서민과 노동자, 농민의 밥그릇을 지키는, 힘없고 가난한 이웃의 밥그릇을 지키는 싸움”을 계속하겠다면서 “기축년 새해를 희망의 해로 만들어달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리며 계속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 결의대회에 참석한 언론노동자들은 최상재 위원장의 대국민 호소문을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리며 “희망찬 투쟁의 지속”을 외쳤다 ⓒ정영은

▲ 한나라당 로고가 새겨진 얼음조각물을 망치로 부수는 퍼포먼스 ⓒ정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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