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선암여고 탐정단>의 ‘동성키스’ 장면을 문제삼아 중징계를 내렸던 방통심의위가 이번에는 ‘웹드라마’ 중 동성키스 장면에 대해 ‘시정요구’를 권고했다. 종합해보면, 방송과 통신 어디에서건 '동성애적 표현'은 안 된다는 얘기다. 방송과 통신 플랫폼 차이에 대한 심의위원들의 몰이해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논란이 재촉발 될 전망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통신심의소위(위원장 장낙인)는 지난 22일 네이버 TV캐스트가 제공하는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 동성키스 장면에 대해 심의했다. 그 결과, 방통심의위는 해당 장면이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8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해 시정요구를 결정했다. 네이버 측에 자율적으로 규제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은 '말만 자율규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민간 독립기관으로 설립됐지만 국가인권위와 법원 판결문을 통해 행정기구로도 기능하고 있다고 확인됐다. 그런 점에서 포털 등 전기통신사업자가 시정요구에 불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논란이 끊이지 않아왔다. 네이버가 이번 결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관심이 모아지는 까닭이다.

네이버 TV캐스트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

<대세는 백합>(감독 윤성호, 임오정, 한인미/PD 송재영)는 네이버 TV캐스트를 통해 전송되는 8부작 웹드라마로 지난해 12월부터 방영중이다. 해당 드라마는 아이돌 연습생 생활 7년째인 여 주인공 김경주(김혜준 분) 앞에 전직 아이돌 장세랑(정연주 분)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백합물(여성 동성애 콘텐츠)이다. 방송 이후, 줄곧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 혐오 단체들은 이 웹드라마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 가운데, 방통심의위의 ‘권고’ 결정은 웹드라마 소재 등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기재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오픈넷은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 동성키스 장면에 대한 ‘권고’ 결정에 대해 “JTBC <선암여고 탐정단> 심의 때와 같이 동성애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차별적 인식에 기초한 것”이라며 “위반 규정의 명확한 적시 없이 추상적인 시정요구 권한을 이용하해 사업자나 콘텐츠 제작자에게 일정한 규율을 압박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사)오픈넷은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며 “그렇지만 동성간 키스 장면 등이 청소년에 대한 유해성이 있음을 전제로 ‘그 밖에 필요한 결정’의 시정요구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결정은 이성간 키스 장면과 달리 동성간 키스 장면에 대하여 청소년 유해성 등의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여당 추천 조영기 심의위원은 “우리가 아무 결정을 하지 않으면 동성애를 조장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돼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를 고려해서 개인적으로 강한 규제를 적용했으면 한다. (동성애는)사회통념에 어긋나는 행위이며 청소년에게 확산됐을 때 어떤 문제로 발전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성애 인정’, ‘동성애는 사회통념에 어긋난 행위’라는 성소수자 혐오 발언은 이번에도 나왔다.

이런 주장과는 달리 동성애 표현에 대한 문제는 이미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상 청소년유해매체물 개별 심의기준에서도 제외됐다는 게 (사)오픈넷의 설명이다. 이 기준의 항목이 2003년 <헌법> 상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삭제됐다는 것이다.

인터넷 등 통신 영역에 있어서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더 많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오픈넷은 “이번 심의는 방통심의위의 최초 웹드라마 콘텐츠에 대한 규제”라며 “방송 사업자가 아닌 포털이 서비스하고 있는 웹드라마의 경우, 현행법상 방송심의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정보로서 ‘통신심의’ 대상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픈넷은“방송 심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다행스럽다”면서 “하지만 위반되는 통신심의 규정이나 청소년유해물로서의 근거 규정을 명확히 적시하지 않은 채, 막연하게 청소년에 대한 유해성이 있을 수 있다는 의심만으로 웹드라마 플랫폼 사업자에게 시정요구를 결정한 것은 결국 방송과 같은 기준과 시각에서 이를 규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사)오픈넷은 “방통심의위가 시정요구 규정상 ‘그 밖에 필요한 결정’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이용하여 ‘자율규제 권고’ 등의 이름으로 사업자와 콘텐츠 제작자에 대한 내용 규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면서 “자의적이고 인권 침해적인 기준에 따라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문화 콘텐츠들의 내용을 검열하여 사업자나 콘텐츠 제작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시도를 중단하라”며 재심을 촉구했다.

한편, 방통심의위 홍보팀은 “동성애 관련 민원이 들어와 심의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판단을 한 게 아니다.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 상 흡연과 노골적인 키스 장면 등이 어린이와 청소년 정서를 해치고, 모방심리를 부추길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에 따라 사업자(네이버)에 자체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운영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12조(심의결정) 제5호 ‘그 밖에 필요한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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