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송혜교는 놀려야 제 맛인 것 같다. 벼랑 끝에서 절박하게 남겼던 유언 혹은 고백이 담긴 내용이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자 강모연은 우사인볼트 부럽지 않은 속도로 자신의 핸드폰을 채간다. 그 장면은 강모연에게는 괴롭지만 유시진을 비롯한 모두에게는 즐거운 일이기만 하다.

그 장면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의 한 장면처럼 꾸몄다면 훨씬 더 재미를 더했을 것이라는 혼자만의 생각도 들게 했다. 바로 춘향가의 유명한 군로사령 대목인데, 자신의 은밀한 속마음이 담긴 녹음이 방송될 때 허둥대는 강모연의 모습을 그렇게 판소리 대목에 얹었다면 훨씬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지만 아마도 그것을 떠올릴 수 있는 드라마 작가는 없을 것이다.

▲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어쨌든 강모연은 죽을 맛이겠지만 그 모습을 보는 유시진은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몇 번을 차이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보람이 있는 유시진이다. 이제 강모연 스스로 오늘부터 1일을 만천하에 고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더 이상 사과는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아니라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강모연의 모습은 귀여움의 극치였다.

그런데 은밀하게 나눴어야 할 여자의 속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 민망한 강모연을 위한 유시진의 젠틀한 고백 하나가 분주한 마음을 정돈시켜 주었다. 의료팀 막내의 거짓말에 낚여 무작정 달린 곳이 하필이면 유시진이 선 창가였다. 그만큼 강모연은 이 상황이 민망하기만 하다. 그런 강모연을 조금 놀려먹던 유시진은 또 다시 기습고백을 했다.

“자기 마음 들켰다고 졌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그래봤자 내가 더 좋아하니까”

이것은 연애기술이 아니라 매너고 배려이다. 그렇지만 배려만한 연애기술은 없음도 사실이다. 그것은 남자가 사랑을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요즘 가히 송중기 신드롬이 일고 있는 이유가 절대 외모 때문이 아니라 강한 듯 부드럽고 섬세한 감정을 가진 유시진이기 때문일 것이다.

▲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그 말에 강모연은 차분해지는 모습이었다. 설렘으로 민망함을 밀어내게 된 것이다. 그 시점으로부터 유시진과 강모연은 우여곡절 끝에 시쳇말로 오늘부터 1일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그들이 처음 겪는 일은 또 목숨 건 지뢰밭 탈출이었다. 유시진의 말처럼 멜로를 찍어야 하는데 자꾸만 작가는 블록버스터 속에 밀어 넣는다.

그런데 그 블록버스터의 이유는 멜로에 있었다. 유능한 특전사 대위 덕분에 둘은 무사히 지뢰밭을 탈출하게 되는데 문제는 차를 잃었다는 것이다. 유시진과 강모연을 농부의 낡은 트럭 뒷자리에 태우기 위한 위기였다. 오늘부터 1일인 남녀가 운전도 하지 않는데 뭘 하겠는가. 그것도 황홀하게 아름다운 일몰을 향해 달려가는 그 분위기에 할 것은 딱 하나뿐이다.

▲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키스다. 비포장길이라 하기 힘들었을 텐데 둘은 참 길게도 키스를 한다. 그러나 키스의 후유증이 남았다. 돌아온 캠프에서 둘은 조금은 쑥스러운 밤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두 사람의 뒤통수에 지푸라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더 이상의 상상은 하지 말자. 그래봤자 달리는 트럭을 타고 왔을 뿐이다. 어쨌든 달콤한 멜로신 이후의 이 코믹함도 나쁘지 않다. 그것은 유시진과 강모연이 멜로만 할 것은 아니라는 신호쯤 될 것이다.

오전에는 되게 예쁘고 오후에는 겁나 예쁜, 그렇지만 유시진의 장난에 속을 때가 가장 예쁜 강모연은 뭘 해도 참 허술하다. 그래서 작가는 강모연 놀려먹기에 아주 재미가 붙은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재다능 철두철미한 유시진 대위도 동참시켰다. 연애의 후유증이다. 그런 후유증 없이 또 어떻게 연애라 할 수 있겠는가. 두 사람 참 연애 잘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