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를 다시 만날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2008년 7월 5일 창원 촛불집회에서 그이의 노래를 처음 들었습니다. ‘행진’이었습니다. 가사 전체를 알지는 못하지만, 높은 소리로 “행진!” “행진” 할 때는 가슴 깊이까지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그이를 거의 여섯 달만인 12월 29일 마산 창동 촛불 집회에서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그이는 어김없이 ‘행진’을 불렀는데, 두 번째 듣는 노래여서 그런지 7월 여름과 같은 시원함은 없었습니다. 그이는 예명이 ‘지니’였습니다.

저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니’는 10년 동안 지역에서 가수로 활동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기간 이를테면 라이브 카페 같은 데서 이날 거리에서 부른 ‘행진’이라든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따위를 불렀을 것입니다.

▲ 12월 29일 마산 창동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김주완

사실 저는 잘 몰랐습니다만, 노래는 어떤 공간에서 부르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힘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니’라는 같은 사람이 ‘행진’이라는 같은 노래를 불러도, 거리에서 부르느냐 아니면 라이브 카페에서 부르느냐에 따라 노래가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라이브 카페에서 부르는 ‘행진’이랑 거리에서 부르는 ‘행진’이 같다고 한다면, 그것은 부르는 이와 듣는 이 모두에게 욕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는 어느 ‘행진’ 어떤 ‘지니’가 더 좋다거나 하는, 부당한 가치 개입 없이 드리는 말씀입니다.

8월 즈음 신문에 ‘지니’를 인터뷰한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이가 7월 거리에서 노래 부를 때 한 얘기가 그대로 실려 있었습니다. “사회 정치 문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민주노총 집회에서 노래를 부른 적도 있지만 그 때는 무슨 내용인지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저 돈을 벌려고 갔다. 돈 안 받고 노래 부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6월 10일 6·10항쟁 20주년 기념 촛불대행진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87년 6월항쟁이라든지 60년 마산 3·15의거 등도 알게 됐다. 이런 기분 난생 처음이다.”

저는 ‘지니’의 이런 발언을 전부 진실이라 믿습니다. 80년대 초반, 처참한 사진으로 광주항쟁의 실상을 보면서 비슷한 깨달음과 떨림을 체험한 세대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12월 29일 노래를 부르면서 했던 ‘지니’ 발언의 진정성도 그대로 믿습니다.

“여러분! 날씨가 이렇게 추워도, 이렇게 거리에서 같은 뜻으로 함께 모이고 외칠 수 있는 동지, 친구가 있는 여러분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좋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새해에는 더 나아질 것입니다!”

‘동지’ ‘친구’, 이런 말이 귀에 콱콱 박혀 왔습니다. 저 ‘지니’가 ‘동지’라는 낱말을 입에 올린 적은 그이 평생에서 올해 말고는 없었을 것입니다. 춥고 배고픈 자리에 자기가 함께한다는 데에 ‘영광’이라 생각하는 것도, 그이에게는 아마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 가수 지니 ⓒ김주완

2008년 촛불은 광우병 위험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돼, 정부와 한나라당의 언론악법 추진 반대로 마무리됐습니다. 이를 두고 결과를 낙관한다면, ‘이상한 녀석’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악법을 추진하는 세력이 지나치게 세기 때문입니다.

마치, 90년대 생산 현장에서 많이 부른 이런 노래 한 구절, “너희는 조금씩 갉아 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를 뒤집어놓은 국면 같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한꺼번에 집어 삼키지만 우리는 조금씩 되찾으리라.” 절망스럽습니다.

그러나 저는 촛불로 상징되는 행동 속에 ‘지니’와 같은 사람이 여럿 들어 있으리라는 짐작만으로도, 지난 한 해 보낸 보람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언론노조 파업이 되살린 ‘촛불’에서, ‘지니’가 “여러분은 축복받은 사람이고 초청받은 저도 영광이다”고 말하는 이상 말입니다.

‘지니’는 ‘촛불’ 현장을 스스로 찾아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선 사람입니다. 저는 여기서, ‘촛불’이 지닌, 작으면서도 능동적인 이미지를 봅니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의 인식과 행동의 지평이 이렇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70년대 중반 발표된 황석영 소설 <객지>의 마지막이 떠오릅니다. 어느덧 2009년인데 30년도 더 된 소설의 결말을 떠올리는 자체가 ‘퇴행’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멋지지 않습니까?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

저는 지금도 ‘지니’를 생각하면 그냥 행복해집니다.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꼭 내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바로 그런 까닭으로, 언젠가는 ‘지니’가 출연하는 라이브 카페에서, ‘지니’가 부르는 같은 노래를 다른 분위기에서 들어보고도 싶습니다.

저는 1963년 8월 경남 창녕에서 났습니다. 함양과 창녕과 부산과 대구와 서울을 돌며 자랐고 1986년 경남 마산과 창원에 발 붙였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는 1999년 들어왔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한 뒤에는 노동조합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일삼아 했습니다.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 9일까지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을 했으며 2009년 1월 기자 직분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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