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살얼음 같은 사회생활을 견디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 집 마련’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내 집 마련을 위한 피 나는 꿈은 비단 한국에서만일까.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서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21세기 초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많은 이들을 거리로 나앉게 됐다.

영화의 주인공인 데니스(앤드류 가필드 분)도 마찬가지다. 2주 동안 일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데니스의 비애는, 앞으로 그가 어떤 고난을 겪을 것인가에 대한 전조(前兆)와 다름없다. 그 후 데니스는 주택 대출금을 갚지 못해 살던 집에서 내쫒기고 모텔을 전전하며 생활하게 된다. 내 집 마련의 꿈이 산산조각 난 것이다. 동물로 비유하면 먹을 것을 조금 빌렸다가 갚지 못하자 보금자리를 송두리째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 <라스트 홈> 스틸 이미지

그런데 데니스는 자신의 집을 압류하겠다는 통보를 건넨 부동산 브로커 릭 커버(마이클 섀넌 분)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 자신의 집을 빼앗는 퇴거통지서를 전달한 사람이 릭이기에 릭의 얼굴만 보아도 치가 떨리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데니스는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일거리가 필요하고 집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자존심을 굽히고 릭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된다.

데니스가 퇴거통지서를 통해 자신의 집을 압류한 릭의 밑에서 일한다는 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먹이사슬에 희생당한 ‘양’이 또 다른 대출 연체자의 집을 차압하는 ‘도살자’로 변모한다는 걸 의미한다. 집을 빼앗길 위기에 봉착한 대출 연체자가 제대로 대출금을 납부한다면, 릭과 데니스는 부동산 브로커로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다.

대출금을 제 때 갚지 못하는 ‘희생양’이 있어야 이들은 먹고 살 수 있다. 데니스는 한때 희생양에 불과했지만 릭이라는 늑대의 등에 올라타 다른 주택 담보 대출자의 집을 빼앗는 약탈자의 대열에 가담한다.

영화 <라스트 홈> 스틸 이미지

이쯤 되면 성공한 희생양이 아닐까. 희생당한 희생양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잡아먹힐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다닌다는 건, 내 집 마련의 꿈이 태평양을 건너서도 녹록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임과 동시에 희생양이 희생양을 제물로 삼는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희생양이 약탈자의 등에 올라타 다른 희생자의 고혈을 빨아먹는 <라스트 홈>은 약자가 다른 약자를 갈취하는 병폐를 지적하는 것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주의’와 결부된다. 데니스가 약탈자 행렬에 가담한 것은 성실하게 일하고자 해도 개인의 성실함을 보상해주지 못한 미국 사회에 대한 변형된 ‘반항’이다.

동시에 미국 영화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가족주의, 즉 가족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가족주의가 데니스를 약탈자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악인의 가면을 써도 되는지를 영화는 관객에게 묻고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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