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21일은 UN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이날은 1960년 3월 21일에 남아공 샤프빌에서 인종분리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에 경찰의 발포로 인해 69명의 시민이 희생된 것을 기려서 1966년 UN총회에서 선포되었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최근의 유럽 난민사태를 둘러싼 상황에서 인종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사회 역시 인종주의가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으며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한국정부와 거대 양당은 이를 억제하거나 금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부추기고 있다. ▶바로가기: <대한민국 국회는 인종차별에 찬성합니다>

이런 가운데 고용노동부 이기권장관이 3월 16일 고용허가제 송출국 대사 간담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송출국가 정부 차원에서 불법체류 방지대책을 마련해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불법체류 감축 로드맵을 마련해 이행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날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년 고용허가제 및 개발협력 정책방향 자료에 의하면 개인이나 조직 브로커를 통한 사업장을 무단이탈하는 사례가 지속되고 귀국 후 재정착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하여 미등록체류율이 2015년 12월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 중 15.3%에 달한다고 한다.

과연 이주노동자들이 브로커에 꾀임에 빠지거나 스스로 원해서 귀국하지 않아 미등록체류를 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고용허가제도 상의 권리구제 장치의 미비나 행정적인 문제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비자가 없어지는 이주노동자들의 사례도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간담회 자료에서 고용허가제의 주요 성과로 입국→취업활동→귀국 전과 정에 걸친 철저한 인권 보호를 통한 이주노동자의 권익향상이 이루어졌다고 자축하고 있지만 실제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주노동조합에서 사건을 진행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a씨의 경우의 사례가 고용허가제가 제도적으로 얼마나 인종차별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성실히 일하던 a씨가 사업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면서 사업주가 관할 고용센터에 이탈신고까지 넣어 결국 비자를 박탈당했다. 이후에 지방노동위원회를 거쳐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받아들여졌고 사업장 이탈신고가 허위임이 밝혀졌다. 사업주가 이에 대해 다시 행정소송을 걸었지만 결국 1심에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2심으로 가는 과정에서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지급받지 못한 임금체불액과 사업장이탈신고를 철회하고 새로운 사업장으로 변경할 것을 골자로 하는 합의서를 작성하였다.

1년이 넘게 걸린 몇 차례의 소송 끝에 얻어낸 승리였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이제 다시 합법비자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부에서는 노동자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받아들여지더라도 이미 이탈신고가 처리되었기 때문에 비자회복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쉽게 말해서 같은 노동부 기관인 노동위원회에서는 부당해고라고 판정하여 복직하라는 판정을 내렸다면 노동청에서는 이탈신고와 부당해고는 별개이기 때문에 복직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심지어 사업주가 이탈신고를 취하하겠다는 공문을 보내왔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부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이에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변호사, 노조와 함께 행정심판을 준비하고 있지만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통해 권리구제가 가능하였겠지만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복직조차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인종차별적인 제도가 고용허가제이다.

한편 이기권 장관은 동일한 간담회에서 성실근로자 재입국제도가 만료되는 2017년 5월부터 자진귀국을 위한 적극적인 귀국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송출국 정부들에게 요청하면서 미등록체류율이 높은 국가의 경우 평가지표에 따라 도입규모를 축소하겠다는 엄포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4년 10개월 동안 한번도 사업장을 바꾸지 않는 이른바 성실근로자들이 출국 후 3개월 이후에 입국하여 다시 4년 10개월을 일을 하게 되면 결국 총 9년 8개월을 한국에서 일하는 셈이 된다. 10년에 가깝게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주권 신청을 막기 위해 4년 10개월씩 분할해서 일을 시키고 귀국하게 하는 단기순환방식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사업주들은 당연히 10년 가깝게 일한 숙련직 노동자들을 더 오래 고용하길 원할 것이고 이주노동자 역시 안정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정주화 움직임을 막기 위해 출국 후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하게 법률을 바꾸거나 송출국 정부로 하여금 이주노동자 입국 시에 보증금을 받아서 해당 기간안에 귀국하지 않을 경우 수령이 불가능하게끔 하는 인종차별적인 제도를 계속 도입하고 있다. 한국의 가장 밑바닥 경제를 책임지고 있으며 생산가능인구도 줄어드는 마당에 앞으로 더욱더 늘어날 이주노동자들을 여전히 쓰다 바꿀 수 있는 기계부품처럼 사고하는 인종차별적인 현행 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은 어마어마하게 초래될 것이다.

고용허가제, 출입국관리법, 테러방지법 등이 통과되거나 개악되면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적인 분위기는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존재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인종차별적 분위기가 오히려 한국 사회의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이하여 전세계에서 반인종주의 행동이 펼쳐질 예정이고 한국에서도 집회, 기자회견, 캠페인등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3월 21일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 맞이 온라인 인증샷 캠페인은 남녀노소 누구나 사진 한 장으로 참여할 수 있다. 첨부한 피켓 사진중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 인쇄하여 인증샷과 함께 migrantsact@naver.com(이주공동행동)메일로 보내거나 SNS상에 #인종차별철폐 또는 #STOPRACISM 으로 해시태그를 달아준다면 당신도 인종차별에 맞서는 국제행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을 철폐하라!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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