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는 모든 면에서 만족을 주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장르를 규정하는 일인데, 제작진은 이 드라마를 휴먼멜로라고 했지만 군인이 주인공이라 그런지 그보다는 애국멜로라는 말도 안 되는 명칭이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송중기와 송혜교가 국기 하강식에 나란히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에서 특히 그랬었다. <국제시장>도 아니고 21세기 드라마에 썩 어울리지 않았다.

▲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그렇다고 애국멜로라니. 이 어울리지도 않는 어이없는 명칭을 두고 나름 오래 고민해왔다. 왜냐면 그것은 이 드라마를 분명 냉소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고민의 이유는 이 드라마의 인기 때문이 아니라 이 드라마의 매력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번 냉소하고 나서 계속 보는 것도 이상하고, 리뷰를 하는 일은 더 어색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머릿속에 남은 오해(?)를 지워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제는 그 말을 쓰지 않아도 좋고, 써도 좋게 됐다. 재난구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7화의 내용 속에 그 애국멜로라는 말을 자유롭게 해주는 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쓴소리 한 번은 하겠거니 했지만 쓴소리 정도가 아니라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시쳇말로 사이다 명대사였다.

자칭 글로벌 노가다 30년의 한국인 고반장과 외국인 노동자는 건물 붕괴 속에 묘하게도 얽혀 있었다. 고반장은 무너진 건물잔해에 깔려 있고, 외국인 노동자는 날카로운 철재에 가슴이 관통되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중상인데 문제는 어느 한쪽을 건드리면 다른 한쪽에 치명적인 위험이 온다는 것이다.

▲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그 상황 유시진은 선택의 판단을 의사인 강모연에게 맡긴다.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에, 누가 더 생존가능성이 높은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의사이다. 강모연은 아주 어렵게 동포인 고반장이 아닌 외국인 노동자를 선택했다. 의사로서 또 같은 한국인으로서 정말 힘든 결정이었다.

그런데 그 비극적인 상황에 진상이 먼저 끼어들었다. 발전소 소장이 우르크 정부가 준 이면계약서가 중요하다며 인명구조에 바쁜 유시진을 재촉하고, 협박했다. 그러자 유시진이 폭발했다. 그리고 달콤한 말만 하던 그 입에서 강인하고 감동적인 대사가 거침없이 쏟아졌다.

“국가, 국가가 뭔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국가야. 그게 무슨 뜻이냐면, 너 같은 새끼도 위험에 처하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구해내는 게 국가라고. 군인인 나한테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라고 국가가 준 의무는 없으니까”

이런 국가라면 애국멜로는 백번이고 환영이다. 아니 그런 국가가 아닐지라도 이런 말을 하는 군인이 주인공이라면 애국멜로 찍을 자격이 있다. 기억하고 있을까? 며칠 전이 세월호 참사 700일이었다. 그리고 곧 4월 16일이 다가온다. 2년이 됐지만 참사 당시와 달라진 것은 없다. 기억하겠다는 약속도 많이 흐려졌다. 심지어 세월호를 거론하는 것은 불온한 일이 됐다.

▲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그저 한낱 드라마 대사였지만 큰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유시진이 그간 쏟아낸 연애의 아포리즘이 정말 많았지만 그 모든 대사들보다 현실인 것처럼 빨려들게 하는 명대사였다. 누구나 안전하고 싶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위험에 처할 때가 있다. 위험할 때에도 안전하니 걱정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위로가 되겠는가. 유시진 말은 그런 위로였다.

그리고 강모연은 그렇게 고반장을 포기한 날 밤, 사망자 현황판 아래 마련된 촛불에 불을 하나 켜고 분주한 구조현장 쪽을 둘러보면서 서럽게 울었다. 의사로서 미안하고, 인간으로서 애도하는 의미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 모습에 마음이 또 한 번 위로받았다. <태양의 후예>는 휴먼멜로가 분명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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