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에서 다음 주까지 4부작으로 방영되는 <베이비시터>는 <무림학교> 종영 이후 <동네변호사 조들호> 방영까지 공백 기간을 메우는, 이른바 땜방용 단막극이다. 하지만 그저 땜방용으로 치부하기엔, 이 4부작 드라마가 보여주는 내공은 거의 '프랑스 예술 영화' 저리가라다.

<베이비시터>는 첫 회에 이어 2회 연속 3.1%의 시청률을 보였다. 호흡이 짧은 단막극답게 저조한 시청률이다. 하지만 시청률로 이 드라마를 다 설명할 순 없다. 방영 시간 내내 드라마와 관련된 내용들이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렸고, 재생 사이트인 네이버 TV캐스트와 다음팟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단막극으로 높은 화제성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2부작 <퐁당퐁당 러브(MBC)>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베이비시터>의 화제성에는 아쉬운 점도 있다. 극중 베이비시터로 등장하고 있는 장석류 역의 신인 배우 신윤주의 어색한 발성과 표정이 '발연기' 논란을 일으켜 그 화제성에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불협화음을 차치하고 보면, <베이비시터>의 화제성은 온전히 감독 김용수의 '예술주의'로 귀결된다.

영상미 돋보인 단막극의 계보를 잇다

KBS 2TV 4부작 월화드라마 <베이비시터>

1991년에서 2007년까지 방영된 <MBC 베스트극장>이나 1980년에서 1987년까지 <TV 문학관>을 통해 다수의 유려한 단막극을 만나왔었다. 황인뢰 감독의 나뭇잎에 맺힌 이슬마저 싱그러웠던 화면이나, 근대화의 물결 속에 소외된 삶을 리얼하게 그려냈던 <삼포 가는 길>, 처연한 한의 정서를 다뤘던 <배따라기> 등 KBS를 대표했던 걸출한 연출자들의 진면모를 이런 작품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청률 지상주의 시대가 되면서 실험적이고 영상미 위주의 단막극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 이제는 <퐁당퐁당 러브>처럼 방송이 종료되는 밤 12시 이후나, 아니면 <베이비시터>처럼 미니 시리즈와 미니 시리즈 사이, 그게 아니라도 시즌제로 가물에 콩 나듯 땜방하는 처치로 전락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단막극의 침체는 제작비 문제와 한국 문학의 침체와 맞물려 좋은 원작의 고갈이란 원인에서도 찾을 수 있다. <TV 문학관>의 예술이 가능했던 것은 그 화면을 채울 근현대문학이란 든든한 서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MBC 베스트극장>의 실험성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소재의 고갈을 메우기 시작한 것은 공모전과 웹툰 등의 새로운 장르이다. 화제가 된 <퐁당퐁당 러브>는 연출 김지현의 자작 극본이고, <베이비시터>는 2014년 극본 공모 우수작이다.

KBS 2TV 4부작 월화드라마 <베이비시터>

그런데 정작 <베이비시터>를 가득 채운 것은, 스토리보다는 김용수라는 연출자의 족적이 뚜렷한 영상이다. 드라마는 발연기 논란이 된 신인 배우의 부족한 연기력과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쉬운 주연들의 불협화음을 온전히 화면으로 채운다.

이른바 영상미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예술 영화처럼, <베이비시터>는 영상을 통해 한 가정의 행복을 깨나간다. 드라마가 시작되자 의문스러운 눈빛의 푸른 빛 여성의 얼굴이 그득한 화면으로 차를 몰로 등장하는 여주인공 천은주(조여정 분)의 모습에서 이미 시청자들은 불안감을 충분히 감지한다. 그리고 화목한 등장인물들을 쉴 새 없이 가르는 화면들은 그들 사이에 드리운 존재의 간격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말 한 마디 없이, 서로 스치는 인물들 사이의 공기조차 그들이 미처 말하지 못한 감정의 지문을 드러낸다. 화면을 가로세로 혹은 사선으로 나누는 건물, 그리고 인물들의 발, 손짓 하나하나가 말을 건넨다.

그저 영상미의 문제가 아닌

전작 <아이언맨>이라는, 지상파에서는 시도되기 힘든 실험적인 장르를 연출로 설득해 낸 김용수 감독답다. 그는 19금 드라마의 영역 표시에 어울리게 한 가정에 등장한 베이비시터로 인한 파열음이라는 치정을, 눈이 시릴 정도의 현란한 색감과 그 색감을 멋들어진 구도로 표현해 낸다. 비록 배우들의 감정은 아쉽지만, 그 부족한 감성조차 화면이 설득하니 진수성찬을 먹는 듯하다.

KBS 2TV 4부작 월화드라마 <베이비시터>

이야기의 전개는 <사랑과 전쟁> 판이지만, 그 표현방식이 다르니 '미친 년'도 절로 순화되어 그들의 속내를 살펴보게 된다. 드라마의 표현에 따라 시청자들 감정의 파고도 달라진다. 그래서 문득 드는 생각, 만약 TV 드라마들이 모두 이렇게 예술을 한다면 어떨까?

얼마 전 막장으로 높은 시청률을 올린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는 혹독한 한국 드라마의 촬영 환경을 막장 드라마의 원인으로 삼았다. 시청률 지상주의와 핍박한 제작 환경은 기승전결의 논리가 상실된 감정만이 극에 치달은 막장 드라마를 양산하고 만다. 하지만 똑같은 '치정'의 감정이라도, 담긴 그릇이 다르니 이해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만약 TV 드라마들이 모두 김용수 감독처럼 연출을 한다면, 그 TV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감성도 조금은 덜 강퍅해지지 않을까? 바닷가에서 하늘을 바라보던 주인공들이 한없이 아름다웠던 <베이비시터>의 한 장면처럼. 김용수의 예술주의는 그저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와 정서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래서 김용수 감독에게 예술 활동을 허하라의 논제는 그저 간식처럼 간간히 3%라도 단막극을 허하라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하루 종일 국회를 생중계로 보여줘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 영국의 BBC처럼, 방송의 정서와 구조의 문제이다. 3%의 예술로 드라마가 가득 찬다면, 아마도 우리가 사는 세상도 조금은 순화되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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