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밤, MBC 남문으로 들어서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 초대받은 연기자들과 혹한 속에서 종일을 파업 시위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인 MBC 노조원들, 그들이 마주치면 무슨 인사를 나누어야 했을까? 시상식 전 레드카펫 행사로 인해 노조 사무실로 곧바로 질러가는 문은 잠겨 있었다. 파업 직전까지만 해도 공들여 준비해 왔던 연말시상식, 그 장소에 있었어야 할 제작진들은 레드카펫 행사를 피해 멀리 돌아 조용히 노조사무실로 들어가서 생방송을 시청하는 것으로 연말의 방송 축제를 대신했다.

▲ 30일 MBC 연기대상에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는 배우 문소리.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가수 이문세가 수상 소감을 통해 “지금 MBC가 파업 중인데 엄동설한에 부디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노조 사무실에서는 환호성이 터졌을 것이다. 이어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문소리도 “오다 보니 MBC가 파업 때문에 촛불시위를 하는데 나는 그 쪽으로 가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하지만 매니저가 이쪽으로 와야 한다고 해서”라며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파업을 응원했다. 노조원들은 “역시, 문소리”라고 고마워했을 것이다.

전날인 28일 MBC방송연예대상에서도 MC를 맡은 이혁재가 “방송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어 이번 시상식이 제대로 방송될지 걱정했다”는 말로 진행을 시작했다. 이날 PD들이 뽑은 베스트 프로그램상 수상자인 ‘무한도전’의 유재석은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많은 분들이 함께 하는 축제에 제작진이 함께 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밝히며 제작진에게 영광을 돌렸다. 코메디, 시트콤 부문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문식도 “하루빨리 방송이 정상화돼 즐겁게 일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파업을 언급한 발언을 한 바 있다.

파업 중인 MBC노조원들은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로 고마웠을 것이고, 많은 시민들이 그들의 ‘개념’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1월 끝내 개최되지 못했던 미국의 ‘6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07년 11월부터 미국의 방송작가들은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고 할리우드 스타들은 파업 지지의 상징으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전원 불참을 통보했다. 시상식을 생중계할 예정이었던 NBC는 기자회견과 수상자 목록으로 방송을 대체했고, 워너 브라더스 등의 스튜디오들이 파티를 취소했다. 이후 파업 타결이 예상되어 무사히 개최될 것으로 보였던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도 미국의 대표적인 연예 패션 월간 잡지인 <베니티 페어(Vanity Fair)>는 타결여부와 상관없이 파업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 상징으로 자신들의 유명한 아카데미 시상식 파티인 ‘베니티페어 파티’를 취소했다. 그 때 당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불참했던 연기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파업에 참여한 이들이 시위하고 있는 길을 가로질러 레드카펫을 걸을 수는 없노라고.

30일 밤 수상 소감을 통해서 파업을 응원한 연기자들 중 아무도 파업을 공식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다. 연예인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큰 각오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하시는 일 잘 되길 바란다’는 정서적 ‘응원’ 대신, 연기자가 ‘한나라당의 언론장악 7대 악법 저지를 위한 제작진들의 파업을 나 또한 방송계에 일하는 사람으로서 지지한다’는 정치적 입장을 밝히면 안 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맞는가? 그들은 모두 파업에 참여하는 이들이 시위하고 있는 길을 가로질러 레드카펫을 밟았다. 파업에 대한 지지와 연대는 찬성표 하나를 던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라도 지키고 싶은 정치적 입장이다. 2008년 연기대상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수상자들의 눈물보다 연기자들의 불참이라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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