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마리끌레르 영화제 (2016)

해마다 봄과 함께 찾아드는 영화제가 있다. 바로 잡지 [마리 끌레르]가 개최하는 [마리 끌레르 영화제]이다. CGV 청담씨네시티에서 열린 제 5회 [마리 끌레르 영화제]에서는 개봉을 앞둔 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를 시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던 중국 영화 <산이 울다>, 말론 브란드의 일생을 담은 <리슨 투 미 말론>, 재상영되는 명작 <양철북>까지 여러 국가의 다양한 주제 의식을 가진 총 31편의 영화들이 상영된다.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는 영화에 갈증을 느낀 관객에겐 저렴한 비용(5000원)으로 고품질의 영화를 만나 볼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그 중 오늘 소개할 영화는 팀 브레이크 넬슨 감독의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와 파스칼 포자두 감독의 <마지막 레슨>이다. 두 영화는 스릴러와 드라마라는 각기 다른 형식에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두 노인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역설적으로 삶의 문제를 질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죽음을 회피하거나 외면하며 도망치듯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결국 유한한 삶의 완결로서 죽음을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보는 이 영화들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바람처럼 맞이하게 되는 죽음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스릴러라는 영화 장르가 무색하게,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채우는 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갑남을녀의 지루하리만치 평범한 일상이다. 30여 년간 철학 강의를 하는 월터 교수는 여전히 젊은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 암일지도 모를 아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렇게 중년 부부의 일상을 '건강'이 침범하는 것과 달리, 청춘을 보내는 그의 아들과 딸은 부모의 간섭을 피해 대마를 피우며 청춘사업과 버거운 학업에 고뇌한다. 그렇다고 월터 교수네 가족 이야기가 중심도 아니다. 뉴저지 교외에 사는 중산층 사라와 샘 가정의 공허함도, 마약 상습범인 시더와 잘 나가는 변호사인 그의 친구의 갈등도 등장한다. 물론 이 영화의 출연으로 홍보된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삶의 의미를 찾는 월터 교수의 제자로 등장한다.

영화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스틸 이미지

월터 교수의 강의로 시작한 영화는, 과학 기술은 발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의식적 삶에 대한 갈구를 멈출 수 없는 인간의 현존재에 대한 월커 교수의 마지막 강의로 정점을 이룬다. 제자들의 존경어린 박수 소리 뒤로 자신의 다리를 고데기로 지지는 젊은 여학생과, 친구나 의료진의 도움도 소용없이 마약 욕구를 참지 못하는 중독자의 모습이 겹쳐지며, 현대 사회 속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30년의 강의에도 여전히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는 교수는 마지막 강의를 마친 저녁 아내를 위해 꽃을 사들고 가는 길에, 그를 오해한 노상강도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마약 중독자는 노교수를 구하려다 죽음을 맞이하고, 외도 중이었던 샘이 그들을 발견한다. 그렇게 편린과도 같은 일상이 죽음으로 귀결된다.

영화는 언뜻 '인생무상'을 다루는 듯하다. 오랫동안 강단에서 인간의 선의와 신념을 주장했던 노교수는 선의를 곡해한 '개죽음'을 당하고, 마약을 끊지 못했던 중독자는 허무하게 죽어간다. 그런 죽음을 목격한 중년 가장은 그곳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정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의 가정은 이제 그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하지만 피를 흘리면서도 아내에게 꽃다발을 전해주려 했던, 그리고 양배추 밭에서 바람처럼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유언과도 같은 노교수의 말을 통해, 이 우연한 비극과도 같은 일련의 전개는 결국 삶과 죽음에 대한 처연한 성찰로 다가온다. 영화의 마지막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 사건은, 두 시간 여 영화를 지루하게 이끌어왔던 일상과 대비되며 삶의 무게와 의미를 전파한다. 굳이 고데기로 지지지 않아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생생한 삶이다.

신념으로서의 존엄사 - <마지막 레슨>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가 조각조각 이어 붙여가는 삶과 죽음의 모자이크라면, <마지막 레슨>은 굵직한 글씨로 써내려 간 휘호와도 같다. 한눈에 늙음이 드러나는 노인, 거리에서 갇혀버린 그녀의 차를 통해 그 늙음은 더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그리고 어렵사리 도착한 딸네 집에서 벌어진 그녀의 아흔두 살 생일 파티. 거기서 마들렌 여사는 두 달 후 10월 17일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마무리할 것임을 선언한다.

영화 <마지막 레슨> 스틸 이미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등장하고 있는 '존엄사'. <마지막 레슨>은 이제 더는 스스로 삶을 이끌어 갈 힘이 부치는 아흔두 살 마들렌의 결정과, 그에 대한 가족들과의 갈등을 통해 막연한 존엄사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더 이상 일상을 영위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겠다는 어머니의 결정은 그녀의 전 생애를 이끌어온 신념의 문제와 연결되며, 해묵은 감정에서 비롯된 갈등마저 끄집어내는 미묘하고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영화는 직시한다. 그리고 죽음이 그저 개인의 선택으로 마무리되기엔 너무 버거워져 버린, 사회라는 체계 속의 인간의 그림자를 촘촘히 살펴나간다. 또한 단호한 마들렌 여사의 결정을 통해, 죽음은 그저 어떤 의료적 행위가 아니라 삶의 체계를 가진 존재로서, 신념을 가진 의식적 존재로서 인간적 서사의 마무리라고 영화는 주장한다.

평생 자신의 신념을 향해 살아온 어머니를 끝내 용납할 수 없는 아들.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의료 체계 속에서 고사당하는 삶을 거부하는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딸. 그리고 그런 자식들과의 갈등 속에서 고뇌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지키려고 애쓰는 마들렌 여사. 막연했던 존엄사는 이들의 고민과 갈등을 통해 구체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인생이 마무리되는 날을 스스로 결정한 마들렌 여사, 평생을 세상에 대한 밝은 눈을 가지고 선의로 지켜왔던 월터 교수의 뜻하지 않는 죽음, 두 노인의 죽음은 극과 극이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이 사건이건 주도적인 결정이건, 결국 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다. 어머니의 결정을 존중하고 받아들인 딸은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마지막 레슨'이라고 말하며,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더 이상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죽음은 삶의 완성일 뿐, 결국 그 마침표를 찍기까지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두 영화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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