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관련 법안, 경제활성화 법안, 테러방지법 등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쟁점 법안을 다룰 때, KBS 뉴스가 여당편향적인 보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부 분석이 나왔다. 정부여당 입장을 대변하거나 동조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보도가 61%로 압도적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 노조)는 14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연구동 새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밝혔다. 새 노조는 올해 1월 1일부터 3월 8일까지 KBS 메인뉴스 <뉴스9>에서 정치외교부 기자들이 참여한 리포트 260건을 전수조사해, 여야 입장차이가 뚜렷한 쟁점 법안을 균형 있게 다뤘는지 살피고 5점 척도(매우 여당 편향적 5점, 여당 편향적 4점, 균형 3점, 야당 편향적 2점, 매우 야당 편향적 1점)로 점수를 매겼다. 그 결과, 균형을 지켰다고 평가되는 리포트는 전체 쟁점 법안 보도 54건 중 21건으로 39%에 그쳤다.

KBS뉴스는 노동 관련 법안, 경제활성화 법안, 테러방지법 및 사이버테러방지법안, 국회선진화법 개정, 선거구 획정 중 5가지 법안 처리 문제를 다루면서 정부여당을 옹호하는 입장을 자주 취했다. 정부(청와대)와 여당 입장을 대변하거나 동조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보도량이 61%(33건)나 됐다. 구체적으로, 매우 여당편향적인 리포트는 30%(16건), 여당 편향적인 리포트는 31%(17건)이었다. 특히 새 노조는 “정부여당에 매우 편향적인 보도로 평가된 리포트 16건 중 11건은 대통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 촉구 주장만을 별도의 꼭지로 다룬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기간 야당에 유리하거나 야당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할 만한 리포트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새 노조에 따르면 정부여당에 편향적인 보도로 평가되는 리포트 33건 중 정부의 테러방지법(사이버테러방지법 포함) 관련 보도가 16건으로 가장 많았다. 노동 관련 법안 9건, 경제활성화법 4건, 국회선진화법 4건, 파견법 2건, 북한인권법 2건(중복 포함, ‘중복’이란 한 리포트에서 두 가지 이상 법안을 다뤘을 경우를 말한다) 등이 뒤를 이었다.

3월 2일 KBS <뉴스9> 보도. 국정원이 정보수집권을 갖게 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으나, 법안 대표발의자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의 코멘트나 앵커와 기자 멘트 등을 종합했을 때 테러방지법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 리포트였다.

KBS뉴스의 여당편향적인 리포트의 비중이 큰 탓에, 법안 처리와 관련해 균형적인 리포트가 한 건도 나가지 않은 날도 8번(1월 5일, 1월 12일, 1월 15일, 1월 25일, 2월 3일, 2월 19일, 3월 7일, 3월 8일)이나 됐다. 새 노조는 “특히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직후인 3월 7일부터는 테러방지법과 쌍둥이 법안으로 불리는 사이버테러방지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정부와 국정원의 북한 사이버테러 위협 조장을 무비판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 노조는 또한 정치외교부가 생산한 뉴스 260건 중 북핵 관련 보도가 123건(47%)으로 압도적인 1위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새 노조는 “북핵, 북 미사일, 개성공단 폐쇄 등 북 핵실험 이후 관련 보도는 정치외교부 전체 보도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더구나 같은 기간 북한부에서 참여한 9시 보도량 73건을 합치면 모두 196건으로, 하루 평균 3건(2.88)에 가까운 북핵 관련 보도를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모두가 함께 읽는 ‘감시 보고서’ 발간, ‘필리버스터’로 시청자 참여 유도

새 노조는 이처럼 ‘북한 뉴스’가 범람하고, 입장 차가 뚜렷한 ‘쟁점 법안’을 여당에 우호적으로 보도한 사례를 소개한 후, ‘과연 이런 상황에서 KBS뉴스가 공정성과 균형을 담보할 수 있겠나’라는 물음 아래 ‘제대로 된 선거방송’이 나갈 수 있도록 총선보도감시단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성재호 본부장은 “테러방지법과 관련돼 야당이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반대 필리버스터를 했는데, KBS뉴스에서는 (필리버스터를) 반대하는 정부여당 입장을 지속적, 반복적, 노골적으로 전달했다”면서 “테러방지법 통과 이후에는 여당이나 국정원 보도자료를 그대로 갖고 와서 반복적으로 톱 뉴스를 내고 있다. 국정원이 사이버테러 사실을 왜 쉬쉬하다가 이제 밝혔는지, 누구를 어느 정도로 사찰했는지에 대한 얘기가 없다. 취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당연한 물음들이 실제 리포트 내용엔 들어가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여론 띄우기를 하고 정부여당이 법 통과를 밀어붙이는 뻔히 보이는 수순들을 하는 데 있어 KBS뉴스를 제일 앞장세우고 있다”며 “이게 과연 국민의 방송인지 정부여당의 방송인지 묻고 싶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오태훈 부본부장은 “보도의 공정성을 제고하는 어떤 형식들이 존재하지만, 그것 자체가 완전한 공정성을 담보하는 장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편집자들의 양심과 이성적인 판단이 가장 기본이 돼야 한다. ‘공정성’이라는 원칙은 투명하고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며 “(총선감시보고서를 내어 내용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내 게시판에 게시하고 취재기자, 데스크, 국·부장, 본부장, 사장 모두에게 발송하고 있다. (취재 보도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공정 사례가 드러날 경우에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언론과 국민에게 알리는 작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14일 오후 2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사무실에서 <4.13 총선 KBS보도 감시활동 관련 기자회견>이 열렸다. 왼쪽부터 성재호 본부장, 오태훈 부본부장 ⓒ미디어스

취재, 보도에 관여한 당사자들에게 보고서를 발간, 발송한다는 것이 이전의 총선보도감시단과의 차별점이다. 그러나 노사 단협에 의한 공정방송위원회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노조와 직능단체가 하고 있는 ‘공정방송 감시활동’에도 징계로 대응하는 엄혹한 상황에서 ‘보고서 발송’이 보도국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 성재호 본부장은 “(보고서를 낸다고) 거기에 공감하거나 (현재의 보도 태도를) 쉽게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합에서 이 정도로 우리 보도를 세세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있다. 또 문제점을 당사자들이 직접 볼 수 있게끔 전달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태훈 부본부장 역시 “피드백도 (보도가 나아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보고서 내용이 사내에 게시되고 이와 관련한 의견이 돌아다니면 (불공정 보도 행태가) 위축될 여지가 있고, 취재기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오가는 결과를 만든다는 점도 의미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새 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정수영 간사는 “(보고서 내용은) 모든 사원들이 다 보는 코비스(사내 게시판)에도 올라가지만 특히 기자들이 자주 들어가는 보도정보게시판에도 실시간으로 올라간다. 내 취재 보도 내용에 대해 다른 기자들도 다 같이 보고 있다는 압박감도 생길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새 노조는 ‘끊임없는 견제와 감시’가 가능하도록 시청자, 네티즌들이 직접 참여하는 ‘KBS보도 댓글 필리버스터’도 함께 운영한다. 그동안 SNS에서 잠시 떠돌다 사라졌던, KBS뉴스에 대한 ‘의견’들이 모이는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새 노조 트위터 계정(링크)과 댓글 필리버스터 페이스북 페이지(링크)를 중심으로, 외부 커뮤니티에서까지도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성재호 본부장은 “끊임없는 댓글 감시로 불공정한 KBS 총선 보도를 막아달라는 의미”라며 “(간부들은 <뉴스9>의 시청률) 18%, 19%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얘기하지만 저희가 느끼는 (뉴스) 신뢰도는 최악이다. 이런 걸 (직접 참여를 통해) 깨 주시고, 감시해 달라는 것이다. 포기, 무관심이 아니라…”라고 말했다. 이어, “재미있고 날카로운 콘텐츠를 제공해 댓글을 안 달 수 없게 만들어보도록 고민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새 노조는 KBS 기자사회의 불공정 보도 행위나 압력 사례 등을 돌아보고 더 나은 보도를 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KBS 보도 토론회>(가칭)도 준비하고 있다. 아직 날짜와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외부에 ‘공개’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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