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무대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던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는 자라서, 남자 아이는 자신이 사진을 찍던 결혼식 부케를 낚아채서 여자 아이에게 결혼 신청을 했고, 이에 여자 아이는 자신이 먼저라며 반지를 주며 프로포즈를 한다. 초등학교 시절 생리적 현상으로 이루지 못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은 어른이 되어 비로소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 나름 운명적인 러브 스토리의 결말은 '재혼'이었다. 결국 하늘이 맺어준 진정한 짝을 만나기 위해, 두 남녀는 각자 한 번의 결혼이라는 장애물을 통과해 온 것이다. 3월 10일 종영한 <한번 더 해피엔딩>의 결말이다.

아침드라마에서 주말 드라마까지, 재혼의 범람

MBC 수목드라마 <한번 더 해피엔딩>

그리고 보면 아침드라마는 드라마계의 트렌드 리더라고 할 수 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숱한 아침드라마들이 '이혼'과 '재혼'을 드라마의 주된 내용으로 삼아왔다. 멀쩡하게 잘 살아가던 주부가 남편의 불륜 등으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고, 하지만 '똑순이' 같은 그녀는 일은 물론 먼저 남편보다 훨씬 더 잘난 남자를 만나 '재혼'에 성공을 거둔다는 스토리는 아침드라마에서는 '늘어난 테이프'가 될 정도로 흔해빠진 소재가 되어간다. 그런데 아침드라마가 선두 주자 격으로 우려먹던 그 소재가, 어느덧 주중 미니시리즈, 주말드라마에까지 영역을 넓히며 다종다양하게 변주되어 방영되고 있다.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재혼'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을 드러낸 <한번 더 해피엔딩(MBC)>의 주인공 송수혁(정경호 분), 한미모(장나라 분)는 물론, 이들과 엮이게 된 구해준(권율 분)은 모두 사별이나 이혼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드라마는 한미모의 재혼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해프닝들을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한번 더 해피엔딩>만이 아니다. '재혼'을 다룬 드라마들이 즐비하다. 주말드라마의 왕좌를 굳건하게 고수한 <내 딸 금사월>의 후속작 <결혼 계약>의 여주인공 강혜수(유이 분)는 일곱 살짜리 딸과 사는 싱글 맘이다. 그런 그녀가 비록 나이는 한참 차이 나지만 미혼인 서른일곱 살의 한지훈과 엮이며 벌이는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10시 드라마만이 아니다. 8시 45에 방영되는 <가화만사성>에는 '재혼' 예상 인물이 여러 명 등장한다. 그들은 현재 모두 이혼은커녕, 결혼 상태이다. 하지만 벌써 남편의 외도가 들통 난 한미순(김지호 분)에, 역시나 죽은 아이로 인한 채워질 수 없는 불화에 외도가 겹친 봉해령(김소연 분), 거기에 오랜 시간 가부장적인 남편에 시달려온 배숙녀(원미경 분)까지 모두 잠재적 이혼 예상자들이고 재혼 대상자들이 된다. 드라마는 이들의 바람 잘 날 없는 이혼과 재혼 스토리를 다룰 예정이다. 심지어 아직 이혼도 하지 않은 봉해령에게는 상대남 서지건(이상우 분)이 등장했다.

MBC만이 아니다. KBS와 SBS도 뒤질세라 '재혼'을 화두로 삼는 드라마가 등장한다. KBS 주말드라마 <아이가 다섯>은 아이가 둘 딸린 남자와 셋 딸린 여자의 순탄치만은 않아 보이는 재혼 스토리를 극의 골간으로 삼는다. 대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사연을 다룬 <그래, 그런 거야> 역시 재혼을 빼놓을 수 없다. 몇 주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아내를 잃은, 그래서 한 집에 살다 '불륜'으로 오해받기까지 한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이제 서로 먼저 재혼하라며 권하는 사이다. 결국 방송 3사, 가장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시간대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재혼'을 소재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렌디한 소재, 재혼

MBC 주말드라마 <가화만사성>

왜 재혼일까? 두 말할 필요 없이 늘어나는 이혼율 때문이다. 한때 세계 2위였던 정확하게는 2015년 기준 OECD 9위, 아시아 1위의 현실이 바로 '재혼' 권유 드라마의 배경이 된다. 심지어 서울의 경우 황혼 이혼율이 신혼 이혼율을 앞지를 만큼, 다양한 연령층의 이혼이 일상화되어 가는 세태를 드라마는 반영한다. 하지만 그저 이혼율이 높은 것만으론 다 설명되지 않는다. <한번 더 해피엔딩>의 여주인공 한미모가 재혼 컨설팅업체 '용감한 웨딩'의 대표 이사로 등장하는 것처럼, '재혼'이라는 것이 전문컨설팅 업체가 등장할 만큼 '여사'가 된 세태도 뒷받침한다. 즉 이혼을 하지만, 한 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한번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희망이 여전함을 드라마는 반영한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율이 15% 급증한다는 통계에서도 보여지듯 우리나라 이혼 이유의 상당수는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에 기인한다. 즉 노후한 가족 제도와, 그 제도에 더는 적응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이 높은 이혼율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지듯, 대부분 사람들은 한 번의 결혼에서 얻은 경험을 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그리 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재혼'은 여전한 불씨를 안고 있다. 그런 한에서 드라마가 '권하는 재혼'이란, 마치 이전 드라마들이 백마 탄 왕자와의 행복한 결혼으로 해피엔딩을 꾸려온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해결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재혼' 권장 캠페인과 같은 드라마의 범람 안에는, '불온하게도' 위기의 가족 제도를 재혼이라는 장치로 봉합하려는 가족주의의 음흉한 의도 또한 숨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이혼'은 '가족 제도' 속에 꾸려져 있는 일원이 한 개인으로 방출되는 과정이다. 그런 개인이 많아질수록, 즉 이혼율이 높아져 갈수록, 우리 사회가 지탱해왔던 '가족'이라는 제도가 붕괴되어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드라마는 이혼이 여사가 된 세상에서, 다시 한번 결혼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가족' 제도를 꾸깃꾸깃 꿰어 매고자 한다.

하지만, 거기에 이혼이라는 과정에서 겪었던 실패에 대한 반성은 그리 깊지 않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재혼'을 다루지만, 그 방식이 이전에 '결혼'을 다루던 드라마적 방식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던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 그런거야>에서 상처한 장남은 늙은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눈을 못 감으실까봐 못이기는 척 재혼 맞선 자리에 나선다. <한번 더 해피엔딩>이 어린 시절 첫사랑을 재혼의 과정에서 만난 것도 마찬가지다. <가화만사성>에서처럼 지금 남편보다 더 자상한 남자를 만나면 해결될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선택'은 쉽지 않다. 그저 트렌디한 요깃감을 넘어, 이제 우리 사회의 현실적 문제가 된 이혼과 재혼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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