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태풍이 와도 홍수가 나도 서울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 불과 10여 전만 해도 태풍과 홍수 피해에 서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태풍과 홍수가 서울을 피해가지는 않지만, 이미 서울은 거의 완벽한 대비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원도에서 눈사태가 나고 산불이 나고 태풍으로 몇 몇 마을이 날려갈 때도 서울에서는 자연재해가 하나의 ‘구경거리’가 될 수 있을지언정 서울의 일은 아닌 것이다.

서울·수도권만 1류고 그 외 지역은 3류로 전락당한 현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도 마찬가지. 경기도지사 김문수와 함께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 ‘반지역 친수도권 정책’이 바로 그 증거.

수도권의 규제를 대대적으로 완화함으로써 그나마 있던 지역의 회사들이 서울로 경기도로 이전 준비를 하고 있다. 서울·수도권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지역으로 공장 이전을 계획하던 회사들이 오히려 특혜성 지원책에 힘입어 주저앉는다.

미디어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신문특별법을 통해서 지원하던, 그마저 쥐꼬리만한 지원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예산 전액삭감이라는 칼을 망나니처럼 휙휙 휘둘러 버렸다. 지역신문 존재 의미를 깡그리 무시한 작태. 그런데 지역신문만 말려 죽이려는 것이 아닌 게 더 큰 문제다.

지금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하려고 드는 ‘언론장악 7대 악법’ 중 대기업과 언론재벌들의 지상파 및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소유 허용은 말 그대로 지역방송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것이다.

▲ 지난 12월 26일 전국 지역 11개 신문지면 1개면에 실린 전면광고.
공공미디어연구소의 최근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종합편성채널이 허용되면 지상파 전체 광고매출액의 17~36% 감소 효과가 일어난다. 올해 지상파 총매출 예상액 2조3천억원 중 20%면 4600억원이고 30%면 6900억원이다. 지역MBC와 지역민방 전체 광고 매출액이 5천억원 안팎이다. KBS2, MBC, SBS가 종합편성채널이 추가 허용되면 일정한 타격을 입을 수 있지만, 이들은 서울기반의 방송사이기 때문에 인적·물적 인프라가 탄탄하다.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할 수밖에 없다. 역으로 고스란히 지역방송사의 광고물량이 신규 종합편성채널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몰고 오는 것이 필연이다.

강남에 부동산 등을 소유한 8명의 재판관이 난동을 부려 ‘강남헌재’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현 정권의 사주를 받아 ‘코바코 체제’의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린 것에 더해 지금 한나라당이 시도하고 있는 방송법·신문법 개정을 통한 대기업·신문재벌들의 지상파 및 종합편성채널 소유 허용 기도는 회생불능 상황으로 지역방송을 내몰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지역방송 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고, 또한 지역방송 경영진의 오판이다. 지역방송 구성원들은 적어도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치열한 파업투쟁 등으로 온힘을 다해 맞서고 있다. 하지만 지역방송 경영진들은 한나라당의 악법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 표명마저 없다는 사실에 솔직히 분노를 감추기 어렵다.

또한 최소한의 생존을 통한 지역방송의 역할 유지, 지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안정된 창구로서의 존재, 지역문화에 대한 대변인으로, 지역여론의 반영체로 또는 주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지역방송발전특별법’ 등 법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요지부동이다.

지역신문발전특별법도 있는데 왜 지역방송발전특별법은 없는가? 지역신문보다 지역방송이 못하기 때문인가? 오히려 공공성의 측면에서 보면 지역신문보다 지역방송이 다양한 측면에서 훨씬 앞서 있고, 보호할 가치 비중이 훨씬 큼에도 불구하고 지역방송 경영진들의 오판 등이 지역방송의 안정적인 생존과 최소한의 발전마저 꿈꿀 수 없게 하고 있다.

경영진의 오판? 냉정하게 한 방송사 내에서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수많은 자구 노력이 위기를 해소하는데 미치는 효과는 10%도 되지 않는다. 아무리 구성원들을 줄여도, 제작과 송출은 해야 한다. 지역민을 위한 지역방송을 해야 한다. 이런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력을 감축해버리고 생존하면 무슨 의미? 결국은 법과 제도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근본적인 위기요인을 제거해야 하는 데 경영의 중심을 둬야한다.

스스로 돕지 않는 자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제 지역방송 스스로 자구책을 준비해야 한다. 머리를 모아 자구책을 만들고 힘을 모아 국회에서 관철시키는 일련의 생존 대비책 없는 ‘해고·명퇴경영’은 접어라. 함께 돌파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하라.

일방적인 반지역 친수도권 정권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지역여론의 메카로서 지역방송을 포기하게 됐을 경우, 그 지역사람들의 억울함을 대변하고 지역사람들이 서울·수도권 사람들과 비교할 때 받는 차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능력이 없어 ‘3류도민’ ‘5류시민’이 된 것이 아니라 단지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3류도민 5류시민으로 전락당한 지역민들, 3류도 5류도 서울·수도권의 정책결정자들이 일방적으로 분류했다는 점에서, 지역언론 특히 지역방송들은 상당한 책임감을 느끼고, 이를 바로 잡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힘을 바탕으로 지역민들과 함께 지역방송을 사수해 가는 험난한 한 해를 또 다시 대비하고, 보다 구체적인 생존 자구책을 생산하여 법제화하는 쪽으로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강원도 살아도 태풍 홍수 피해가 없는 지역, 태풍 홍수가 와도 ‘구경거리’로 안심할 수 있는 도를 만들기 위해서 지역방송은 반드시 존재해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

<이 글은 강릉MBC, 미디어스에 동시 기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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