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지만, 언론인들은 한나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 관련법 개정을 막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면서도 결의에 찬 세밑을 보내고 있다.

2008년 12월30일 오후 2시. 칼바람을 뚫고 ‘언론장악 저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언론노조 총파업 2차대회’에 약 4천명의 언론인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모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깃발을 든 채 모인 이들은 매서운 여의도 칼바람을 피하고자 목도리, 장갑, 마스크 등으로 중무장을 했지만, 옷 사이로 스며드는 추위는 어쩔 수 없는지 이따금 괴로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 30일 오후 2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장악 저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언론노조 총파업 2차대회’에 약 4천명의 언론인들이 참가했다. ⓒ미디어스
언론노조가 30일과 31일 이틀간 ‘1박2일 집중 투쟁’ 돌입을 선언한 가운데 이날 총파업 대회에는 서울 경기 노조원을 비롯해 각 지역 지본부 노조원들이 대거 동참했으며, KBS사원행동 구성원들도 참가해 KBS노조의 빈자리를 채웠다.

▲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미디어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번 파업은 언론 악법의 위험성과 독주를 막기 위한 것이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그동안 언론인들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도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조중동의 ‘밥그릇 싸움’ 보도와 관련해 “밥그릇 싸움이 맞다. 그러나 자신의 배만 불리는 밥그릇이 아니라 국민들과 서민들을 위한 밥그릇 싸움”이라며 “자신의 배만 불리려는 조중동과 재벌의 밥그릇과는 다르다”고 일갈했다.

▲ 백승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미디어스
백승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도 “언론노조의 총파업은 옆에서 보고 지지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되는, 언론 노동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언론은 민주주의의 문제로, 국민 모두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백 회장은 “한나라당은 언론 관련법에 대해 야당과 싸우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민과, 민주주의와 싸우고 있다”며 “언론 노동자들의 간절한 소망을 받아 같이 투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BS사원행동은 많지 않은 참가 인원(20여명)인데도 많은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함께 하겠습니다” “KBS 안 죽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참석해 시민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들은 수천명 언론인 가운데 극히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시민들의 지지 박수를 받는 얼굴은 KBS 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밝아보였다.

▲ 양승동 KBS 사원행동 대표 ⓒ미디어스
무대에 오른 양승동 KBS 사원행동 대표는 “KBS 사원으로서 부끄럽다”며 첫 말문을 열었다.

“동지여러분이 자랑스럽다. KBS 사원으로서 부끄럽다. 지난번 집회 때 KBS 차기 노조도 투쟁 대열에 동참할 것이라고, 기대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내일 차기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집회에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현재 KBS 내부 게시판에 내부 구성원들이 들끓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젊은 기자들, PD협회, 경영협회 등의 성명이 이어지고 있다. KBS가 무너지냐, 한나라당이 무너지냐의 기로에 서 있는데 KBS는 무너지지 않는다.”

▲ 언론노조 총파업 2차대회에 KBS사원행동 소속 언론노동자들이 "KBS 안죽었다 한나라당 각오하라"는 구호 등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참가했다ⓒ미디어스
심석태 SBS본부 본부장은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의 성명과 관련해 “미발연이라는 괴상한 단체가 언론노조를 정치집단, 귀족노조, 좌파노조라고 비난했다”며 “최상재 위원장을 비롯한 각 지본부 노조원들이 귀족노조”냐고 물었다.

미발연은 지난 29일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미발연은 언론노조 소속 전체 노동자들에게 알린다. 언론노조는 당신들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언론노동자 전체가 죽어도 괜찮다는 수준이다. 몇몇 귀족노조들의 정치활동을 위해 전체 언론노동자가 희생당하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 절대 다수의 언론노동자들이 깨어나야 할 시점이다.”

심 본부장은 또 “공영방송, 민영방송 구분이 따로 없는 이 싸움은 MBC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인들의 지지 선언도 이어졌다.

▲ 30일 오후 2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장악 저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언론노조 총파업 2차대회’에 약 4천명의 언론인들이 참가했다. ⓒ미디어스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총파업 투쟁을 이끈 바 있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의원이기 보다, 언론노조 초대 위원장으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권 의원은 “공정언론을 갈망하는 국민들은 파업 투쟁을 지지하며 함께하고 있다”며 “언론이 죽으면 민주주의가 죽는다. 언론이 살아야 민주주의 산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러분들은 민주주의의 전사로, 방송을 이명박과 조중동 재벌 한나라당에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도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이 추운날 왜 여의도 아스팔트로 나와야 하나. 언론인들이 임금을 올려달라고 여기에 왔나? 자사 이기주의로, 경제 살리기를 초치기 위해 왔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온 것이고, 1%의 목소리를 국민 여론으로 담는 것과 획일성을 저지하기 위해 왔다. 국민의 재산인 방송을 사유화하려면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하는데 이를 묵살하고 있다. 이는 독재정권이나 하는 것으로 악법을 완전 저지할 때까지 이 자리에서 힘차게 투쟁할 것이다.”

이날 총파업 대회에서도 언론 5적에게 문자를 보내는 ‘히트상품’은 이어졌다. 다만 김형오 국회의장,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이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 공개에 강하게 반발한 점을 감안해 이번에는 ‘7대 언론악법 저지 총파업 특보 4호’를 통해 친절하게 ‘언론 5적’의 사무실 주소, 번호,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했다. 이에 시민들은 나온 번호를 보고 ‘자발적’으로 문자메시지와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참고로 언론노조가 지목한 언론 5적은 김형오 국회의장,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고흥길 국회 문방위 위원장,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등 모두 5명이다.)

▲ 언론노조가 언론5적으로 지목한 이들에게 시민들이 문자메시지와 음성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미디어스
영하의 날씨에도 언론인들은 계속해서 여의도로 모이고 있고, 날이 어두워질수록 더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여의도로 향하고 있다. 이것은 저항이 확산하는 국면을 가리키는 지표다. 한나라당이 언론 관련법 개정안을 상정할 경우 현재 MBC와 CBS, EBS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면제작거부 투쟁이 신문사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필 내일은 서울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제야의 종 타전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 전국언론노조 지·본부장들이 라면상자로 만든 ‘명박산성’을 밟고 있다. ⓒ미디어스

▲ 전국언론노조 지·본부장들이 투쟁발언을 하고 있다.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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