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기록을 만들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지상파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면 기본적으로 시청률이 보장될 수 없다는 맹신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좋은 작품엔 자연스럽게 시청률도 따라온다는 사실을 <태양의 후예>는 잘 보여주고 있다. 잘만 만들면 막장이 아니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단 점은 중요하다.

잘 만든 작품은 막장이 아니어도 시청률을 보장해준다

<시그널>이 만약 SBS에 편성되어 방송되었다면 현재와 같은 웰 메이드 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을까?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전 규제들과 윗선의 개입으로 드라마가 원래 기획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청률은 방송사에게는 신앙과도 같다. 그 시청률이 곧 방송사가 유지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절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청률 지상주의라는 말이 언뜻 잘못된 가치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방송사에겐 당연한 일이고 분명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역시 그들의 일이다.

문제는 과도한 탐욕이다. 방송사들이 막장 드라마에 대한 비난을 받고 제재까지 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막장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20% 이상의 시청률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막장까지 치닫느냐에 따라 시청률의 수치 역시 달라진다는 점에서 그들이 과한 욕심을 내는 것도 당연하기도 할 것이다.

▲ tvN <응답하라 1988>

현재도 수많은 막장 드라마들이 다양한 시간대를 장악하고 있다. 지상파 전체가 막장을 전면에 내세운 상황에서 '지상파=막장'이라는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막장도 이제는 진화를 꾀한다. 그 진화의 방향이 긍정적이면 좋겠지만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변화한단 점에서 경악스러울 정도다.

방송사 드라마 책임자들은 시청자들이 <시그널> 같은 작품을 보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시청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30%를 넘는 막장 드라마가 넘치는 상황에서 그들의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tvN은 지상파의 막장 전략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승부수를 뒀다. 막장을 배척하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전면에 배치한 그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tvN 역시 막장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침 드라마를 편성해 방송을 한 적도 있지만 케이블에서까지 막장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10주년이 된 2016년 tvN은 월화와 금토 드라마에 모든 것을 걸었다. 최고의 제작진과 작가들을 전면배치해 편성한 그들은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응답하라 1988>은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드라마다. 이 드라마엔 tvN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이 전부 담겨있다. 케이블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응답하라 1988>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성공이었다. 하지만 의외는 바로 장르 드라마인 <시그널>이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정착되지 못한 장르 드라마는 지상파에서도 꺼리는 장르다. 막장극이 주류가 된 현실 속에서 다양한 장르는 금칙어로 다가온다. 낯가림을 하는 시청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장르 드라마는 도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SBS <용팔이>, <리멤버 - 아들의 전쟁> 포스터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시그널>과 <태양의 후예>는 모두 SBS 편성이 논의되던 드라마들이었다. 김은희와 김은숙 작가 모두 SBS와 많은 작품들을 해왔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지난해 말 <용팔이>를 통해 막장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낸 SBS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SBS는 장르 드라마와 전쟁과 재난이 주가 되는 두 작품을 꺼려했다. PPL로 큰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리멤버-아들의 전쟁>을 내보냈고 시청률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SBS라는 방송사에 대한 이미지는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 <용팔이>와 <리멤버-아들의 전쟁>으로 이어진 SBS의 새로운 막장 시스템은 시청률 성공과 반비례해 '드라마 왕국' 이미지를 급격하게 추락시켰다.

현재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가 종료되면 SBS가 시장을 지배할만한 드라마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SBS의 2016년은 의외로 고전할 수도 있어 보인다. 뒤쳐졌던 KBS가 <태양의 후예>를 시작으로 독기 품은 편성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SBS가 지난해 내세웠던 선명한 주제를 이번에는 tvN이 취하고 있다. 최고의 작가들과 배우들이 포진한 tvN의 드라마는 말 그대로 보고 싶고 볼 수밖에 없는 라인업으로 구축되어 있다. 케이블의 한계는 이미 성공한 드라마로 인해 붕괴되었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포스터

유명 배우들은 꺼렸던 케이블 드라마 출연은 tvN에서는 예외다. 엄청난 자금을 앞세운 공격적인 전략은 유명 배우들이 tvN 드라마를 찾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지상파를 능가하는 완성도 뛰어난 작품성까지 확보한 tvN은 이제 많은 스타 감독들과 작가들, 그리고 배우들까지 선택하고 싶은 플랫폼이 되었다.

tvN의 이런 브랜드 전략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 <응답하라 1988>과 <시그널>로 이어지는 성공에서 알 수 있듯, 이제 시청자들은 잘 만든 드라마에 열광한다. 그런 열광은 결국 브랜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광고 단가만 해도 이미 tvN의 유명 프로그램들이 지상파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tvN의 드라마 라인업이 내년까지 이어지게 된다면 tvN의 브랜드 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 '막장 맹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상파와 확연하게 다른 '웰 메이드 전략'은 대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막장에 대한 저항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잘 만들어진 드라마에 대한 선호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태양의 후예>는 첫 회 14.3%로 시작해 4회 24.1%까지 올라섰다. 아직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하나의 신드롬이 되고 있는 <태양의 후예>는 막장도 넘어서지 못한 신기록을 세울 기세다. 막장이 아니어도 잘만 만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상파의 '막장 맹신주의'는 그들이 얼마나 손쉽게 돈만 벌려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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