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이성호 위원장은 ‘(인권위가)A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를 위해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인권위가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스스로 자랑했다. 그 근거는 11명의 인권위원 중 한 쪽 성이 6명을 넘지 않도록 법이 개정됐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정상환 상임 인권위원 추천 및 본회의 단독처리함으로써, (법에 명시된)여성할당이 지켜지지 않았다. 여성할당의 취지는 여성이 공직을 맡도록 해 결과적으로 성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인권위가 지켜야하는 것을 말할 것도 없다. 과연, 인권위가 여성할당제 도입 취지를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_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새누리당이 공석이 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이성호, 이하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정상환 변호사를 추천하고 본회의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정 성(性)이 6/10을 넘지 않도록 한 법 규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처리에 걸림돌은 없었다. 인권단체들은 정상환 인권위원 임명과 관련해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오는 5월 ICC 등급심사를 앞둔 인권위가 이 같은 진정과 관련해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등 인권단체들은 9일 <말뿐인 개정, 등급심사만을 염두에 둔 인권위를 규탄한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상환 변호사의 상임 인권위원 임명에 대한 ‘진정’을 넣기 위해서다. 정상환 변호사 임명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관련기사 : 새누리 인권위원 후보 남성 추천, 법 위반 논란)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등 인권단체들은 9일 <말뿐인 개정, 등급심사만을 염두에 둔 인권위를 규탄한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미디어스

기자회견에서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국장은 “줄곧 A등급을 받아왔던 국가인권위원회가 ICC로부터 3차례의 ‘등급보류’ 결정을 받았다”면서 “인권위원 인선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시민사회 참여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계속해서 밀실에서 인권위원을 선임해 왔다”고 밝혔다.

나현필 사무국장은 “정부는 2014년 ‘등급보류’ 이후,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을 했던 것”이라면서 “개정안 또한 여러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ICC의 핵심 권고사항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그마저도 지키지 않은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ICC권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법을 개정했고, 심지어 그 마저도 제대로 따르지 않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ICC에 알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은 정상환 변호사 추천과정에서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공모했지만, 심사과정에서 당직자들끼리 모여서 최종 후보를 선출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어떤 소통도 없었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박차옥경 사무처장은 인권위의 정상환 변호사 임명은 한국사회의 성불평등의 문제를 그대로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엔에서 정한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한지 100여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은 여전히 불평등하다”며 “한국은 OECD 29개국 중 여성이나 소수민족들이 고위직으로 진출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로 뽑혔다. 한국의 여성 고위직 비율은 11%에 불과하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OECD가 8일 페이스북에 올린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남녀임금격차는 36.7%로 최하위”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박차옥경 사무처장은 “이러한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차별을 뿌리 뽑고자 만든 제도 중 하나가 여성할당제”라면서 “국가기구에서 여성할당제를 지키는 모범을 보일 때 민간 기업에서도 시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러나 새누리당이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인권위가 정상환 변호사 임명이 문제없다는 유권해석을 해줬다고도 한다. 국제적으로 여성 불평등이 심화되고 시점에서 여성인권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인권위가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위원회 김재왕 위원장은 “우리나라 고위직에 여성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직접적 차별은 아니지만 사회적 환경에 의해 결과적으로 차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면서 “그를 적극적인 방법으로 해소하기 위해 나온 게 ‘할당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 같은 할당제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여성의 관점을 배제한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인권위가 차별을 한 것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는 “인권위에 (오늘)정상환 임명에 대해 진정을 넣을 것”이라며 “새누리당도 그리고 유권해석을 해줬다는 인권위도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마지막 기회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사회를 본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는 ICC의 인권위 등급보류와 관련해 “정부의 법 개정 이전 인권위에 인선절차 투명성과 시민사회 참여 보장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급보류를 받았던 것이다. 자격 없는 사람들이 계속 인권위원으로 선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던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새누리당이 ICC 등급심사를 앞두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을 개정했지만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내용이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이라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