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그널>을 애청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개의 고민이 있다. 하나는 다음 주면 <시그널>이 끝난다는 것이고, 끝날 때가 다 되어 가는데 이재한이 차수현, 박해영과 만날 수 있겠느냐는 것이 다른 하나의 고민이며, 궁극적인 바람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개되는 상황을 보자면 참 감격스러운 삼자대면은 고사하고 이재한의 백골사체 앞에서 가슴이 무너지는 슬픔만 바라봐야 할 사정이다.

주말까지만 기다려 달라던 이재한을 15년이나 기다렸지만 차수현이 만날 수 있는 이재한은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는 냉정한 모습이었다. 본래도 다정한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찾을 수 없는 이재한이었지만 그래도 구박이라도 했었다. 그러나 창백한 백골로 돌아온 이재한은 구박도, 꾸지람도 할 수 없는 침묵의 존재였다. 주말까지라더니... 그것이 이재한을 짝사랑한 차수현의 슬픔이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이재한의 죽음을 확인하고 나니 새삼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선다. 지난 15년간은 기다림 때문에, 그리움 때문에 사진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막상 그의 죽음을 대면하고는 그렇다. 언제까지인지는 몰라도 앞으로도 계속 그가 그리울 것이기에 그 사진 한 장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왠지 그 깊은 쓸쓸함을 알 것만 같다.

또 하나의 슬픔은 바로 자식의 죽음을, 그것도 살점 하나 없이 앙상한 백골이 된 자식을 봐야 하는 아버지의 슬픔이다. 자식의 죽음은 부모에게는 어떻게든 한 가슴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며 슬픔이다. 백골이 된 아들을 보고 오열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도 없을 만큼 아팠다. 또 다른 15년의 기다림이었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슬픔은 박해영의 몫이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처럼 내놓고 울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재한에게 여고생사건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간곡하게 청했던 것이 이런 비극을 가져왔다는 책임감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한의 유품에서 눈에 익은 명함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형이 그리우면 찾았던 작은 식당의 홍보용 명함이었다.

박해영은 그것을 주인 아주머니에게 보여주며 이재한에 대해서 물었다. 비로소 이재한이 아무도 모르게 자신을 돌봐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형이 자실하고는 줄곧 혼자라고 생각했던 박해영은 뒤늦게 이재한이라는 형사의 따뜻함에 새삼스러운 감정에 젖게 된다. 어린 박해영이 혼자서 형이 보고 싶을 때 어둡고 구부정한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어갈 때 그 뒤를 형사답게 몰래 따르던 이재한이었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이재한이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은 해영의 형을 죽게 한 여고생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자책과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린 박해영이 자신과 고장 난 무전기로 교신을 하고 있는 경위 박해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림자 뒤에 숨어야 했을 것도 짐작할 수 있다. 박해영은 형과 먹던 오므라이스를 외롭게 우적우적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혼자가 아니었다. 늦게나마 그 따뜻함을 알 수 있어 다행이지만 그만큼 슬픔은 커질 수밖에는 없다.

이렇듯 세 가지의 슬픔이 소용돌이치는 <시그널> 13화는 시청자로서도 줄곧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슬픔의 벼랑 끝까지 몰리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오히려 희망일 수도 있다고 위안을 하게 된다. 드라마라는 것이 이렇게 후반부에 어떤 것이든 감정을 격정적으로 끌고 갈 때에는 반드시 반전이 준비되기 마련이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우기고 싶은 심정이다. 그것은 이 모든 슬픔을 끊고 이재한이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박해영과의 무전교신도 까맣게 잊고, 박해영이라는 이름조차도 모른 채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끝끝내 과거와의 무전교신은 박해영만의 비밀이 되는 것이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사실 해피엔딩보다 새드엔딩을 좀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하도 분노하고 슬플 일이 많았던 <시그널>이라 마지막은 그 감정의 소모에 대한 보상으로라도 해피엔딩을 요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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