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테러방지법의 위험성을 무시한 채 법의 필요성만을 ‘선전’하고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강행 처리 폐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을 ‘폄훼’하는 보도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총선보도감시연대는 3일 ‘최악의 선거방송 보도’로 “테러방지법은 선전하고 국회선진화법은 난타한 ‘외눈박이’ KBS”를 꼽았다. 총선보도감시연대는 “KBS는 테러방지법의 폐해와 새누리당의 책임은 은폐한 채 일부 사실을 근거로 필리버스터를 폄훼하기 바빴다. 이는 이날(2일) 필리버스터 자체에 대한 평가에는 입을 다문 종편보다도 더 편파적인 것”이라고 혹평했다.

2일 KBS 메인뉴스 <뉴스9>에서는 테러방지법에 대한 보도가 나갔다. <뉴스9>는 <‘국정원 정보수집권’…테러방지법 핵심> 보도에서 국가정보원에게 조사권, 추적권 등을 부여해 여러 가지 문제가 우려되는 테러방지법의 ‘위험성’은 무시한 채, 법 도입의 ‘필요성’에 더 힘을 실었다.

“북한산에서 테러단체의 깃발을 흔들고, 그 단체에 돈을 보내기도 했던 인도네시아인은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추방되는데 그쳤다”며 “테러방지법은 테러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김 모군처럼 IS에 가입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기자 멘트, “테러방지법이 있었다면 구속이 됐겠죠. 그래서 이 사람들 뒤를, 배후를 파헤쳐 가지고 외국과 어떻게 연계됐느냐 다 알 수 있었지만…”이라고 한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테러방지법 대표 발의자)의 발언까지 해당 리포트의 흐름은 ‘테러방지법의 당위성’을 부각하는 쪽으로 수렴했다.

“테러를 일으키고자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라는 문구 자체가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테러방지법이 있기 전에도 국정원이 무리한 조사와 기소를 통해 간첩을 조작해 온 전례가 있는 만큼, 국정원의 권한 남용이 예상됨에도 이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그저 <뉴스9>는 국정원의 정보수집권을 “찬반이 가장 첨예하게 맞붙었던 부분”이라며 ‘일반 국민이 아닌 50여명의 테러 기도 위험인물만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새누리당의 주장과 ‘국정원이 대상을 늘릴 것’이라는 야당의 주장을 담아 ‘기계적 균형’을 맞췄을 뿐이다.

3월 2일 KBS <뉴스9> 보도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야당 의원들이 192시간 동안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지적했으나 <뉴스9>는 그 중 “국정원 장악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국정원 강화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고, 국정원 공룡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의 발언을 골랐다. 국정원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야당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기는 하지만,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풍부한 근거들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제시되었음에도, ‘수사’만이 나열된 발언을 보여준 것은 의아한 대목이다.

또한 “테러방지법은 인권보호관을 임명해 테러 방지 활동 중 인권침해를 막도록 했으며, 대테러센터를 국정원이 아닌 총리실 아래 두도록 했다”고 한 부분도 교묘한 왜곡이 존재한다. 새누리당이 명시한 인권보호관은 고작 1명뿐이다. 그러나 이 기자 멘트만으로는 인권보호관이 1명인지 다수인지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 더구나 <뉴스9>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기 때문에 ‘인권침해 방지’라는 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자연스러운 의문’조차 생략했다.

총선보도감시연대는 “금융정보분석원장이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조사업무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금융정보를 국정원에 제공’하도록 한 부분도 국정원에 제공되는 정보의 범위가 특정되어 있지 않아 광범위한 금융정보가 노출될 위험이 있다”며 “더민주는 이런 부분의 수정을 계속 요구하며 필리버스터까지 나섰지만 여당은 결국 대화를 거부했고 KBS는 필러버스터가 끝난 후 재차 새누리당 입장을 대변해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KBS 눈에는 ‘단점’만 보이는 필리버스터

‘필리버스터 폄훼’도 계속됐다. <뉴스9>는 같은 날 <[이슈&뉴스] ‘무제한 토론’ 무얼 남겼나?>에서 지난달 23일 시작해 2일 종료된 192시간의 필리버스터를 돌아보았다. 필리버스터는 거친 몸싸움 대신 ‘논쟁과 토론’에 방점을 찍은 정치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국회방송 시청률이 20배 가량 훌쩍 뛰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주말과 연휴 전후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필리버스터에 나서거나 국회 방청을 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KBS는 필리버스터의 명암 중 ‘암’만을 보도했다. <뉴스9>는 필리버스터 때문에 △다른 민생 법안은 폐기 위기에 처했고 △현행 국회법 법안 처리가 왜곡됐다며 △새로운 국회 의사결정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국회선진화법’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입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보도를 해 눈에 띄었다. <뉴스9>는 국회선진화법을 “모든 안건 처리에 야당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법”이라고 소개한 뒤, KBS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선진화법에 대한 여론은 나빠지는 추세”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선진화법에 ‘반대’한다는 의견과 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엄밀히 말해 ‘다른’ 입장이다. 그러나 <뉴스9>는 “연초에는 선진화법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33%(찬성 49.3%)였는데, 설 연휴 이후 조사에서는 개정해야 한다가 56.1%(유지 28%)로 나타났다”며 뭉뚱그렸다.

3월 2일 KBS <뉴스9> 보도

또 다시 ‘여론조사 왜곡’ 지적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뉴스9>는 앞서 지난달 14일에도 북핵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설문조사 결과를 자의적으로 ‘활용’했다. 북한 핵 위협 대응방안으로 가장 높은 응답률이 나온 것은 ‘한반도 비핵화 유지(41.1%)’였는데, 핵무기를 독자 개발해야 한다는 응답(29.3%)과 미군 전술 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응답(23.2%)를 묶어 “우리도 핵 무장을 해야 한다는 응답이 50%를 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 관련기사 : “우리도 핵 무장하자는 응답 50% 넘어”… 위기감 조성하는 KBS)

<뉴스9>는 “국회선진화법은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과정에서도 논란을 빚었다. 직권상정의 조건인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하느냐를 놓고 여야 간 극명한 입장차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테러 기도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이 모호해 국정원이 ‘테러방지’라는 명목 하에 감시 가능한 대상이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는 ‘맹점’ 때문에 여야 이견이 컸던 상황을 눈 감은 채, 국회선진화법에 엉뚱하게 화살을 돌린 것이다. <뉴스9>는 “폭력 국회를 막기 위해 만든 법이지만, 또 다른 왜곡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19대 국회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강조했다. 다수당의 법안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을 바라보는 KBS의 시각은 분명했다. ‘또 다른 왜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총선보도감시연대는 KBS가 국회선진화법 수정의 필요성을 부각한 것을 두고 “새누리당 입장과 판박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심지어 ‘의장 직권상정 요건 강화’, ‘안건 신속처리제 도입’, ‘의장석 점거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공약이었다. 테러방지법을 선거구 획정과 연계하면서 선거법 처리를 지연시키고 필리버스터를 촉발한 것도 새누리당이다. KBS는 이 모든 사실을 은폐한 채 국회선진화법과 야당에만 책임을 전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필리버스터 때문에 다른 민생 법안이 폐기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 내용도 정부여당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지난해 9월 노사정 대타협을 토대로 만들어진 노동개혁 법안은 근로 시간 단축을 담은 근로기준법. 실업 급여의 보장성을 강화한 고용보험법, 출퇴근 재해 보상 제도가 도입된 산재보상법, 파견 허용 범위를 확대한 파견법으로 구성됐다”는 기자 멘트는 정부여당이 각 법안에서 부각하고 싶은 핵심을 콕콕 짚어주었다.

3월 2일 KBS <뉴스9> 보도

정부가 외치는 노동개혁이 다양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고용 불안정성을 높인다는 비판은 역시나 전달되지 않았다. 여기에 노동개혁 관련 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통과되면 각각 일자리 37만 개, 60만 개가 생길 것이라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추산’이라는 단어에 기대 면밀한 검증 없이 보도됐다. 노동개혁 법안을 ‘민생 법안’이라는 테두리 안에 넣은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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