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의원들이 새누리당이 통과시키려고 애쓰는 테러방지법이 왜 문제이고, 어떤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지난달 23일부터 내내 ‘말하는’ 동안, 시민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다. 의원석은 대부분 비어 있었지만 시민들은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국회에 방문했고, 야당 의원들의 발언을 경청했다. 0.01%대에 머물던 국회방송 시청률은 필리버스터 5일째였던 지난달 27일 0.28%를 기록해 ‘20배’나 훌쩍 뛴 모습을 보였다. 야당 의원들의 인상 깊은 발언들과 화제의 장면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널리 전파됐고, 국회방송에는 ‘마이 국회 텔레비전’(마국텔)이라는 별칭이, 일부 의원들에게는 ‘죄 읽어주는 남자’(신경민), ‘홍종학의 스케치북’(홍종학) 등 재미난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조중동, KBS·MBC·SBS 등 주요 언론과 종편은 필리버스터의 의미를 깎아내리기에 급급했다. 특히 MBC와 TV조선의 보도 행태가 눈에 띄었다. 총선보도감시연대는 1일 보고서를 통해 MBC는 선거구 획정 문제와 필리버스터를 구분하지 않은 채 뭉뚱그려 보도함으로써 야당 의원들이 발목잡기를 하고 있다는 양 보도했고, TV조선은 필리버스터에 ‘신종 선거운동’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한편 교묘한 편집으로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을 감싸기도 했다.

MBC, ‘국회 마비’만 부각하고 테러방지법 독소조항엔 ‘침묵’

총선보도감시연대는 “MBC가 필리버스터에 대해 ‘국회 마비’ 프레임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MBC 메인뉴스 <뉴스데스크>는 지난달 26일 <무제한 토론 ‘나흘째’…선거구 획정 난항>에서 “야당의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무제한토론이 나흘째 이어졌다. 여야가 합의했던 선거구 획정안 처리도 무산되며 국회 마비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앵커 멘트로 보도를 시작했다.

2월 26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뉴스데스크>는 “나흘째 무제한토론이 이어진 국회 본회의장은 10명 안팎의 의원들만 가까스로 자리를 채웠다. 여야 지도부가 몇 차례 만나 대화도 했지만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 “무제한토론이 길어지면서 테러방지법과 무관한 발언도 나오고 있다. 사실상 총선 공천 탈락 대상에 오른 더불어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발언 도중 울컥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등 필리버스터에 관한 부정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야당 의원들이 말하는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시민들의 반응이 어떤지 등은 자세히 보도되지 않았다.

필리버스터 비판 후에는 “선거구 획정위에서는 여야의 치열한 득실 계산속에 통폐합되거나 분할될 선거구의 경계를 재조정하는데 난항을 겪으면서 선거구 획정 작업도 늦어지고 있다”면서 선거구 획정 관련 언급을 덧붙였다. 총선보도감시연대는 “같은 날 TV조선, MBN, YTN은 여야의 선거구 획정 ‘2+2 회동’을 따로 보도해 필리버스터와 선거구 획정 문제를 구분했지만, MBC는 단 한 마디 언급에서 이를 얼버무렸다”며 “반면 독소조항을 수정하자는 요구마저 뿌리친 여당의 고압적 자세로 인해 필리버스터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입장은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필리버스터가 선거구 확정 지연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시청자에게 심어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스데스크>는 지난달 28일에도 <시한 139일 넘겨 획정안 제출>에서 “법정시한을 139일 넘겨서 제출됐다”며 “선거일 6개월 전에 제출했어야 할 획정안이 여야의 획정 기준 합의 지연으로 겨우 45일 남기고 국회로 넘어온 것”이라고 보도했다. 총선보도감시연대는 “여야 획정안은여러 차례 여야 회동을 통해 사실상 타결됐고, 테러방지법을 비롯한 쟁점법안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으로 계속 지연된 것이다. 이 같은 선거구 획정 지연을 둘러싼 정황을 정확히 언급하지 않는 것 자체가 왜곡”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엿새째 계속되고 있는 야당의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 때문에 내일 본회의 처리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말을 덧붙여 ‘발목잡기 프레임’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했다.

2월 28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TV조선, 필리버스터를 야당 선거운동으로 폄훼

TV조선은 한 발 더 나아가 필리버스터를 ‘야당 선거운동’이라고 규정했다. TV조선 메인뉴스 <뉴스쇼 판>은 지난달 27일 <필리버스터 닷새째…의원 홍보의 장?>이란 보도에서 “최장시간 연설, 사상 최초 상임위원장의 본회의 의사진행 등 무제한 토론이 기록 경쟁과 홍보의 장이 되고 있다”고 정리했다. 11시간 39분이라는 기록을 세운 정청래 의원을 언급하면서도 장시간 이야기한 테러방지법의 맹점엔 침묵한 채, “국민의당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한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항의하자 테러방지법을 비꼬며 맞받아친다” 등 곁가지에만 집중했다.

같은 날 ‘정치분석’ 코너에서도 “필리버스터에 나선 의원들 대부분이 SNS 스타가 됐고 필리버스터 생중계 방송까지 생겼다”며 필리버스터를 ‘지지층 결집 이벤트’로만 바라봤다. 주말 전후로 객석을 채운 시민 방청객에 대해서도 “상황을 보니 일부 야당의원들은 방청 오시라 도와드리겠다는 공지까지 띄워 놨다”고 설명했다. TV조선 보도만 보면 야당이 표심을 얻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2월 27일 TV조선 <뉴스쇼 판> 보도

총선보도감시연대는 “야당 의원들에 대한 호응과 시민 방청 요청 등 필리버스터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모두 국민들의 자발적인 지지 의사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국회방송을 통한 필리버스터 시청과 자료 공유 요청마저 야당의 선거운동의 결과로 몰며 필리버스터를 폄훼하려는 TV조선의 분투가 가엾을 따름”이라고 꼬집었다.

TV조선은 필리버스터가 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짚지 않고 필리버스터 장기화로 인한 ‘현상’만 부각하는 한편, 발언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야당 의원들의 발언에 일일이 항의한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을 감싸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방송된 <뉴스쇼 판>의 <120시간 돌파…지친 의장단> 리포트는 “정의화 국회의장도 앞서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사상 처음으로 사회권을 김영주 환경노동위원장에게 넘겼다”, “속기사들은 본회의장 발언대 아래에서 엿새째 24시간 2교대 근무를 하며 노래와 시까지도 묵묵히 받아쓰고 있다”는 설명으로 필리버스터가 ‘민폐’인 양 보도했다.

TV조선은 이석현 국회 부의장이 야당 의원들의 발언 도중 여러 차례 어깃장을 놓은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의 ‘무례’에 반발한 상황도 자의적으로 편집했다. <뉴스쇼 판>은 “무제한토론 초기, '친절'의 상징이었던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여당의 항의에도 부드럽게 응대했지만 피로는 친절맨도 폭발시켰다”면서 이석현 부의장이 조원진 의원에게 “국회법 145조에 퇴장하라고 할 수 있어요 의장이. 깊이 생각하세요. 경고했습니다”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보여줬다. 총선보도감시연대는 “이석현 부의장이 피로에 지쳐 분노를 이기지 못했고 결국 부당하게 화를 낸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조원진 의원을 감싸려는 TV조선의 언구럭(교묘한 말로 떠벌리며 남을 농락하는 짓)이 민망한 수준이다. 하지만 국민의 눈은 속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2월 28일 TV조선 <뉴스쇼 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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