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12회는 아주 많은 것들이 응축되고 결합되어 무척이나 복잡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피해자의 도덕성 문제가 대두된 것이 가장 컸다. 당시 인주에서 사건의 진실을 쫓는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었다. 이재한과 박해영의 죽은 형. 심지어 피해자 소녀마저도 경찰들이 조작한 박해영의 형을 진범으로 지목했다. 이렇게 되자 얼핏 보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문제가 있다는 양비론처럼 비칠 법도 했다.

그렇지만 얼마 전 <시그널>만큼이나 우리를 뒤흔들었던 드라마 <송곳>을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피해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송곳의 구고신은 “시시한 약자를 위해서 더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피해자는 선하거나 혹은 강한 존재가 아니다. 또한 피해자가 선하지 않거나 혹은 가해자가 선하다고 해서 사건을 달리 수사할 수도 없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한편으로는 피해소녀가 사건 조작에 가담한 장면은 없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선 작가가 <시그널>을 쓴 근본적이면서 전부인 것은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함이다. 그 전제하에서 그 장면을 해석한다면, 그것은 피해자의 변절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가해진 또 다른 폭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따로 있는데, 유일하게 자기를 도와주려 했던 아이를 거꾸로 범인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주변의 상황. 억압적인 회유와 강압적인 협박이 있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실제 사건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속 상황이 그렇다는 것이다. 피해소녀는 그 일로 인해서 자신의 상처만큼이나 큰 절망과 상처를 다시 떠안게 됐으니 이중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그런 한편 다시 2015년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경찰에 악인은 김범주(장현성)과 안치수(정해균)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해영(이제훈)에게 과거 인주여고생사건의 조작내막을 다 알려줄 것이라던 안치수는 병원 근처에서 칼에 찔려 숨졌다. 현장에서 안치수를 발견한 박해영은 오히려 용의자가 되어 손발이 묶인 처지가 됐다.

죽어가던 안치수는 박해영에게 자신이 이재한을 죽였다는 고백을 남겼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경찰이 두 명이나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단순히 인주여고생사건를 조작하기 위한 것치고는 사건의 규모가 너무도 크다. 그 모든 의문을 유추해볼 수 있는 실마리가 이재한의 입을 통해서 드러났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인주시멘트. 이 시멘트라는 단어는 지난 사건인 대도사건 중 언급됐던 한강다리 붕괴사건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신도시비리. 모두 시멘트가 대량으로 소요되는 사업이다. 거기에 개입된 부패한 정치인으로 나온 국회의원(손현주)를 인주로 내려오기 전 김범주가 만났다. 왜 국회의원은 이 사건을 조작하려고 했겠는가. 이들 의문과 단서의 퍼즐을 맞추면 답은 추려진다.

더 말을 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말을 아껴야 할 것 같다. 대신 우리들 초미의 관심사 이재한의 생사에 대한 결정적인 단계에 접어든 것에 시선을 돌려보자. 박해영은 안치수와 함께 의심스러웠던 폭력배가 경찰서를 나서는 것을 보고는 그의 은거지를 차수현과 함께 잠입한다. 분명 오랜 세월 그 폭력배 소유의 집인데 막상 찾아가 보니 폐허였다. 집안을 뒤져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돌아서려던 박해영이 어떤 직감에 이끌러 삽을 들고 마당을 판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이 장면은 곧 아주 불길한 결과를 예감케 했다. 불행한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듯이 땅을 파나가자 곧 백골이 된 사체가 발견됐다. 불을 비추던 차수현까지 달려들어 맨손으로 흙을 치워내자 거기엔 철심이 박힌 굵은 뼈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재한의 신분증까지 놓여 있었다.

이제 인주 여고생사건은 더 복잡한 양상으로 흘러버렸다. 세 명이나 죽었다. 살아 돌아와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재한이 죽지 않는다면 박해영의 형도 죽지 않을 수 있다. 과연 박해영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떻게 보면 이재한은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무전기는 어쩐 일인지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단서를 전하지 못하게 해왔다. 이제 박해영의 선택이 너무도 중요해졌다. 박해영은 그 간절함을 이재한에게 어떤 방법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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