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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남과 여’, 판타지가 다른 판타지를 거세하는 영화[블로그와] 박정환의 유레카
박정환 | 승인 2016.02.26 11:44

남자와 여자가 눈이 맞아 서로 떨어지면 못 살 것만 같아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맺어지는 규율이 결혼이다. 하지만 인간의 호르몬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게 결정적인 문제다. 상대방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페닐에틸아민이 결혼하고 나서도 평생 동안 유지돼야 맞는데, 문제는 이 호르몬 물질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 호르몬이 뚝 떨어지면 그동안 상대방에 붙어있던 콩깍지는 부식되고 더 이상 결혼은 사랑이 아닌 의무로만 남게 되는 것이 결혼의 비극이다.

기홍(공유 분)과 상민(전도면 분)은 유부남, 유부녀다. 그럼에도 이들이 서로에게 이끌려 눈이 맞는 건 페닐에틸아민이 증발해서가 다가 아니다. 이들 두 남녀에게는 ‘결핍’이 있다. 기홍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아내가 있고 상민은 자폐증을 앓는 아들이 있다. 직업적으로는 전문직으로서 성취감을 맞보지만 일단 집으로 돌아가면 이들을 기다리는 아내와 아이에 의해 정신적인 성취감은 모조리 휘발되고 살얼음을 걷는 불안이 엄습한다.

영화 <남과 여> 스틸 이미지

<남과 여> 안에서는 ‘스위트 홈’이라는 판타지가 거세된다. 가정에서 행복이 싹트고 정신적인 안정을 구가한다는 스위트 홈 판타지는 불안한 아이와 배우자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기홍과 상민의 불륜은 어느 정도 정당화할 수 있는 구실이 생긴다. 가정 안에서 생긴 결핍을 메우기 위한 정신적인 도피처가 불륜이라는 이야기다. 두 남녀가 정신적인 결핍을 다소나마 해소하고 위안 받고 싶어 하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도피처가 불륜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모든 판타지를 질식시키지만은 않는다. 다른 판타지 하나를 따로 키운다. 존 쿠삭과 케이트 베킨세일이 연기한 <세렌디피티>는 우연을 가장하지만 실은 상대방을 만나기 위한 ‘노력’이 관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숨겨진 영화다. 즉, 상대방을 만나고자 하는 바람이 우연에만 그친 게 아니라 상대방을 다시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자 하는 노력이 우연으로 가장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남과 여>는 다르다. 두 남녀는 핀란드에서 단 하루 불장난만 쳤을 뿐인데 상민의 근무처에 기홍이 우연처럼 나타난다는 건 ‘한강에서 바늘 찾기’와도 같은, 매우 희박한 확률이 들어맞았다는 걸 의미한다. 사설탐정이나 흥신소 직원을 고용하지 않는 이상 상민이 어디에서 근무하는가를 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기홍이 상민의 가게 앞을 서성이는 건 <남과 여>의 불륜이 현실을 가장한 판타지라는 걸 보여준다. <남과 여>는 스위트 홈이라는 일상적인 판타지는 배제하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판타지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킨다.

영화 <남과 여> 스틸 이미지

하지만 상대방이 결핍을 메우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들의 사랑이 결합하기에는 큰 장애물이 있다. 그건 가정이다. 미혼 남녀라면 얼마든지 사랑을 무한대로 꽃피울 수 있겠지만 이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스위트 홈이라는 환상은 없지만 이들은 배우자와 아이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는 이들이다.

영화의 결말은 이상적인 사랑의 상대를 만났지만 가정으로 다시금 돌아가야 한다는, 결혼한 이들의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불륜이라는 판타지 안에서 되새기고 확인하게 만든다. 불륜이라는 판타지에 천착하고 새로운 사랑을 꽃 피우는 게 다가 아니라, 가정으로의 회귀본능 역시 중요하다는 걸 일깨우는 영화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박정환  js7kei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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