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안보’라는 구호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대통령은 책상을 내리치며 테러방지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할 정도다. 정부여당은 의결을 압박하고 제1야당은 법안 일부를 고치는 수준으로 협상하려 한다. 그러나 테러방지법안의 본질은 국가정보원이 정보와 이에 대한 권리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국정원이 음성적이고 불법적으로 감행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 감청을 합법화하는 문제다.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 제9조와 부칙을 보면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가정보원은 금융위원회, 법무부, 이동통신사 등 위치정보사업자, 정부부처 등으로부터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각종 조치를 취할 수 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온라인에서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쳤고 불법해킹프로그램을 구입·운용한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이 법안에서 국정원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대테러인권보호관 1명’ 뿐이다.

사찰은 이미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경찰과 검찰은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관련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용혜인씨의 카카오톡을 탈탈 털었다. 수사기관은 당사자들에게 압수수색 시간과 장소, 내용도 사전에 알리지 않았고 사생활을 들여다봤다. 재판에 증거로 제출되지도 않았다.

용혜인씨는 25일 국회 앞에서 열린 <테러방지법? 사이버사찰, 날개를 달아줄 것인가> 기자회견에서 “카톡 압수수색 내역을 확인한 결과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포함돼 있었다. 제가 대화한 이들 모두의 번호, 제가 들어가 있던 단체카톡방 모두의 번호, 그리고 제가 들어가 있던 모든 카톡방의 내용이 있었다. 심지어 제가 단톡방에 입장하기도 전 내용부터 들어가 있었다”고 전했다.

▲사이버사찰긴급행동과 노동당은 25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테러방지법 철회를 촉구했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또한 지난 18일 당시 압수수색이 위법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압수수색을 취소한다고 선고했다. 국가라고 하더라도 법률이 정한 절차를 생략하고 그 범위를 넘어 시민의 정보를 무작위, 전방위로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사이버사찰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정부여당은 한술 더 떠 테러방지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절차와 범위를 법률로 만들고 국정원을 통제기관으로 두겠다는 게 테러방지법안의 핵심이다. 결국 불법사찰을 합법화하려는 시도다.

용혜인씨는 “박근혜 정부는 (사이버 사찰을) 합법화하려고 하고 있다. 허용된 적도 없는 예외를 일상화하고 일반화하려고 있다. 국정원과 수사기관과 정부가 그 누구든 찍어서 쉽게 감시하고, 압박할 수 있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국가 등이 민간인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을 테러라고 할 때, 우리에게 쉽게 테러를 가할 수 있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른바 테러방지법이 그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테러방지법안은 수정할 것이 아니라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찰 피해자인 정진우 노동당 기획실장은 미디어스와 만난 자리에서 “테러를 방지하는 장치는 이미 마련돼 있다. 테러방지법안은 국정원이 법원 영장 없이, 국회의 감시를 우회해 정보를 수집할 권한을 주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동통신사는 감청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와 사이버사찰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 법안 자체가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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