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은 ‘한나라당 7대 악법 저지’를 외치며, 오는 26일부터 펜과 마이크를 놓고 전면 총파업에 들어간다. 각종 시상식과 특집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연말 방송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언론노조의 이런 대응은 한나라당이 미디어관련 7대 법안을 포함해 연내 법안 강행처리를 내세운 데 따른 것이다. 조만간 ‘조중동 방송’ 혹은 ‘삼성·현대 방송’이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태다.

지난 3일 한나라당이 ‘미디어산업 활성화와 경제효과’를 내세우며 들고 나온 신문법, 언론중재법, 방송법,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전파법,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의 디지털 전환 특별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등 7개 법안의 핵심 내용은 △대기업과 외국자본의 지상파방송 소유 허용 △신문과 방송의 겸영 가능 △사이버모욕죄 도입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하루도 신문과 방송, 인터넷을 거르지 않는 우리네 삶에서, 한국사회 미디어 전반을 흔들어 놓는 한나라당의 7대 법안이 통과되면 적잖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과연 ‘삼성·현대 방송’이 등장하게 될 우리의 내일은 어떤 모습이기에, 언론 노동자들은 펜과 마이크를 내려놓겠다는 것일까.

보도의 공정성과 독립자율성 확보를 위해 KBS, MBC 지상파 방송사 등의 대기업의 지분 참여를 전면 금지했던 현행 방송법이, 대기업의 지분 20% 소유 허용으로 전격 바뀐다는 것은, 결국 한국사회에 이른바 ‘재벌 방송’의 등장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대기업 5개가 모이면 1개 방송사를 완전히 접수(?)할 수도 있고, 두 곳만 손을 잡아도 사실상 완벽하게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결국 재벌방송이 등장하면 방송은 ‘돈벌이’의 잣대가 최우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꾸어 말하자면, 돈벌이를 가로막는 자는, 방송에 등장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면 케이블방송의 성인채널이나 주식투자전략을 줄창 틀어대는 증권채널, 그걸로도 부족하면 족집게 과외선생의 특강 같은 것도 온 가족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지상파로 보는 장면을 그려보자.

◇ 삼성방송으로 사라질 것들

각종 ‘사돈지간’으로 얽힌 한국의 정치와 경제에서, MBC가 삼성방송으로 바뀐다면 <PD수첩>은 어떻게 될까?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더는 ‘고발’은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가족끼리’ 혹은 ‘다 아는 처지’에서 고발은 가장 사라지기 쉬운 품목이기 마련이다. 간단히 생각해 보자. 삼성방송 사장이 이건희 회장의 맏아들이라고 가정해보자. 명문 혈족으로 최고수준의 가정교육을 받은 자식이 아비를 고발하는, 천륜을 어기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그건 가족사라고 치부한다고 치자. 그럼 이건 어떤가. 노동정책, 서민정책, 농민정책에 대한 비판의 칼날은 무뎌지고 비정규직이나 해고 등 노동조합 관련 보도는 모두 ‘경제 죽이기’의 대표적 사례로 등장하는 텔레비전을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이것이 그저 소설 같은 얘기일까. 지금도 ‘미국 자동차 산업이 노조 때문에 망했다’며 파업이 발생할 때마다 넘쳐나는 ‘노조 망국론’ 보도들이 텔레비전에서는 사라진다? 오히려 이게 더 소설같아 보인다.

그래도 상상이 안 된다면, 삼성그룹이 동양방송 TV와 라디오, 중앙일보 등을 소유했던 1960년대를 떠올려 보면, 금세 알기 쉽다. 당시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은폐 사건 등으로 물의를 빚었던 사건이 ‘재벌 방송’ 폐해의 대표적 사례다. 한국비료주식회사의 사카린 밀수 사건은 1966년 9월 15일 경향신문을 통해 삼성 재벌의 한국비료주식회사가 같은 해 5월 건설 자재를 가장해서 사카린을 밀수했다는 것이 폭로되면서 언론계와 정치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다. 물론 삼성그룹의 3개 매체는 입다물었다.

어려운 서민들의 살림살이와 정부의 실책, 악덕 기업의 비리를 고발하는 <카메라 출동> 같은 뉴스도 역시 찾아보긴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삼성 X-파일’ 사건과 같이 ‘재벌과 언론이 손잡고 정권을 잡아보겠다’는 엄청난 내용의 특종 보도는, 아마도 박물관 속 자료화면에서나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언론 특종 보도에 대해 검찰을 동원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세상은 ‘소음’이 사라질 것이다. 세상은 조용해서 좋을 것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처럼.

◇ 삼성방송으로 넘쳐날 것들

오히려 각종 훈훈한 미담 기사들로 뒤덮일 가능성도 높다. 태안 1주년을 다룬 기사에서 ‘삼성중공업’ 비판 기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중앙일보의 지면이 방송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고 보면 된다. 중앙일보에서는, 무책임한 정부와 삼성중공업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고 시위를 벌이며 항의하는 태안 사람들은 없었다. 대신 밝고 맑은 태안의 표정만 드러났다. 역경을 이겨낸 태안주민들과 그들을 위해 팔걷고 나선 자원봉사자들의 물결…. 이렇게 행복한(?) 뉴스들로 가득한 텔레비전은 과연 우리네 삶을 행복하게 만들까.

지금도 ‘광고의 홍수’ 속에 사는 시청자들은, 이제 ‘광고의 쓰나미’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할 때마다 반드시 봐야만 하는 그 기업광고들이 이제 텔레비전 곳곳에 배치되지 않을까. 광고주들이 제일 선호한다는 지상파방송이니, 앞으로는 중간광고와 가상광고 등 각종 광고들이 넘쳐나면서 프로그램 시간들을 ‘잡아먹는’ 날이 올 수 있다. 때문에 미디어업계에서는, 삼성방송 등 재벌방송이 생겨나면 신문 등 다른 언론 매체의 광고가 대폭 감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 삼성방송의 명분과 속내: “방송사의 영향력, 내 손 안에!”

그러나 한나라당이 내세운 ‘미디어산업 활성화’는 이번 7대 법안의 진짜 목적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미 지상파 등을 제외하고 케이블TV 등 다수의 방송채널에 대기업 진출이 가능한 상태인 데다가, 특히 지상파 등 뉴스방송은 초기 투자비용이 높고 많은 취재 인력과 장비가 필요한 사업이라 큰 이윤이 남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이 7대법안 강행으로 조중동 방송 및 삼성·현대 방송을 밀어붙이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힌트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방송’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설파하면서 지난 16대와 17대 두 번의 대선 패배가 방송 때문이라고 주장해온 한나라당은 미디어 정치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 같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에도 이제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 줄 ‘진정한 편파 방송’을 절실히 만들겠다고 나섰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대기업은 큰 돈 벌이가 안 될 것 같은 지상파 방송 소유에 뛰어들고 싶을까. 정계와 언론, 삼성그룹 등이 개입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삼성 X-파일 사건’보다 훨씬 앞선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떠올려 보면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는 상업방송과 신문, 금융, 프로축구단 등을 소유한 미디어 재벌로, 정권 장악 이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 통제로 악명을 날리고 있는 인물이다. 불법정치자금 운영, 마피아 지원, 탈세 논란에도 집권 이후 국영방송 장악과 함께, 이탈리아 언론의 절반을 소유한 그는 언론사를 동원한 여론 플레이로 총리직을 3번이나 연임하고 있다. 청와대-조중동-삼성은 따로따로가 아니다. 이들은 지상파방송사에서 만나 ‘또하나의 가족’이 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