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MBC의 ‘노조 압박’ 행보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KBS 사측은 1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 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이하 공추위) 전 간사였던 A기자와 KBS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인 B기자에게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를 개최하겠다고 통보했다. KBS 사측은 기자들의 보도 공정성 제고를 위한 ‘자사 보도 감시’ 활동을, ‘부당한 압력 행사’라며 문제 삼았다.

A기자와 B기자의 징계 사유는 같다. 사측은 징계회부서를 통해 “취업규칙 제4조(성실) 및 제5조(품위유지)에 위배된 것으로 인사규정(징계) 제1호(법령 등 위반) 및 제3호(공사 명예훼손 및 품위 오손)에 해당해 징계 심의코자 한다”고 밝혔다.

A기자는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던 자사 보도에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제1차 민중총궐기가 열렸던 지난해 11월 14일 메인뉴스 KBS <뉴스9>에서 보도된 <서울 시내 교통 마비에 논술 수험생 발 ‘동동’>(링크) 리포트는 익명의 학부모 인터뷰를 통해 수험생 피해 사례를 부각한 내용이었다. 이 리포트는 집회 당일 서울 곳곳에서 대입 논술 시험이 치러졌지만 집회 장소와 시간이 크게 겹치지 않아 수험생 피해가 속출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잘 드러나지 않았고, 사례와 근거가 부족했으며 집회 목적과 취지보다는 ‘피해 상황’에만 주목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마저도 보도 내용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는 기자들의 반발로 일부 수정된 리포트였다는 점이 드러났다. (▷ 관련기사 : <기자들도 ‘편향’ 지적한 KBS ‘민중총궐기’ 보도>)

A기자는 공정방송을 위한 보도 감시 활동을 하는 노조 공추위 간사로서, 취재기자와 부서장에게 △익명 인터뷰한 학부모가 실제로 논술시험을 못 본 수험생의 학부모가 아닐 수 있는데 직접 확인했는지 △사실이라고 해도 사례가 1개뿐이라 부족하지 않은지 △한 명의 사례만으로 이렇게 기사를 써도 되는지 등을 물었다.

▲ 지난해 11월 14일 KBS <뉴스9> 리포트

KBS 사측은 이를 두고 “해당 리포트 관련 부서 소속이 아님에도 후배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민주노총에 불리한 보도 내용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고 해당 리포트의 근거에 대해 문제제기성 발언을 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직장 내 질서를 훼손했다”면서 “부서장에게도 압력성 전화를 걸어 보도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고 주장했다.

B기자의 징계사유도 비슷했다. KBS는 징계회부서에서 “지난달 21일 <뉴스9> 중계차 연결 코너 ‘청년 대한민국 현장을 가다, 대륙 전역 배송’을 방송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 경위를 캐묻고 문제제기성 발언을 하는 등 부당한 개입 행위를 함으로써 직장 내 질서를 훼손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기자협회 관계자의 설명은 달랐다. B기자가 후배기자와 통화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리포트가 불공정하다고 지적한 것이 아니라, 중계차 연결 코너를 담당하는 기자에게 보도하게 된 배경을 비롯해 취재 중 어려운 점이 없는지를 물어, 주로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새 노조는 17일 성명을 내어 “사측이 용납할 수 없는 도발을 자행했다”며 “공정방송 감시활동 징계 당장 중단하라”고 질타했다. 새 노조는 “사전 모니터를 통해 공정성을 잃은 아이템이라는 비난 가능성이 높은 뉴스 아이템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인 취재기자와 부서장에게 전화로 관련 내용을 물어보는 활동은 단체협약에 보장된 노동조합의 권리이자 의무다. 그럼에도 공정방송 감시라는 일상적인 조합 활동을 이유로 징계에 회부하겠다는 것은 단협을 부정하고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겠다는 선전 포고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새 노조는 “사측의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징계 도발이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사내 노동조합과 협회 등 공정한 비판 세력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임을 뻔히 안다”며 “고대영 사장에게 경고한다. 유치한 협박을 당장 집어 치우라. 공정방송 수호의 최전선에서 온몸을 던져 싸우는 후배들의 등에 칼을 꽂듯이 후배들의 징계를 요청한 ‘정지환 보도국장’, ‘이현주 시사제작국장’, 그리고 포괄적 책임자인 ‘김인영 보도본부장’의 이름을 이 성명에 명토 박아 역사 속에 남긴다”고 전했다. 새 노조는 같은 날 아침 고대영 사장 출근길에 항의 피케팅을 진행하다 청원경찰에 의해 끌려나가기도 했다. (링크)

‘자사 보도 비판’ 내부 목소리 막아… MBC의 길 가는 KBS

노조 공추위 간사는 노사 단체협약으로 설립 운영하는 공정방송추진위원회를 주도하는 공방위의 노측 핵심 위원이다. KBS 노사 단체협약 26조(공방위의 역할과 운영)는 ‘공방위 위원이 공방위 활동에 필요한 자료제출 요구권을 가지며, 노사협의로 관계자의 출석, 진술을 요구할 수 있으며, 관계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규정, 공추위 간사의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KBS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 역시 KBS 편성규약에 따른 보도본부 편성위원회(보도위원회) 실무자 측 위원을 맡고 있다.

법원이 노사 공동의 의무라고 인정한 ‘공정방송’을 위한 활동을 하는 쪽(노조, 직능협회 등)의 활동을 부정하고, 징계로 위협하는 KBS의 행보는 MBC와 꼭 닮았다. 그 중심에 보도국장이 서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MBC는 지난해 3월 최기화 보도국장을 임명했고, KBS는 지난해 12월 정지환 보도국장을 임명한 바 있다.

MBC는 지난해부터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본부) 산하 민주방송실천위원회(이하 민실위)의 활동을 공개 비난해 온 바 있다. MBC는 자사 보도 비판 내용이 담긴 민실위 보고서에 대해 이례적으로 긴 분량의 입장을 내어 해명했다. MBC본부가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소속이기에 민실위 보고서 역시 정치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왜곡조작위원회’ 등 원색적인 표현까지 동원했다.

또한 최기화 보도국장은 지난해 9월 9일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박주신 씨의 병역 의혹 리포트의 편파성을 지적한 민실위 보고서를 기자들 앞에서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고, 기자들에게는 민실위 간사 취재에 불응할 것과 민실위 간사와 접촉했을 시 내용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정지환 보도국장 체제 이후 KBS 상황도 비슷하다.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은 지난해 12월 17일 공동 성명을 내어 ‘세월호 청문회 보도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 기자협회장의 제안이 부장들에게 ‘압박’이 된다며 ‘편집권 침해’ 주장에 시동을 걸었다. 보도본부 간부들은 3년 전에도 천안함 3주기 방송이 지나치게 양이 많고 호전적인 내용이 다수라고 비판한 당시 기자협회장의 지적에 대해서도 “9시 뉴스 편집에 간섭하려는 기자협회장의 시도가 심각한 지경”이라며 같은 주장을 했었다.

‘편집권 침해’ 논란이 불거진 지 2달도 되지 않아 이번에는 ‘징계’로 내부의 비판 목소리를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벌어진 것이다. △단협으로 보장되어 있는 노조의 공정방송 감시 활동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점 △기자들의 공정방송 감시 활동에 ‘부당한 편집권 침해’라고 규정하는 점 △노조 공추위 간사, 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 등 관련 활동을 담당하는 대표자들을 겨냥해 징계 압박을 시사해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의 분위기를 위축시키려고 하는 점까지 MBC를 빼닮았다.

편집회의 참석자 20여명 중 유일한 평기자 대표인 기자협회장의 의견 제시를 ‘월권’으로 규정해 발언권을 위축시키고자 한 2번의 사례에 어김없이 존재했던 정지환 보도국장(2013년 당시 편집주간)이 기자들 징계를 추진하며 강경 행보를 이어가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 관련기사 : 세월호 청문회 보도 요구가 ‘편집권 침해’라는 KBS / ‘편집권 침해’ 주장 사과한 KBS 보도국 간부, 평기자 발령 / KBS기자들, 보도 간부들의 ‘편집권 침해’ 주장 정면 반박)

▲ 17일 오전, 출근길 피케팅에 참여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노조원들이 끌려나가고 있는 모습 (영상 제공=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법원은 ‘공정방송은 노사 공동의 의무’라는 판례를 잇따라 내놓고 있고, 최근 지노위도 MBC에서 벌어진 노조 민실위 압박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라고 결정했다. 특히 지노위는 “MBC와 같은 공영방송의 뉴스보도에 대한 비평 활동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의 일환으로 다른 어떤 사항보다 더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하고, 비평활동의 주체가 이 사건 노동조합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해 ‘내부 보도 비평의 자유’를 인정했다. 지노위 판정서가 나온 직후 KBS는 ‘노조의 자사 보도 비판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 지노위의 판단과 배치되는 ‘기자 징계’를 시사했다. 사측의 ‘일방통행’에 제동을 거는 결정이 계속되는데도 멈추지 않는 MBC의 뒤를 KBS가 좇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KBS 한 기자는 “MBC에서 보도국장이 노조 민실위 보고서를 찢고, 민실위와 통화한 기자들에게 보고를 하라고 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KBS에서도 지금 와서 그런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작년 11월에 일어났던 일임에도 지금에 와서 꺼내서 전 공추위 간사와 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을 징계하려고 하고 있다”면서 “이는 MBC 따라하기, 혹은 버전 업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협회 관계자는 “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은 뉴스가 균형적이고 공정하게 보도되는지를 감시하는 일을 주로 하는데, 그렇다 보니 자연히 보도 주체인 취재기자나 촬영기자와 통화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방송국장이 취재기자와 통화한 사실이 알려진 후 보도국장이 격노를 하면서 ‘무소불위의 기자협회가 취재기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한다’며 ‘사규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석상에서 밝혔다”며 “‘공정방송 감시’라는 일상적 활동을 오히려 ‘공정보도를 저해했다’는 명목으로 징계를 하는 꼴”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기자협회장이 뉴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편집권 침해라고 하는 등 일련의 모든 움직임에 보도국장이 앞장서 있다. 이런 압박이 계속되다 보니 사내 소통 분위기는 현저하게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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