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게 하는 드라마가 시그널이다. 그런 속에서 최근 시그널에 대해서 가장 무겁게 언급되는 화제는 과연 이 드라마가 지상파에서 방영됐더라면 어땠을지에 대한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그보다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은 지금까지 방영됐던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가 지상파에서 어떤 방해를 받았을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이 작가의 장르물에 대한 의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시그널을 통해서 해명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정말 기분 탓일까?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닐 거라 믿는다. 시그널이 그러라고 시키고 있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알면서도 마음 졸이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장르물이 제대로 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난주 그토록 마음을 졸이게 했던 차수현(김혜수)의 죽음은 20년 전 이재한(조진웅)이 진범을 잡으면서 없었던 일이 됐다. 범인은 현직 검사장의 아들 한세규(이동하)였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시작이었다. 물론 피해자들과의 합의, 자수 직전 체포 등등 미사여구로 포장된 유전무죄의 법칙에 의해 한세규는 풀려났다. 참 지겹도록 익숙한 장면인데 여전히 적응은 되지 않는다.

동시에 포상을 받아도 모자랄 강력반장이 문책성 전출을 가고, 문제의 김범주(장현성)가 새로 부임해 온다. 김범주가 안치수(정해균)와 함께 이재한의 실종에 관련된 내막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 역시 권력과 관계가 없을 수 없다. 이재한은 떠나는 반장으로부터 이 사건이 이렇게 유야무야 되는 이유를 짧게 들었다. 대교붕괴, 신도시 건설 등과 관련된 엄청난 비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그 비리의 몸통쯤으로 손현주가 등장했다. 주연급 배우의 카메오 출연이라는 흔치 않은 장면이었지만 그보다는 문득 손현주의 영화 더 폰이 떠올랐다. 더 폰은 이 드라마의 모티브와 동일한 영화였다. 그래서 어쩌면 작가나 배우 모두에게 껄끄러울 수도 있는 만남이었지만 대인배 배우와 작가는 시청자에게 아주 멋진 선물을 합작했다.

그쯤 되니 이재한의 실종이 좀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법치국가에서 경찰이 실종이 된 채로 20년이 그냥 지나가 버릴 정도라면 권력과 돈의 카르텔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유를 말할 수 없다. 당연히 열 받은 이재한은 김범주에게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면서 한세규 사건의 진실을 쫓는다. 이미 새로 부임한 김범주에 의해 감시당하고, 방해를 받는 이재한은 그때 이 사건의 파트너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차수현을 끌어들였다.

비록 아직은 강력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찰 초년생이었지만 차수현은 은근과 끈기로 결국 이재한이 원하는 단서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단서의 주인공을 찾아갔으나 한 발 늦었다. 한세규 사건에서 사라진 블루 다이아몬드를 팔려고 다녔던 문제의 인물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일단 7회에 전개된 과거의 수사는 여기까지였다. 물론 이재한의 성격으로 봐서는 거기서 멈췄을 리는 없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어디선가 분명 결정적 단서나 증거를 찾아냈을 것이고, 그것이 실종의 이유가 됐을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차차 알게 될 것이며 이재한의 실종의 과정이 바로 이 드라마 시그널의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차수현의 동료 김계철(김원해)이 마치 개그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데도 자꾸만 오대양 사건을 언급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도 그냥 넘길 수 없을 것이다.

시그널은 과거의 사건과 현재가 연결되어 있다. 김계철이 반복해서 언급하는 오대양사건은 현재의 무엇과 연결된 것인지 금세 알 수 있다. 다만 너무 무겁고 조심스러워서 아주 멀찍이 떨어져서 그곳을 가리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다 보니 너무 무거워져서 본래 하려던 말을 꺼내기가 어색해졌지만 할 수밖에는 없다. 이 드라마는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으니 말이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바로 한세규 사건을 쫓는 이재한과 함께 등장한 김혜수의 이야기다. 20년 전의 차수현이 어찌나 2015년의 차수현과 다른지 마치 아역을 따로 쓴 것 마냥 그 세월의 차를 완벽하게 달리 연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혜수의 연기를 새삼 잘한다고 칭찬하기도 머쓱한 일이지만 이건 좀 다르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물론 늘 관리하는 여배우라면 10년 정도는 쉽게 속일 수 있다. 그렇지만 20년이라면 좀 다른 문제다. 인간적으로 아역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20년 전의 차수현은 조금 과장해서 20년 전의 김혜수를 데려와 촬영한 것 같다는 것이다. 과거를 다룰 때에는 영상을 일부로 탁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굳이 영상을 바꾸지 않더라도 차수현의 표정과 걸음걸이만 봐도 시간의 변화를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다. 아니 그래서 혼동이 될 때도 있다.

보통은 연기 잘한다고 하면 감정의 극단을 표현하는 부분을 말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진짜 내공 깊은 연기라면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감정과 상황을 전달하는 힘을 갖는 법이다. 20년 전의 차수현과 후의 차수현을, 김혜수는 자막이 필요한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연기로 설명해주고 있다. 김혜수에게는 정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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