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처럼 이주노조 사무실에서 조합원 가입원서를 받아서 CMS계좌이체 등록과 조합원 연락처 명단 등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이번 설 연휴를 맞이해 다양한 이주노동자 공동체 행사가 열렸고 합법화 이후 조합원 수는 나날이 늘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수십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조합에 가입했다. 덕분에 조합 재정도 튼튼해지고 앞으로도 할 일이 더 많아지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갑자기 오래된 조합원 B씨가 사무실을 깜짝 방문했다. 보통은 임금체불이나 퇴직금 미지급 등 본인이 일하는 회사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미리 사무실에 전화를 하고 몇 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오는데 아무 연락 없이 온 경우는 드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봤다. 조합원 B씨는 “그냥 진우 얼굴 보러왔다”고 하면서 커피나 한잔 달라고 했다. 별로 대접할 게 없어서 믹스 커피 한잔 내놓는 게 전부였지만 그냥 얼굴 보러 왔다는 말 한마디가 참 고마웠다. 회사를 바꾸는 통에 몇 달 조합비를 못 냈다면서 꼬깃꼬깃 접은 돈을 건네주는 모습도 참 고마웠다. 지난 몇 년간 보통 문제가 생기면 노동조합을 찾다가 해결되면 연락이 뚝 끊기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나도 모르게 사람의 생리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노동조합에서 평상시에 조합원에게 연락하고 만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활동인데 이를 멀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조합원 B씨에게 자연스럽게 최근 설날에 뭘 했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설날을 맞이해서 2만5000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친구랑 같이 네팔 가수 공연을 본 것 말고는 그냥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오랜만에 쉬는 연휴인데 여자친구는 안 만나냐고 슬쩍 운을 띄워보니 B씨는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한국에서 수입산이야, 국산 아니라서 여자친구 사귈 수 없어.”

‘수입산’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아니 도대체 누가 사람에게 국산, 수입산 이라는 말을 쓴단 말인가? B씨에게 다시 물어보니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사람들이 농담처럼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런 말을 쓴다는 것이었다. 아니 사람이 돼지고기도 아니고 네팔산, 방글라데시산, 국내산이 어디 있단 말인가?

B씨는 놀라는 내 표정을 보고 웃으면서 “한국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기분이 나쁘지도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설 연휴 때 무엇을 했냐고 되물어서 온 가족이 다 고향에 모여서 차례도 지내고 맛있는 것도 먹는다고 했더니 그게 오히려 더 부럽다 했다. 가족들과 떨어져 한국에 온지 이미 수년이 지난 B씨는 평상시에 일이 많을 때는 정신없이 바쁘지만 이렇게 명절 때나 휴가기간에는 만날 수 있는 가족도, 친구도 없어서 혼자서 방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고 했다. 유일한 낙이라곤 짧게나마 가족들과 국제전화를 하는 것뿐, 나머지 시간에는 하루 종일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오늘도 할 일이 없어서 집에 있다가 갑자기 내 생각이 나서 사무실에 놀러온 것이라 했다.

▲ 지난 2014년 이주노동자 여름캠프. 강원도 강릉 해수욕장에서 함께 여름휴가를 보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B씨의 이야기가 마치 내 또래의 젊은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시큰거렸다. 저녁에 동대문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다면서 자리를 나서는 B씨에게 혹시 네팔에 가서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알기로 보통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어 학원 선생님이나 관광 가이드, 돈을 좀 번 사람들은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업을 하길 원한다고 들었는데 이마저도 이미 포화상태라서 쉽지 않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그만큼 또 먹고 자는데 돈을 많이 썼기 때문에 B씨는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다시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번에 4년 10개월이 끝나면 40세가 넘기 때문에 다시 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현행 고용허가제도에서는 최초 입국할 때 최대 4년 10개월 동안 일을 할수록 되어있다. 5년 이상 합법적으로 거주할 경우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또한 40세 미만의 이주노동자에게만 고용허가제 비자가 발급되기 때문에 나이제한에 걸리면 신청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일이 많아져도 두세 달에 한번 씩이라도 사무실에 들르겠다는 B씨에게 다음번에 꼭 술 한 잔 같이 하자는 약속을 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조합원의 방문이 반가웠지만 한편으로 다른 생각도 들었다. 명절에도 오로지 사업장 안에서만 죽어라 일만 해야 하니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은 또 다른 ‘헬조선’이 아닌가 싶었다. ‘돈 벌러 한국에 온 노동자’로만 생각했는데 사실 내 또래 20~30대의 젊은 이주노동자들은 나처럼 뜨겁게 연애하고, 명절 때는 가족을 만나고,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도 가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지난 2010년 11월 6일 갑작스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고 이진원(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님의 1집 앨범 <Infield Fly>에 수록된 “스끼다시 내 인생”을 들으면서 언젠가 우리 이주노조 조합원들과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도로 다 같이 여름휴가를 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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