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는 대중의 공통된 의견을 알아보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지만 때로 논란의 대상이 된다. 정부는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근거로 여론조사 활용해왔던 게 사실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말 노동자의 71.7%가 <기간제법> 개정 등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다수의 매체들이 그대로 받아썼다. 사실상 ‘선전’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뉴스타파는 ‘여론조사의 비밀’(▷링크)이라는 이름으로 고용노동부의 설문조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설문 문항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는 지적이다. 실제 정부는 응답자들에게 “2년 근무 후 기간제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될 경우에는 계속 근무할 수 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계약이 종료되게 됩니다. 이에 따라 기간제근로자로 2년 근무 후 근로자 본인이 원할 경우에는 최대 2년까지 같은 직장에서 더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귀하는 이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여론조사의 허구성을 넘어, 적극적으로 악용된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정부가 아닌 방송사가 하는 여론조사는 다를까? 그렇지 않다. 방송사들이 하는 여론조사 또한 끊임없이 논란 대상이 돼 왔다. 2015년 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법안과 관련해 KBS는 응답자들에게 “최근 정부는 노동 시장 개혁을 위해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를 완화하고 비정규직의 고용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OO님께서는 정부의 이러한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며 ‘찬반’으로 물어 비판을 받았다. 결국, 한쪽으로 답을 유도한 셈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장그래 양산법’ 압도적 찬성 KBS 여론조사, 문항 살펴보니) 그렇기에 끊임없이 여론조사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따져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MBC 설 연휴 여론조사…한반도 사드배치 공감 67.8%는 왜?

▲ MBC '뉴스데스크' 8일자 뉴스

이 가운데, 설 연휴 MBC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8일 “MBC가 설을 맞아 주요 정치 현안과 정책 과제에 대한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며 “10명 중 7명은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고 응답해 최근의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에 따른 위기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사드배치와 관련해 ‘공감한다’는 응답이 67.8%로 ‘그렇지 않다’는 25.8%보다 “2배 이상 많았다”는 것이다.

MBC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집권 4년차 박근혜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분야’는 경제활성화가 52.3%로 가장 높았다. 그 뒤로 부정부패 척결 16.1%, 양극화 해소 15.3%, 4대 개혁 6.2%, 남북관계 4%가 뒤를 이었다. MBC는 “노동개혁법에 대해서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과(46.1%)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47.1%) 팽팽했다”,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등 정부의 2대 지침 발표에 대해서는 동계의 대타협 파기로 불가피했다가 32.1% 가 협의가 없어 부적절했다가 49.9%였다”, “국회에서 처리가 막힌 쟁점 법안에 대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대해서는 찬성 46.5% 반대 43.8%였다”고 보도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대해서도 MBC는 “고쳐야 한다가 62.3%로 현행유지보다 두 배 이상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전했다.

▲ MBC '뉴스데스크' 8일자 뉴스

MBC 여론조사의 공정성은 곧바로 논란이 됐다. 일단 한반도 내 ‘사드배치’와 관련해 MBC의 질문문항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해 미국의 고고도미사실방어체계 ‘사드’의 한반도 배치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한미군 내 사드 배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였다. 선택지는 ‘매우 공감한다’와 ‘다소 공감한다’,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모름/무응답’으로 나뉘었따.

객관적으로 질문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일단 ‘사드’배치에 대한 MBC의 수식부터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해’라는 문구다. 사드배치의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 등에 대한 실효적 대응책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오히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편입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판이다. 특히, 중국이 반대한다는 점은 사드 문제가 단지 안보적 사안을 넘어선 외교 노선의 문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 같은 전체적인 설명 없이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해’라는 표현 만으로 묻는다면 응답자는 ‘필요성’에 더 무게를 두고 답할 수밖에 없다.

MBC의 ‘사드배치’ 관련 여론조사 문제는 비단 문항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질문과 질문은 서로 연결돼 있다. 그 전 질문이 그 다음 질문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MBC는 한반도 내 사드 배치에 대한 질문 전에 “4차 핵실험 및 장기 미사사일 발사 예고 등 북한의 움직임이 한반도 안보에 얼마나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문항을 배치했다. 이는 그야말로 ‘질문’으로 볼 수 있지만 질문만으로 볼 수도 없다. 오히려 응답자들로 하여금 ‘북한의 움직임이 한반도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인식을 주기 충분하다. 당연히 그 다음에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해 사드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응답 또한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 MBC '뉴스데스크' 8일자 뉴스

MBC 여론조사의 문제는 이를 곳곳에서 드러낸다. MBC <뉴스데스크>는 <국민 67.8% “한반도에 사드 배치해야”> 리포트를 통해 ‘국회선진화법’ 개정 의견이 62.3%로 현행유지보다 두 배 이상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보도했다. 이는 전체적인 여론조사 질문문항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다. MBC 여론조사의 첫 번째 질문은 “선생님께서는 이번 총선의 의미로 다음 중 어느 의견에 더욱 동의하십니까?”였다. 선택지는 ‘정권심판론’과 ‘국회심판론’, ‘정당심판론’, ‘기타’, ‘모름/무응답’으로 나뉘었다. 결과는 MBC 보도대로 국회심판론이 25.3%로 가장 높았다. ‘정권심판론’은 23.8%, ‘정당심판론’ 15.2% 순이었다. (MBC 뉴스는 이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 4년차를 맞아 치러지는 이번 총선의 의미로 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질문지에는 없는 ‘박근혜 정부 4년차를 맞아 치러지는’이라는 수식을 붙였다.)

MBC는 “선생님께서는 이번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실 요인은 무엇이십니까?”, “현재 선생님께서 거주하시는 지역구의 현역 국회의원이 이번 총선에 다시 출마한다면 지지하실 생각입니까?”의 질문으로 설문을 이어갔다. 지상파 뉴스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심판론을 단순전달하는 데 앞장서왔다. 각종 조사에서 매체영향력 1위를 기록하고 있는 KBS는 연초 <국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연속 기획을 내보낸 상황이다. 이미 뉴스 시청자들 머릿속에는 ‘국회심판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MBC의 여론조사 결과도 이와 유사하게 나타났다. 정권심판보다는 국회 및 정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응답자가 훨씬 많았다. 그 속에서 ‘국회선진화법’과 ‘직권상정’, ‘노동개혁법안’ 등에 대해 질문한다면 이미 답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특히, MBC는 ‘국회선진화법’과 관련해 “전체 국회의원 60% 이상이 동의해야 쟁점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국회선진화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 만일, “정부여당 날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만든”이라는 수식을 붙였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4년차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분야에 대한 질문 또한 마찬가지다. 만일, 전체적인 설문이 2014년 2월에 벌어진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 등 팍팍한 서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내용이 주였다면 아마도 복지확대를 비롯한 ‘양극화 해소’가 1위를 기록하지는 않았을까?

여론조사,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결과 달라져

▲ MBC 여론조사 설문지

여론조사는 ‘설계’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MBC의 여론조사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설문문항 전체를 보면 의구심을 온전히 거두기도 어렵다. 최근 논란이 뜨거운 ‘양대지침’을 박근혜 정부에서 내세우고 있는 용어 그대로 ‘일반해고’라고 묻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정부는 ‘일반해고’라고 주장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쉬운해고’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되는 용어에 있어서 MBC는 한쪽에서 밀고 있는 용어 그대로를 사용했다. 이는 공정성의 측면에서 보면 적절하지 않은 대목이다. 여론조사는 밴드웨건 효과(Band Wagon Effect)를 고려한다면 위험성은 배가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시청자들이 주의를 하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등이 개정돼 설문조사 전체 질문지를 홈페이지에 게재하도록 함에 따라 시청자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그 또한 보다 시청자·유권자들의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한다.

4·13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각 방송사별 설문조사는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여론조사에 대한 공정성 논란 또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여론조사를 실시한 방송사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도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언론사 스스로 ‘공정성’ 등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MBC 설 연휴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볼 때 왜곡이라고까지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응답자들에 대한 유도까지 없었다고는 단정할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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