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로이터(Reuter) 통신사가 선정한 ‘2008 올해의 이미지’에 대한민국 청소년의 사진이 뽑혔다. 영예롭게도 세계적 권위를 가진 통신사의 사진에 선정됐다고 하니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선정된 사진을 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이것은 ‘영예’가 아니라 ‘굴욕’이기 때문이다.

▲ 로이터에 실린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극기훈련’사진들. 화면 캡처.
사진 속에는 아직 솜털이 뽀송뽀송한 아이들이 보인다. 동네 오락실에서 백원짜리 오락을 하고 신나게 축구공을 찰 법한 아이들이 난데없이 통나무를 들고 신음하고 있다. 남자애들 너머 뒤엔 여자애들도 보인다. 고통스러워하며 입을 벌린 그들은 군복까지 입고 있다.

사진 설명은 다음과 같다.

“2008년 1월 7일 서울 남서쪽 40km에 위치한 안산에서, 초·중등학생들이 퇴역 해병들에 의해 운영되는 청룡 극기 훈련 캠프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겨울 군사 캠프에 참가했다. 41명의 학생들은 그들의 정신과 몸을 강화시키기 위해 6일 캠프에 참석했다.”

이밖에도 로이터((http://search.us.reuters.com/query/?q=winter+military+camp&s=USPHOTOS)에는 키가 1m도 채 안돼 보이는, 포동포동하고 귀여운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이 통나무를 함께 들고 있는 모습, 완전무장한 채 밧줄에서 내려오는 모습, 어깨동무를 하며 ‘얼차려’를 받는 모습, 거꾸로 매달려 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 등이 실렸다.

극기훈련 캠프에 참석한 이들의 모습은, 사실 우리에겐 별로 새로울 게 없다. 아이들이 ‘정신수련’을 위해 극기 훈련을 받는 모습은 KBS <VJ특공대> 등에서 재미난 볼거리인 것마냥 성우들의 실감나는 목소리로 자주 방영되기도 했으니까.

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외신 기자들이 보기엔 ‘진기’해 보였던 것이다. 하기야, 아직 솜털이 뽀송뽀송한 아이들이 군복을 입고 통나무를 짊어지고, 극기훈련을 받고 있는데 어찌 이상하지 않겠나. 더구나 부모들이 직접 보내기까지 했는데.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자신의 블로그(http://blog.naver.com/dogstylist)에서 이 사진에 대해 “1980년 TV 브라운관을 통해 익히 봐온 삼청교육대의 이른바 순화교육, 불량배나 전과범 전력자들을 소위 정화시켜주겠다며 국가가 나선 그 불쾌하기 짝이 없는 사건의 외형을 멀쩡한 초·중등학생들이 재연하고 있다”며 “감수성 예민한 한낱 소년 소녀에게 육체적 극기의 숭고함과 충효 사상을 억지로 주입하려는 저 위험천만한 발상. 그 발상에 동조하는 철없는 부모들. 군 문화에 대한 만성적 선호가 제도적 정서적으로 고착화되고 권장되는 한,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란 노상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요즘 너도나도 죽겠다고 ‘악악’대지만 사실 대한민국에서 불쌍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바로 청소년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10년만에 변칙 부활된 ‘일제고사’ 탓에 요즘엔 초딩들도 죽을 맛이라고 하니까. 체험학습 등 학생들이 일제고사가 아닌 다른 것도 선택할 수 있게 권리를 부여한 소신있는 교사들까지 ‘불복종’을 이유로 파면 또는 해임된 마당에 한낱 학생들이 어찌 감히 일제고사를 거부할 상상이나 하겠나. 며칠 전에도도 중학교 1, 2학년은 일제고사를 보느라 간밤에 내린 눈길을 어깨가 축 처져 걸어갔을 것이다.

극기훈련을 통해 강화된 정신과 몸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경쟁사회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무한한 상상력도 빼앗기고 자신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생각할 힘마저 잃어가고 있는 아이들. 나의 과거였던, 그래서 한없이 안쓰러운 그들은 ‘2008 올해의 이미지’가 아닌 (기형적인) ‘2008 대한민국 현주소’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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