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음악웹진 <보다>의 김학선 편집장이 미디어스에 매주 <소리 나는 리뷰>를 연재한다. 한 주는 최근 1달 내 발매된 국내외 새 음반 가운데 ‘놓치면 아쉬울’ 작품을 소개하는 단평을, 한 주는 ‘음악’을 소재로 한 칼럼 및 뮤지션 인터뷰 등을 선보인다.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노래들이 듣는 이들에게 아무런 설득력 없이 다시 무감한 일상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하더라도 그렇게 사라져가는 여기 노래들 속에서 저 슬픈 ‘고향’이라는 단어 하나와 내려치는 북소리만이라도 부디 오래 기억되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정태춘의 앨범 작업 후기 때문이었다. ‘퇴행의 시대’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TV만 켜면 흘러간 옛 노래들을 대상으로 한 음악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에, 1988년에 나온 앨범을 2016년에 다시 소개하려 하는 이유는. 2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정태춘이 노래하는 고향의 이미지는 이제 더욱 옅어졌고, 더욱 슬퍼졌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예술의 한 부분이라면 <무진 새 노래>는 1980년대 말미의 한 시대를 슬프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제목 그대로, 무진년(戊辰年)에 새롭게 발표한 노래들. 서울올림픽의 들뜬 기운이 가득했을 1988년 3월에 정태춘은 사회의 모순과 그 모순 사이에서 소외돼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노래를 만들어 발표했다.

<무진 새 노래>는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깊고 서정적이지만, 정태춘이라는 거목의 음악인생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그 전까지 그는 주로 개인의 ‘번민’과 ‘상념’을 노래하던 가수였다. 하지만 그는 ‘그의 노래는’을 통해 “그의 노래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슬픈 환락과 전도된 가치 속에서”라고 노래하며 자신의 변화를 알렸다. 청계 피복 노조 행사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대중 집회의 단골손님이 됐고, “예술을 한다는 이유로 면책 받을 순 없다”며 시대의 상황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말하자면 <무진 새 노래>는 과거 정태춘의 서정과 당시 정태춘의 고민, 그리고 미래의 모습까지가 두루 담겨있는 앨범이다. “외계인이나 다름없는 수준에서 접했던 운동권 문화의 선동성에 조금씩 매료되어갔다”는 고백은 직접 북과 꽹과리 등을 연주한 ‘우리의 소원’과 ‘얘기 2’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동반자이자 부인인 박은옥이 주로 노래한 ‘우리가 추억이라 말하는’, ‘사랑하는 이에게 2’ 같은 노래들에선 여전한 서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조금 완화되긴 했지만 사전 심의제도는 노랫말을 여전히 난도질해놓았다. ‘고향집 가세’에서는 ‘문둥이’와 ‘미군부대’란 낱말이 문제가 돼 노래의 한 절이 통째로 들려나갔고, ‘그의 노래는’과 ‘얘기 2’ 역시 원래 가사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수정이 가해졌다. 데뷔곡 ‘시인의 마을’에서부터 겪었던 이런 경험은 이후 <아, 대한민국...>(1990)이라는 '불법' 음반 제작과 함께 사전심의 철폐를 위한 위헌 소송 등의 외로운 싸움으로 이어진다. 또 그의 고향이기도 한 평택 미군기지 반대를 위한 투쟁을 벌이며 한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기도 했다.

<무진 새 노래>는 그렇게 투사가 되기 전의 징후를 알린 앨범이다. 하지만 앨범 안의 정태춘은 여전히 토속적이며 서정적인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 앨범을 관통하는 ‘고향’이라는 주제는 그의 목소리와 노랫말을 통해 다시 찾을 수 없는 슬픈 그리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세대의 연속성이 사라져버린 시대에 그가 노래하는 고향의 이미지는 불과 30년도 안 돼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또 미디어에서 주로 연출해내는 명절 고향의 떠들썩함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도 그 결이 많이 다르다.

“햇볕이 좋아 얼었던 대지에 새 풀이 돋으면 / 이 겨울바람도, 바람의 설움도 잊혀질까 / 고향집도 고향집도”라고 은근하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28년 전의 노래가 오히려 지금 시대와 더 어울려 보인다. “저 맑은 별빛 아래 한밤 깊도록 뛰놀던 골목길”과 “아버님 젯상에 둘러앉은 객지의 형제들”처럼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지는 고향의 풍경이 이 앨범에 담겨있다. ‘고향집 가세’는 30년 전의 시골 고향집을 세밀하게 그려낸 정밀화이기도 하다. 밝고 떠들썩하게 만들어진 설의 이미지 속에서 저 슬픈 ‘고향’의 노래를 듣는 건 또 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그의 바람처럼 저 슬픈 ‘고향’이라는 단어 하나가 더 오래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학선 /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 공감>의 기획위원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을 맡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K-POP, 세계를 홀리다>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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