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협회 창립일인 2월 1일(월) 홀로 북한산국립공원의 여러 봉우리에 올랐다. 기분 좋은 산행이었지만, 마구잡이로 지어올린 아파트 단지들을 바라보면서 도시의 난개발 문제가 심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제 버릇 남 못 주듯 자연스레 “우리나라 방송도 난개발이지”라고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방송의 난개발’, 하산하는 내내 방송이 산업적인 수익 추구 대상으로만 전락한 게 아닌지, 세수 확대의 수단 정도로만 치부되고 있는 게 아닌지 맘이 무거웠다.

물론 최근 방송의 제작-공급-시청행태와 새로운 변화들을 미디어학적인 차원에서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분명 혼란스러운 방송 환경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은 인정되지만, ‘마샬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논의했던 것처럼 미디어가 시공간적인 제약마저도 극복시키는 ‘인간의 확장(extensions of man)’을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금까지도 급변했지만, 앞으로도 방송 플랫폼은 ‘전송기술, 공급방식, 수신특성, 제작기법 등의 다양화’가 이뤄질 것이고, 점차 무엇을 방송이라고 해야 할지 더욱 혼란스럽게 될 것이다. ‘지상파방송, 위성방송, 케이블방송 이후 디지털화와 맞물린 기존 방송 플랫폼의 진화와 비실시간 VOD 서비스, 그리고 새롭게 급부상한 IPTV와 OTT 서비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의 골칫거리이자 방송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로 여겨지기도 하는 MCN’, 현재까지 전송기술, 수신방식, 제작기법, 공급방식 등에서 미묘하지만 큰 차이, 다르지만 거의 유사한 서비스들이 복합적으로 탄생해 왔다.

결국 이러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면, 방송정책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방송이 전체 미디어 지형 변화에 따라 ‘동학적인(dynamic) 방송 개념’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정책당국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이해한 토대에서 시기에 따라 주기적으로 적절한 방송 개념을 획정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이 각 방송 특성별로 정책도 적절히 마련할 수 있고, 규제도 합리적으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학의 ‘방송 개념’을 숙의하고 수시로 논의해야 할 주체는 방송과 관련된 정부만이 아니고, ‘정부, 학계, 업계’의 전문가들 모두일 것이다.

사실상 이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도 지난 1월 27일(수)에 공지한 ‘2016년도 주요 업무계획(안)’에 이러한 고민을 담고 있고, 학계에서도 방송을 대표하는 ‘한국방송학회(이하 방송학회)가 지난 1월 29일(금) ‘방송학의 정체성을 묻다’라는 세미나를 통해 진지하게 논의한 바가 있다.

방통위는 수많은 방송현안들을 언급하고 업무계획을 소개하면서도 ‘방송 개념’을 재정립하겠다는 점을 잊지 않고 명시했다(업무계획안 28쪽). 이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으로 특정할 수 있는 범주를 획정해야 하는 필요성을 바탕으로 방통위가 이를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정책으로도 연결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부 규제기관이 방송규제의 합리성 및 정당성을 갖추려면 응당 가장 우선적으로 고민해야할 부분일 것이다.

방송학회도 방송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세미나를 시작했고, 참여했던 모든 방송학자들 역시도 융합 디지털 환경에서 어떤 기준으로 방송을 정의해야 할지 적극적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방송 개념에 대한 결론을 도출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송기술, 공급방식, 수신특성, 제작기법 등’의 차이에 따른 방송의 구분과, 각 특성에 따라 방송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논의하는 열띤 토론의 장이 이루어졌었다.

정부 규제기관과 방송관련 학계가 동일한 고민을 하는 현재의 상황은 방송 업계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방송을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융합 디지털 환경에서 방송 실무전문가들 역시도 어떤 기준으로 방송을 재정의하고 획정해야 할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업계의 고민은 대체로 규제기관이 방송 개념을 벗어나 무리하게 적용하는 방송규제를 검토하기 위한 목적이 많긴 하지만, 결국 정부와 학계만큼이나 심각하게 방송 개념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

현재 방송법에서 방송은 “방송프로그램을 기획·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이하생략)”으로 정의되고 있다. 과거 2000년 통합방송법 이전의 방송법에서 방송은 “정치·경제·사회·문화·시사 등에 관한 보도·논평 및 여론과 교양·음악·오악·연예 등을 공중에게 전파함을 목적으로 방송국이 행하는 무선통신의 송신”으로 정의됐었다. 방송법에서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조항마저도 실제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럼 앞으로의 방송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 그리고 방송 개념에 따른 방송 정책과 규제 기준은 어떻게 합리적으로 분리 적용해야 할까?

결국 방송정책 주무 부처인 방통위를 중심으로 학계와 업계의 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미디어 환경 변화를 반영한 적절한 방송 개념을 재정의해 나가면서, 동시에 바람직한 방송정책 및 합리적인 방송규제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즉,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혼란이 가중될수록 방통위의 핵심 업무/책무 모두는 결국 ‘방송 개념’의 재정의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이 ‘난개발로 보이는 방송’이 ‘합리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방송’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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