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성역인가’, 이 물음을 다시 제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방통위였다. 그런 방통위에서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이른바 ‘MBC녹취록’ 파문에 대한 MBC·방문진 자료제출 요구 및 특별조사 제안을 거부했다. MBC대주주이자 관리감독 기관인 방문진 이사회는 더욱 가관이었다. 여당 추천 이사들은 회의 안건 상정에 앞서 ‘비공개’부터 요청했고 MBC녹취록을 보도하는 매체들의 ‘편향성’ 문제를 제기했다. MBC녹취록에 등장하는 고영주 이사장과 김광동 이사의 반발이 두드러졌다. 김광동 이사는 백종문 본부장의 폴리뷰 만남을 “지극히 사적”이라고 주장했다. 고영주 이사장은 백종문 본부장 출석 요구에 “망신주자는 거냐”라고 받았다. 모두 4일 발생한 일들이다.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고영주, 이하 방문진)는 여야 추천 이사들 간 신경전으로 시작됐다. 여당 추천 이인철 이사는 안건이 상정되기도 전에 MBC녹취록과 관련해 “(논의하며)사람들 이름이 나올 수 있는데 명예훼손 문제도 있기 때문에 비공개로 하는 게 어떤가”라며 “당사자 이름이 나오니까 그렇다. 그 사람들 명예에 대한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이름이 나오면 명예훼손이냐’는 물음에 이인철 이사는 “당연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여당추천 이사들의 비공개 요구…MBC녹취록에 나온 실명 거론하면 명예훼손?

<백종문 본부장 녹취록에 기재된 사실관계에 대한 진상규명 및 향후 방문진 조치에 관한 건>(유기철·이완기·최강욱)이 상정된 이후에도 여당추천 이사들의 ‘비공개’ 요구는 계속됐다. 여당 추천 고영주 이사장은 “개인 실명이 계속 나올 것 같다. 과연 이게 공개해도 되는 것인지 상당히 염려된다”며 “감사 인사관리에서도 명예훼손에 관한 것은 비공개 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고영주 이사장은 MBC녹취록에 이름이 등장한다.

또 다른 여당 추천 김원배 이사는 “공식석상에서 얘기는 나눈 건지 사석에서 나눈 얘긴지 잘 모르고 있다. 식사하면서 농담 삼아 한 얘기라고 하면 문제다. 녹취록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서 서로가 무엇을 알아야 얘기를 하지, 그렇지 않으면 회의 진행하기가 무리가 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5일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과 한겨레·뉴스타파 보도로 폭로된 것이 ‘MBC녹취록’이다.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와 관련해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이 “증거 없이 해고했다”는 육성 녹취가 공개되면서 부당·불법 해고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증거 없이 해고된’ 언론인들은 민형사상 소송을 예고했다. 하물며 MBC조차도 두 차례에 걸쳐 관련된 내용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MBC 관리감독 기관 방문진 이사의 입에서 “내용을 잘 모른다”는 발언 자체가 부적절한 상황이다.

▲ 방송문화진흥회 ⓒ미디어스

비공개 녹취록에 직접 이름이 등장하는 여당 추천 김광동 이사는 “비공식적 자리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마시면서 하는 것(나눈 대화)”라며 “비공개로 하십시다”라고 말했다. 권혁철 이사 또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비공개로 하는 게 맞다. 그러면 얼마든 논의할 수 있다”고 동조했다.

이 과정에서 ‘비공개’ 결정이 되기도 전에 방문진 회의를 중계하던 시청각실(기자실)의 TV화면이 꺼지면서 기자들이 반발하는 일이 발생했다. 방문진의 회의는 ‘직접방청’이 아닌 ‘간접시청’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비공개로 전환된다’는 명확한 설명도 없이 중계가 끊기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사들이 마이크를 가깝게 대지 않는 등 시설에 의해 참가자들의 발언이 안 들리는 경우도 있었다. 직접방청의 방식으로 바꿔야한다는 요구가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와 비교하더라도 이날 중계 중단 사태는 그리 단순하게도 볼 수 없다. 시스템상이 아닌 고의적인 중단이기 때문이다. 야당 추천 이사들의 ‘직원 시켜 (기자실 TV중계를)꺼버린 적 있느냐’는 질문에 고영주 이사장은 “명예훼손 내용이 나올 것 같으니까 끈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야당 추천 최강욱 이사는 “MBC녹취록은 사회적으로도 물의를 일으킨 시끄러운 일이 됐다”며 “그것에 대해 이사회에서 안건 제안 설명을 하는 것인데 그것조차 비공개하자고 하는 건 기우다. 오늘은 사안에 대해 설명하고 방문진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지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박했다.

끝내 이날 방문진 회의는 야당 추천 이사들이 “명예훼손이 될 만한 것에 대해 일체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후로도 야당 추천 이사들의 MBC녹취록과 그에 대한 보도를 언급할 때마다 ‘비공개’ 요구는 계속됐다.

녹취록 등장…고영주 이사장, “극우 인터넷 매체 폴리뷰라고 하면 명예훼손”

야당 추천 이완기 이사는 MBC녹취록과 관련해 “굉장히 충격적이고 참담하고 방문진 이사로서 부끄럽기도 한다”며 “무고한 사원들이 증거도 없이 해고됐다는 게 인사위원(백종문 본부장) 자백으로 밝혀졌다. 소송이 들어오면 패소가 분명함을 인지했고 막대한 손실이 있다는 것 알고도 소송을 강행해 온 게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폴리뷰라는 인터넷 매체와 만나 회사 기밀을 외부에 누설하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완기 이사는 “(소송이)노조파괴를 위한 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라면서 “MBC는 폴리뷰 박한명 편집국장의 <100분토론>, <신동호의 시선집중> 등 출연 청탁을 들어줬다. 그리고 폴리뷰 쪽에 회사에 내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고 법무노무팀의 간부(정재욱 법무실장)가 그 역할을 자행하고 나섰다. 백종문 본부장도 그 자리에서 용인했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백종문 본부장에 대해서도 “MBC임원으로서 품위를 떨어뜨리는 언행이 있었다”면서 “향후, MB 경쟁력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관련자에 대해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이완기 이사는 폴리뷰에 대해 ‘극우매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자 고영주 이사장은 다시 한 번 “극우 인터넷 매체 폴리뷰라고 하면 명예훼손이 된다. 이제 비공개로 하기로 하고…사안 자체가 비공개해야할 사안”이라면서 다시 한 번 비공개전환을 시도했다.

공개로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표결로 하자는 요구가 제기되면서 논란이 이어졌다. 야당 추천 유기철 이사와 최강욱 이사는 “이런 거 가지고 표결을 하니 (방문진이)봉숭아학당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 “이걸 두고 공개 비공개 다투는 것이 부끄럽다”, “이런 문제로 ‘표결합시다’ 이러니까 회의가 파행이 되고 언성이 높아지고. 자꾸 자극적인 언어가 나오고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여당 추천 방문진 이사들, “지극히 사적인 자리…보도한 매체들은 편향”

여당 추천 이사들은 MBC녹취록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라는 논리를 들어 비공개해야한다는 요청도 이어졌다. 관련해 보도하고 있는 매체들의 성향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폴리뷰에 ‘극우매체’라고 하는 게 명예훼손이라던 여당 추천 이사들은 MBC녹취록을 보도한 매체들에 대해서는 “편향매체”라고 낙인 찍었다.

▲ 1월 25일 뉴스타파 보도 화면

여당 추천 유의선 이사는 “신문에 나온 것만 봐선 개인적으로 굉장히 유감”이라며 “사실인지 아닌지, 어떤 맥락인지 알아야 하는데 정확한 판단이 안 된다”며 “회사의 조직적인 부정행위를 스스로 자백한 것인지 개인적인 호기를 부린 것(회사차원인지 개인적인 차원인지)인지 파악하려면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전에)논의하는 건 비공개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영주 이사장 또한 “녹취록이 다 나왔다고 하는데 MBC는 짜깁기했다고 한다. 전문을 중간에 자르면 전혀 무슨 뜻인지 달라진다. 녹취록을 구해가지고 이야기하자”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여당추천 김원배 이사는 “녹취록을 구해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같이 했다.

김광동 이사는 “(그 자리에서)청탁이나 거래가 있었던 것을 전제로 한다든지 거기 관련된 사람들은 다 순수했다고 보는 건 안 된다”며 “최대한 사실관계에 접근을 끝내 놓고, 후속 조치 필요성 등 진상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인철 이사는 “기사는 별로 신빙성이 없다. 전문을 보고 나서…”라고 동조했다. 권혁철 이사 또한 “앞뒤를 잘라내고 따옴표만 보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방문진에서 어떤 조치를 하기 위한 사전단계 절차를 밟는 것이다. 조치를 하기 위해서 조치할 만한 상황이냐 혹은 내용이냐 혹은 객관적이냐 중립적이냐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제가 지금 우려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1년 몇 개월 정도 전의 일이고, 장소도 저녁 먹으면서 지극히 사적인 자리에서 1년 몇 개월 전에 한 것이고, 비밀리에 녹취된 것이 발표된 거다. 그 발표도 정치권에서 특정 국회의원에서 발표한 것이고 이것을 보도한 일부 매체들도 제가 보기에는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일부의 편향을 가진 매체들이 보도했다. 매체는 정확한 것(보도)이냐. 내용 전체가 왜곡된 것이냐”_김광동 이사

사실 따지고 보면 녹취에 등장하는 고영주 이사장과 김광동 이사는 방문진 해당 안건에 대해 ‘기피대상자’이다. 그런 김광동 이사가 보도한 매체들의 편향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 추천 이사들 간 공방은 계속됐다.

야당 추천 이완기 이사는 여당 추천 이사들에 대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지나치게 팽배한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여당 추천 김광동 이사는 “(보도한 매체들은)중립적 언론은 아니었다”고 재차 입장을 밝혔다. 여당 추천 고영주 이사장은 “(MBC녹취록과 관련한 당사자 출석 등 확인절차는)시급하지 않다”고 했으나, 야당 추천 이완기 이사는 “MBC 이 문제는 빨리 해결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야당 추천 최강욱 이사는 “반대편에서 이런 보도가 나왔으면 어떻겠느냐”며 “거두절미하고 (백종문 본부장은)발언한 사람이다. 그 사람을 데려다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강욱 이사는 △MBC녹취록 공식 요청, △신문기사에 대한 내용과 회사 반박 확인, △당사자 출석 및 확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녹취록에 나타난 내용에 대한 전후 사정 설명을 듣기 위해서는 당사자 출석과 확인은 당연히 뒤따라야 할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고영주 이사장은 “망신을 주겠다는 거냐,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거냐”라고 쏘아붙였다. 이는 “증거 없이 해고했다”면서 부당노동행위를 시사한 당사자를 불러 확인해보자는 것을 ‘망신을 주는 행위’로 규정한 셈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여당 추천 이사들이 '당사자 확인'을 유보함에 따라, 이날 방문진은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실에 MBC녹취록 전문과 음성파일을 공식 요청할 것, 관련 보도와 회사의 입장 자료를 공유할 것에만 합의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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