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해직’이 많은 2008년이다.

KBS 이사직 사퇴를 거부하다 해직된 신태섭 전 동의대 교수가 있고, 뒤이어 정연주 KBS 사장이 해직됐다. 구본홍 사장 반대 투쟁에 앞서다 해직된 YTN 기자 6명이 있고,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선택권을 줬다가 해직된 전교조 소속 교사 7명이 있다.

YTN 기자 해직은 전두환 정권 이후 최대 규모의 언론인 강제 해직이며, 전교조 소속 교사 해직은 지난 1999년 전교조 합법화 이후 처음 있는 대규모 중징계이다. 이번 징계로 초등교사 2명과 중학교 교사 1명은 파면, 초등교사 4명이 해임됐다.

눈발이 제법 굵어질 무렵인 지난 22일 저녁 8시30분, ‘2008년 어떤 해직자들의 소박한 송년회’가 광화문 근처에서 열렸다. <독설닷컴>고재열 기자의 주선으로 마련된 이날 자리에는 YTN 해·정직 기자 5명과 전교조 해직 교사 3명이 함께했다.

▲ YTN노조원들과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서로 인사하고 있다. ⓒ송선영
이들은 “‘공정방송’과 ‘참교육’이라는 상식을 요구하다 ‘해직’ 통보를 받은 극히 평범한 기자와 교사”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은 평범한 이들에게 ‘투사’ ‘열사’가 되게 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기자’와 ‘교사’로서 각각 취재현장과 교육현장에 있어야 하는 이들이 ‘해직’이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만나선지 처음엔 제법 ‘뻘쭘한’ 모양이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언론노조 YTN지부 노종면 지부장이 첫 말문을 열었다.

“해·정직자가 되면 회사에 출입할 수 없고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 투쟁을 하기 위해 회사에 나가고 있는 우리는, 적어도 현장에서 격리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학교를 갈 수 없게 된 선생님들 보다는 행복한 것 같다. YTN노조와 선생님들의 사정은 닿아 있다. 그렇기에 전혀 모르는 사람의 아픔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힘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다.”

윤여강 교사는 “저는 역사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진실을 알리려 노력한다. 진실을 알리는 측면에서는 언론도 중요하다”며 “탄압받고 불의한 것에 맞서 싸워 알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이번 일을 겪으면서 좀 더 알게 됐다. 같이 힘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서울 프레스센터 근처 한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은 ‘뻘쭘함’을 금세 잊고 ‘해직’이라는 시대의 아픔을 공유한 채 그들의 공통점을 서서히 찾아갔다.

정상용 교사는 “저쪽(학교와 교육청)에서는 학생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섬뜩할 정도로 아이들을 수단으로 생각한다”며 “평범한 교사와 평범한 사람마저 ‘해직’ 교사와 기자가 되어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게 이명박 정권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에 노 지부장은 “15년 동안 같이하던 선배들이 우리를 대하는 것을 보면 ‘이제 우리가 기자가 아니구나’ ‘후배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을 이었다.

▲ YTN노조원들과 전교조 소속 교사들, 블로거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송선영
해직 통보를 받은 현덕수 기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현 기자의 아내는 교사이다.)

“투쟁에 내몰린 사람들은 처음부터 투쟁을 준비했던 것이 아니다. 시대가 이렇게 만들었고, 2008년의 아픔을 극명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해직된 선생님들을 만나고 싶었다. 사실 이 자리에서 아내가 전교조 교사라는 걸 밝히는 게 두려웠다. 내가 해직되었을 때 ‘그런가 보다’ 했다는 아내가 이번만큼은 동료들의 해직을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윤여강 교사는 “해직된 교사들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로 대단한 투사들이 아니고 해직을 각오하고 무엇을 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전교조 교사로서가 아니라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줄 영향을 생각해 기본적인 것을 했을 뿐인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호 기자도 한 마디 거들고 나섰다.

“평범한 기자였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명해졌다. 진짜 나는 민주투사도 노동운동가도 아니다. 그저 ‘민주주의가 싫지 않다’라고 말하는 수준의 사람이었고, 노조의 지침이 옳다고 생각해 따르다가 이 지경이 됐다.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지극한 상식으로 대통령 특보 출신이 오면 공정방송을 못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 단지 그것 하나였다. 선생님들의 주장도 단순한 상식선에서 아이들을 교육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참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식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기에 저희들은 반드시 이길 것이다.”

설윤주 교사도 “솔직히 이 자리에 오는 게 부담스러웠다”며 “기자들이 ‘다음에도 일제고사가 있으면 거부할 거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했다. 거부한 게 아니라 교사로서 ‘선택권’을 부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 YTN노조원들과 전교조 소속 교사들, 블로거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송선영
‘해직’된 이들은 서로를 향해 “힘내라”며 응원의 말을 주고받았다. 처음 그들은 ‘해직’이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서로를 소개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직’이 2008년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극히 상식적인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투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십여 년간 함께하던 회사 선배들이 “이제 더 이상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매몰차게 대하는 것을 봐야 하는 YTN노조원들과, “우리 선생님 보내지 마요”라고 우는 아이들을 뒤로 한 채 학교 관계자들에게 매몰차게 쫓겨나야 하는 전교조 소속 해직 교사들은 많이 닮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