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는 여전히 강세다. 일일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의 막장화는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제는 일반 시청자들의 DNA마저 막장으로 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막장의 진화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드라마 왕국'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SBS가 적극적으로 이런 변형된 막장을 선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의외다.

리멤버는 결코 시그널이 될 수 없다;
정의를 상품으로 만들어 '정의 팔이'하는 드라마의 한계

막장은 사회를 반영한다. 막장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국민이라는 점에서 사회적인 흐름이 막장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5년 방송된 <용팔이>는 연말 SBS 시상식에서 대상 등 주요 상을 휩쓸었다.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막장이었지만 큰 성공을 거뒀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스타를 앞세운 초반 인기몰이는 성공의 주요 이유가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그 황당한 상황들마저 아무렇지도 다가왔던 듯하다. 이런 잘못된 신호는 2016년에도 SBS에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로 큰 화제를 모았던 SBS는 영화 <변호사>에서 공동 시나리오를 담당했던 작가를 앞세워 TV판 <변호인>을 선보이는 듯했다.

▲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을 등장시켜 악랄한 재벌을 응징한다는 초기 설정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4회 이상을 넘길 수 없는 이야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초기 이야기 이후 더는 진전이 없는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끌기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드라마들엔 지독하고 악랄한 악역이 등장한다. 이야기 구조가 엉망이 되더라도 시청자들은 그 안에 등장하는 악당을 비난하기 위해 드라마를 다시 찾는다. 욕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그렇게 마음껏 욕할 수 있도록 말도 안 되는 전개를 만들어간다. 이런 막장극의 공식은 <용팔이>와 <리멤버-아들의 전쟁>에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

이들 두 드라마에는 소위 대중을 이끌 스타들을 전면에 배치했다. 그렇게 배치된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홍보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일반 막장 드라마와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막장 드라마로 불리는 드라마는 스타가 필요 없다. 스타보다는 작가의 의중을 그대로 연기할 연기자만 필요할 뿐이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스타 마케팅을 통한 낚시질과 함께 '정의'를 전면에 내세운단 점이다. 현재와 같은 사회에서 '정의'는 시청자들을 가장 흥미롭게 이끄는 주제이기도 하다. 마치 반공을 앞세운 시대 '정의사회 구현'을 외치듯 이들 드라마는 '정의'가 중요한 주제어이다.

'정의'가 이들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어이기는 하지만, 그저 이를 이용할 뿐 제대로 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용두사미'라는 점에서 이 두 드라마는 닮았다. 둘 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던 작가를 영입해 드라마로 만들었다는 공통점과 그럴 듯한 초반과 달리 점점 의미 없는 시간 때우기식 전개까지 다르지 않다. 마치 썀쌍둥이 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 SBS 드라마 <용팔이>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의사와 변호사라는 직업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의 절대적인 능력과 이를 활용한 이야기 전개는 한 작가가 쓴 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이 정도 되면 작가의 창작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기획이 만든 결과로 여겨진다. 작가 드라마가 아닌 단순한 기획 드라마가 연이어 성공했다. 이런 성공은 SBS에 잘못된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작품의 완성도는 상관없는, 그렇고 그런 드라마 양산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큰 문제로 다가온다. 수백 명의 노비를 거느린 황금수저를 앞세운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는 SBS는 이제 '정의'라는 수식어도 의미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야기의 완성도보다는 수익에 중점을 둔 이 드라마들은 당연하게도 소위 말하는 '고구마 드라마'가 될 수밖에는 없다. 어차피 보기 시작한 드라마는 손쉽게 포기하지 못한다는 시청자들을 이용한 제작진의 선택은 두 번의 성공을 거뒀다. 물론 이후에도 약간 변형된 이와 같은 드라마가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

정치판이 엉망이 된 현실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이 보이지 않듯, '막장 드라마'가 지배하고 있는 TV도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저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이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한류 드라마의 끝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과거 홍콩 영화가 그랬듯, 동어반복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게 정치든 드라마든 말이다. 이런 한심한 장사를 하고 있는 지상파와 달리, tvN의 완성도로 승부를 보고 있다. 케이블이라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채널이라는 점도 한 몫하고 있지만, 그들은 극의 완성도가 곧 성공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믿고 있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응답하라 1988>과 <시그널>에서 알 수 있듯, tvN의 선택은 옳았다. 케이블의 한계를 벗어나고 극의 완성도를 극대화하면서 시청률도 올리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지상파가 이야기의 완성도를 버리고 '막장 드라마' 고착화에 집착하는 모습과 달리, 케이블은 본질적인 가치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회적 악에 맞서는 정의를 앞세운 <시그널>은 드라마의 완성도와 함께 시청률도 올리고 있다. 이들의 선택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다. 이미 '막장 드라마'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짜 이야기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결코 <시그널>이 될 수 없다. 악랄한 재벌을 응징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들어 막장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고 변명을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비겁한 변명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미 기획된 이야기를 기계처럼 공식을 적용해 쓰는 방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결국 본질을 잃은 이야기는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는 없다. 작가의 능력보다는 기획의 힘으로 이득이 큰 장사를 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의 반복은 결국 시청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질 것이다. <시그널>이 장사가 되기 힘들다며 외면했던 SBS. 그들은 변화된 막장으로 돈벌이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이 영원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시그널>이 만약 SBS에 편성되었다면 이 드라마 역시 '용두사미'로 전락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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