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KT로 돌아간다. 이해관 전 KT새노조 위원장 이야기다. 입사 이후 절반 이상을 해고자 신분으로 지냈고, 나머지 절반을 노동조합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그는 이른바 ‘학출’ 운동권이다. 1980년대 후반 학생운동의 슬로건은 ‘현장 속으로’였고, 그는 위장취업을 했다 해고됐다. 그런 그가 현실과 타협한 곳이 바로 한국통신이었다. 그는 1989년 고졸 공채로 한국통신에 취업했다. 그리고 1994년 한국통신 노동조합의 부위원장이 됐고, 1995년 이른바 ‘한국통신 사태’ 때 해고됐다(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한국통신 노조를 ‘국가전복세력’이라 비난했다).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가 한통 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기 전까지 그는 12년을 해고자로 살았다. 해고기간에도 그는 노동조합 활동을 했고, 2007년 복직 뒤에는 KT새노조 설립을 주도했다. 지금도 그는 KT새노조 대변인이다.

최근 3년 동안 그는 또 해고자 신세였다. 이해관 전 위원장은 지난 2011년 KT가 ‘제주 7대경관 선정 전화투표’를 진행하면서 국내전화를 국제전화로 속이고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내용을 언론에 알렸고, 2012년 말 해고됐다. 당시 회사가 내세운 해고사유는 무단조퇴, 무단결근 등이었으나 국민권익위원회(당시 위원장 이성보)는 2013년 4월 이해관 전 위원장의 해임은 공익신고 등을 이유로 받은 불이익 처분이라며, KT에 해임조치를 취소할 것을 주문했다. KT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달 28일 대법원(재판장 이기택 이인복 대법관, 주심 고영한 김소영 대법관)은 KT의 상고를 기각했다. 앞서 1, 2심은 권익위원회의 보호조치 결정에 대해 “절차적으로 적법할 뿐만 아니라 보호조치결정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 실체적으로도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또한 이해관 전 위원장의 행위가 ‘공익신고’에 해당하고, KT가 이 전 위원장을 해임한 것은 공익신고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판단했다.

▲ 이해관 전 KT새노조 위원장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해관 전 위원장은 “설렌다”고 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자존감 있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복직하면 그런 마음으로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조직하겠다. 그래서 설렌다”고 말했다. 그리고 KT에 돌아가 다시 노동조합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년을 5년 남짓 앞두고 어떤 성과를 남길 수 있을까. 그는 노동운동이 ‘자기들 복지만 생각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며 노동자와 시민이 일상에서 맞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해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을 예로 들었다.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한 공정인사 지침(일반해고 지침)은 KT가 지난 2005~2006년부터 시행한 C-Player 퇴출 프로그램의 사회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동조합과 정치권이 함께 KT의 사례를 살펴보고 ‘노동자의 고립사’를 막아야 한다는 게 이해관 전 위원장 생각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법원 판결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

KT 주관으로 제주 7대 세계경관 투표가 진행됐다. 회사는 전국민을 상대로 홍보했다. 번호는 국제전화 번호였지만 실제는 국제전화가 아니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래서 언론에 제보했다. 그랬더니 회사는 가평으로 전보를 보내고 해고까지 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KT에 보호조치를 하라고 했는데 KT는 행정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소송 끝에 회사(KT)가 패소했다. 회사에 돌아가게 됐다.

-왜 언론에 제보하게 됐나. 또 회사는 왜 해고라는 강수를 뒀을까 생각한 적 있나.

당시 이석채 전 회장의 연임 문제가 있었다. 이 전 회장은 지금 배임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1심 무죄, 2심 진행 중). 형사처벌이 되느냐와 무관하게 내부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경영행태를 보였다. 부동산 자산을 헐값에 매각했고, 아무런 비전이 없는 회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인공위성도 팔아넘겼다. 낙하산 경영진이 연임을 위해 무리하게 경영했다는 판단을 내렸다. 국제전화 건도 그 일환으로 폭로하게 됐다. 회사가 해고를 한 것은 이런 엉망진창의 상황을 알리는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짜 국제전화만 문제였다면 회사가 깔끔하게 사과하고 보상하면 될 일이었다. 이석채 회장 등 낙하산 경영진의 연임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KT에 다시 돌아가게 됐다. 복직 소회는.

나는 위장취업 세대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진보노동운동단체협의회에서 활동했고 위장취업을 했었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고 해고됐다. 당시 민주화가 진행 중이었고 대중적인 활동 진지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감옥에 두 번 다녀왔었는데 노태우 정부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판사고시에 합격시켜주는 일을 보고 ‘공기업 취업은 문제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고용하는 기업은 공기업 한국통신이었다. 들어가서 노동자들의 진지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가 지금 많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그때 그 마음과 같다. 먹고 살기 위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자존감 있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복직하면 그런 마음으로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조직하겠다. 그래서 설렌다.

-2012년 말 해고된 뒤 3년 동안 뭘 했나.

통신공공성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기 위한 활동을 해왔다. 참여연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과 함께 통신비 인하를 위한 법안도 마련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한국은 왜 헬조선이 됐을까, 여기에 사회운동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고민하면서 세미나를 했다.

-KT새노조를 주도했다. 굉장히 소수노조다. 이걸 기획한 목적인 뭔가.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만 해도 자본과 정권이 민주노조를 비판하는 핵심은 ‘노조가 정치투쟁만 한다’는 것이었다. 노조가 순수하게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닌 정치적인 목표를 갖고 투쟁한다는 이야기다. 최근에는 민주노조 운동을 두고 ‘자기들 복지만 생각한다’고 비난한다. 지금 노조 운동은 이런 비판에 직면해 있다. 나는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것을 문제를 정치적 변화로 만들어나가려는 의지가 무너지면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통신비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하고, 국민을 등쳐먹는 기만적인 영업행위가 횡행한 통신시장이다. 그런데 이런 일상의 문제에 대해 통신노동자 누구도 문제제기하지 않는 게 단적인 예다. 민영화 이전 KT 노동자들은 통신공공성을 위해 싸웠다. 통신은 재벌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보편적 서비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통신노동자의 노동은 공공성을 위한 아주 소중한 노동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른 문제제기가 사라졌고, 아주 소수라도 뭉쳐서 이런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KT새노조다.

-KT는 2005~2006년께 이른바 ‘C-Player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명예퇴직을 거부한 114노동자에게 전신주를 오르도록 하고, 성과가 없으면 경고하고 퇴사를 유도했다. ‘학대해고’라고도 한다. 2014년에는 인사고과 F를 두 번 연속 맞은 노동자에 대해 면직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정책을 이미 선제적으로 도입한 게 KT다. 그리고 민영화 이후 수만명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런 회사에 다시 돌아가게 됐다.

통신산업은 지난 20~30년 동안 노동집약에서 기술집약으로 바뀐 대표적인 산업이다. 고용유발산업에서 노동절약업종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퇴출프로그램이 생겼고, 노조는 묵인했다. 어떻게 이런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서구 같으면 연금을 조기지급한다든가 하는 사회적 해결책을 통해 고용의 충격을 사회적으로 흡수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같은 제도가 없다. 노사관계로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 KT는 다른 민간기업에 비해 해고를 잘하는 회사는 아니다. 이유는 새노조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KT 안팎에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게 사회적 해결책을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기업 내에서만 해결책을 찾다가는 대안이 나올 수 없다.

-CP프로그램은 저성과자 해고의 ‘사회적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KT에는 ‘죽음의 기업’이라는 오명이 붙어 있다.

저성과자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불필요한 인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정부와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맞는 일을 찾아줘야 하는 것이다. 앞서 유럽을 말했지만, 유럽의 통신기업도 한국의 114처럼 많은 노동자를 내보냈다. 그런데 그 노동자들이 우리처럼 격렬하게 저항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그 불만과 문제제기를 사회적으로 흡수하려고 했다. 이런 보호장치가 없는데 대통령이 국회에 떼를 쓰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KT에 죽음의 기업이라는 말이 붙은 것도) 노동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정치인들은 노동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오히려 노동을 뭉갠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KT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면 끔찍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노동조합과 이런 정치가 만나야 한다.

-지금 KT 내부 분위기는 어떻다고 보나.

황창규 회장의 마지막 1년이다. 그런데 이석채 전 회장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냉정하게 보자면, 회장만 바뀌었지 변한 게 거의 없다. 이석채 회장이 부동산을 팔았다면 황창규 회장은 계열사를 팔고 있다. 아주 단기적인 발상이다. 좀더 장기적인 비전을 만들기 위한 노사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 직원들의 자존감은 바닥이고,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온갖 편법을 방치하고 있다. 그럴수록 현장 직원들의 자존감은 떨어지고, 노골적인 불법도 순응하게 된다. 이런 회사에서 ‘경쟁력’은 나올 수 없다.

-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에도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뭔가.

방송통신이 기업의 돈벌이 수단이 되면 안 된다. 독점이 강화되면 더욱 그렇게 된다. KT의 구조조정 역사는 통신이 돈벌이가 된 과정이다. 경쟁이 격화될수록 근로조건은 나빠지고 구조조정을 맞게 된다. 이 건으로 방송통신실천행동 대표로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났다. 그런데 이들은 이번 거래를 ‘기술중립적’으로만 본다. IPTV가 케이블에 기술적으로 앞서 있으니 인수합병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이다. 기술 문제로만 볼 수 없는데 말이다. 예를 들어, 114노동자 문제는 기술의 문제만이 아니다. 노동에 의존하지 않게 됐으면 정부는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융합이 대세라며 노동의 문제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이게 헬조선이 되는 과정 아니겠나.

- KT 다니면서 행복했나.

위장취업한 공장은 너무 힘들었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비전을 세울 수가 없었다. 삶의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 곳이 필요했고, 내게 KT는 그런 곳이었다. 처음 KT에 입사할 때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부터 또래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 일했다. 서로가 서로의 멘토였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처럼 따뜻한 분위기였다. 동료가 늦잠을 자면 집에 데리러 가곤 했다. 이게 지금까지 싸움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이다. 지금 KT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고립사’로 숨지고, 팀장은 실적을 압박하는 역할만 하고, 회사는 경쟁을 부추기고 고과를 매겨 축출하지만 이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다시 돌아가서도 이 기억을 갖고 운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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