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연일 시끄럽다. 한나라당은 다수당의 물리력을 과시하며 한미FTA를 단독으로 상정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는 날치기 상정이라며 원천무효를 주장하고며, ‘한·미 FTA 비준동의안 단독 상정 및 법안심사소위 회부 결정’에 대한 효력정지신청 및 심판청구서를 21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문제는 한·미FTA만이 아니다. 이른바 MB악법이라 불리는 114개의 법안들을 한나라당이 연내 처리 입장을 밝히면서 25일까지만 대화를 시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황에서 국회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 중 단연 크게 문제되는 것은 다른 아닌 미디어 관련 법안으로 꼽히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미 신문·방송 겸영 허용, 공영방송법을 통한 MBC 민영화, 비친고죄의 사이버모욕죄 신설 등을 공공연하게 주장해왔다.

이 와중에 공정언론시민연대(이하 공언련)이 지난 20일 발표된 ‘편파방송 없는 세상을 그리며’라는 보고서는 ‘복잡한’ 이유로 주목할 만하다. 왜 그들은 지금 시점에서 이런 보고서를 발표하게 된 것일까. 공언련은 지난 9월 출범 때도 촛불시위 당시 공영방송의 편파 보도를 주장하는 모니터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당시 보고서와 비교해봤을 때 4개의 사건으로 범위만 늘어났을 뿐 크게 다르지 않은데 왜 다시 그들은 보고서를 발표해야만 했을까. 그것도 왜 하필 이때에.

먼저 보고서에 따르면 KBS와 MBC의 메인뉴스와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2002년 병풍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2007 BBK 사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촛불집회에 대한 보도를 모니터한 결과 “편파보도가 심했다”고 밝혔다. 공언련의 발표는 22일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에서 모두 비중 있게 실렸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펜을 들었을까. 먼저 이들의 보도행태부터 살펴보자.

◇조선일보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 “방송의 다양화 필요”, “MBC 정체성 따져봐야”
조선일보는 ‘병풍보다 BBK 때 편파방송 심했다’는 제목으로 공언련의 모니터 결과를 실었다. 기사에서는 “2007년 대선에서 불거진 ‘BBK사건’의 경우, KBS는 ‘94.7% 대 5.3%’, MBC는 ‘98.8% 대 1.2%’의 비율로 정동영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한 제목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또한 “하지만 이들 방송의 고질적인 ‘편파’ 행태는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광우병 사태가 터진 후 KBS ‘뉴스9’에서 촛불시위대의 입장을 옹호하는 제목과 정부 측 입장을 옹호하는 제목의 비율은 77.8% 대 22.2%의 비율로 나타났다”며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라며 “방송의 다양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음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또한 ‘PD수첩 왜곡 낳은 MBC의 정체성 혼란’라는 사설을 통해 “MBC는 공영방송을 표방하지만 사실은 방송문화진흥회가 주식의 70%, 정수장학회가 30%를 갖고 있는 주식회사다”라며 “그러나 이들은 지금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어 MBC는 사실상 주인 없는 회사”라고 했다. 때문에 기형적 구조가 된 MBC 문제를 정면으로 따져볼 때가 됐다며 사설을 마쳤다.

▲ 22일자 조선일보 캡처

◇중앙일보 “MBC가 KBS보다 편파방송 심해”, “주인없는 MBC 노조가 경영에 관여”, “미디어 분야의 규제완화는 일자리 창출로 이를 반대하는 MBC는 방송사 이기주의”
중앙일보는 ‘MBC·KBS, 병풍부터 광우병까지 일관되게 편파 보도’라는 기사를 통해 “광우병 사태 관련 보도에선 시위대 입장을 옹호하는 제목이 KBS 238건, MBC 293건이었다”며 “MBC가 편파 방송이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공언련의 모니터를 인용했다. 또한 중앙일보는 “주인없는 MBC … 노조에 휘둘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외대 김우룡(언론정부학부) 교수의 “MBC는 민영도 공영도 아닌 불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데다 노조가 경영권에까지 개입하고 있다”라고 말해 MBC의 편파방송 뒤에는 ‘노동조합’이 있다는 주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중앙일보는 여기에 더해 1면 머릿기사를 “미디어 분야의 규제 완화 흐름은 일자리 창출 등 미디어 산업이 갖는 부가가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서다”라고 말했다. 또한 선문대 황근(신문방송) 교수의 말을 인용해 “한나라당에서 미디어 개정법안을 발의하는 등 미디어 정책의 틀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으나 MBC 등 일부 방송사는 “방송 장악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라며 “이를 놓고 무조건 방송 장악, 공익성 훼손이라고만 외치는 것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전형적인 방송사 이기주의”라고 주장했다.

▲ 22일자 중앙일보 캡처
◇ 동아일보 “전파는 국민의 것”, “신문방송 융합이 여론 독과점 낳을 것이라는 주장은 낡은 사고”
동아일보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시위대 측에 유리하게 편파 보도했다”고 공언련의 모니터 결과를 전하고 있다. “4월 18일∼6월 26일 진행자와 기자가 문답 형식으로 진행하는 ‘앗뜨 뉴스’ 코너의 331개 뉴스 중 쇠고기 협상 관련 뉴스가 190건(57.7%)으로 절반이 넘었으며 이 중 시위대 측에 유리한 뉴스가 81건(42.6%)으로 정부 측에 유리한 40건(21.1%)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사설 “MBC와 KBS, '전파는 국민의 것' 자각부터 하라”에서 “19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에서 방송-통신 융합을 골자로 하는 법안에 대해 “재벌 기업과 대형 신문에 지상파 방송사를 안겨주는 특혜”라고 주장“했다며 ”그러나 이런 뉴스부터가 국민 소유인 전파를 자신들의 집단이기주의를 위해 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신문 방송의 융합이 여론 독과점을 낳을 것이라는 주장은 인터넷과 케이블 미디어가 만발한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통용될 수 없다“며 ”방송사는 공공자산인 전파 이용권을 일정 기간 위임받았을 뿐이다. MBC와 KBS는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기 전에 전파는 국민의 것이라는 자각부터 해야 옳다“라고도 전했다.

▲ 22자 동아일보 사설 캡처
공영방송의 문제아 KBS와 MBC(?)

조중동이 공언련의 모니터 결과로 주장했으니 이를 반박하기 위해 나 또한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련다. 오늘 조중동에는 없었으나 경향신문에서는 있었던 기사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미디어미래연구소의 ‘2008 Media Awards 평가 결과’이다. 연구소는 지난 21일 한국언론학회 전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신뢰받는 미디어’, ‘가장 유용한 미디어’로 KBS가 뽑혔다고 전했다. 평가 결과 MBC 역시 신뢰성에서 5위, 공정성에서 4위, 유용성에서 3위를 차지했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이 조사 결과 어디에도 조중동의 이름은 없다.

▲ 21일 미디어미래연구소가 발표한 2008 Medai Awards 평가 결과
공영방송 KBS와 MBC에 대해서 공언련은 편파였다고 한 반면 미디어미래연구소의 설문 결과 두 방송사는 공정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렇듯 두 조사가 다르게 나타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공언련의 모니터는 KBS와 MBC만 대상으로 했다. 그 평가의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보도의 제목을 통해, 양쪽 의견에 대한 인터뷰 수와 인터뷰 시간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공정했다’와 ‘공정하지 않았다’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인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서 국민들 다수가 반대했었고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10%대 밑으로 떨어졌는데 뉴스보도에서 찬성하는 사람 3명 반대하는 사람 3명을 인터뷰하는 것이 공정했다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정말 언론으로 인해 피해받고 있는 정치적 소수자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뭐 묻은 개 나무라는 조중동

조중동은 한 목소리로 공언련의 모니터 결과를 보도하며 현재 공영방송이 공정하지 못하고 편파방송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보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톤에서의 차이만 있을 뿐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이 보도에 일관성이 있었다. “이러한 편파방송을 바꾸기 위해서는 방송의 다양화도 필요하다”, “MBC는 공영방송을 표방하지만 사실은 주인 없는 주식회사이며 이 회사를 노조가 경영에 간섭하면서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이번에 상정한 법은 미디어 분야의 규제 완화를 통해 일자리 창출 등 미디어 산업이 갖는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신문 방송의 융합은 세계적 흐름이다”, “그러나 MBC에서는 이를 방송 장악, 공익성 훼손이라고 외치는데, 이것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전형적인 방송사 이기주의이다” 등이 조중동에서 이구동성으로 읽혀지는 메시지다.

그렇다면 조중동이 외치는 것들이 이루어졌을 때 정말 언론이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묻는 순간 우스워진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정리하면 ‘규제 완화’, ‘신문·방송 겸영 허용’이다. 그렇다. 결국 그들이 ‘공정성’을 내세워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신문들도 방송하게 해주세요”였다. 그렇다면 보도채널로의 조선방송, 중앙방송, 동아방송이 생기는 것인데 그런 사회가 언론이 다양해지고 공정해지는 것이란 말인가. 결코 아니다. 공언련은 KBS와 MBC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보다 더 편파적인 것은 조중동이기 때문이다. 미디어미래연구소에서 조중동이 공정성 등에서 순위에 오르지 않았던 것은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데이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마치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형국이다.

그러나 조중동의 무기는 늘 ‘국민’에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다”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동아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전파는 국민의 것이며 공영방송은 공공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전파는 국민의 것이라는 자각부터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들의 의도대로 본다면 결국 조중동은 ‘국민’의 방송을 자신들이 사유화하고자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방송에 진출하고 싶었을 뿐이고, ‘국민’이라는 이름을 팔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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