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견 혼탁한 상황이지만 결과는 보이는 듯 하다. 명색은 ‘의무보육’으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국공립어린이집은 5%에 머물고, 국공립유치원은 50%를 간신히 넘는 상황에서 이들 이해관계 집단의 화살이 지방교육청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집단 행동은 명확하게 누리과정예산 편성을 미루고 있던 교육감들과 지방의회를 향하고 있다. 결국 복지 제도는 결과론적인 ‘무상'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공급하는 과정의 ‘공공성'을 통해서 달성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4조원에 달하는 예산싸움이 전개되는 양상이다. 이미 다른 글(‘보육대란, 국가에 책임감을 묻는다')에서 당초 이 사업이 이명박 정부의 쪽지예산에서 시작되어 박근혜 정부의 공약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짚은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 논란이 가중되고 있고,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41조를 내려줬는데도 왜 편성을 안하는가?’라는 발언 이후 정부와 관변단체, 또한 앞서 언급한 민간어린이집과 민간유치원의 이해관계자들이 집중적으로 교육청을 공격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예산과 재정의 과정은 무미건조한 숫자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정치 과정이 자리잡고 있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이 부분에 주목해서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예산의 정치적 측면을 짚어 보고자 한다.

‘누리과정 편성은 교육감 책임'? ….언제부터?

현재 정부에서 교육청을 공격하면서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논리는 현행 <영유아보육법>의 시행령 상에 무상보육과정에 대한 예산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른 보통교부금으로 부담한다고 명시한 부분이다. 즉, 법에 교육청이 편성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감들이 직무를 유기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현행 <영유아보육법>제34조(무상보육)은 1항을 통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유아에 대한 보육을 무상으로 하되, 그 내용 및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상보육에 대한 책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교육감의 책임론이 등장했을까? 여기에 무상보육을 둘러싼 정치과정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무상보육 쪽지예산을 끼워 넣었던 2011년, 정부는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을 슬그머니 개정한다. 재미있는 것은 기존 시행령에는 상위 법의 조문을 준용해서 “영유아보육사업에 대한 지원 비율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로 명시함으로서 국가보조사업으로 되어 있던 것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전환한 것이다. 원래 국고보조사업이었던 무상보육사업의 책임을 교육청으로 넘긴 것이다. 그래도 법적인 상식은 있었는지, 기존의 영유아 무상보육을 ‘유아 무상보육'으로 규정해, 현재 교육청에서 관할하는 유치원만을 대상으로 했다. 그런데, 이것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에 ‘영유아 무상보육'으로 바뀐다.

2012년과 2013년의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차이

현행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기관 및 교육행정기관을 설치 경영함에 필요한 재원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가가 교부하여 교육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로 규정하고 있다. 교육기관과 행정기관이라 함은, 학교와 교육청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유아교육법>에 따른 유치원은 몰라도 <영유아보육법>에 따른 어린이집이 교육기관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래서 만 5세까지의 유치원 과정에 대한 무상보육을 실시할 때 이를 지방교육교부금으로 충당하도록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 시행령 개정으로 어린이집이 이 대상으로 포함되면서 법적 쟁점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2012년 11월 12일 법무법인 청목과 바로에 법률 자문을 의뢰한다. ‘법률개정없이 유아교육법 시행령,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 개정만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보육료 지원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기에 대해 법무법인 바로는 ‘유아의 법률적 의미가 달라지지 않으므로 다른 법률에 의한 배제가 없다면 위법하지 않다. 다만 법에서 세부적인 사항을 정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럼에도 시설의 차이를 이유로 무상교육혜택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는 해석과 ‘보육료가 어린이집이 아닌 학부모에 대한 지원이기 때문에 보육기관/교육기관인지 검토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제1조에 어린이집을 명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덧붙인다. 사실 이 법무법인의 해석은 중요한 법적 쟁점을 담고 있다. 유아의 법률적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대상에서 의도적으로 ‘영아'를 제외함으로서 가능하다. 교육과 보육이 상당부분 겹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해야 하는 기능이 다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한 시설은 보건복지부가 다른 시설은 교육부가 관할할 이유가 있는가? 법무법인 바로의 해석에 따르면, 오히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가 두 개의 시설을 별도로 관할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 따라서 이 법률해석은 지극히 편향적이다. 특히 청소년의 법적 기준만 하더라도 <청소년기본법>에서는 9~24세 이하, <청소년보호법>에서는 19세 미만, <형법> 상의 미성년자는 14세 미만 등 상이하다. 그렇다면 각 법률상 기준으로 청소년의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고 이에 따라 정책대상이 달라진다면 이것 역시도 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음으로 기관에게 바우처로 지급하더라도 이것은 보호자의 신청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어린이집이 교육기관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해석하는 부분을 보자. 만약 이 해석이 맞다면 현행 바우처 체제 내에서 보호자의 어린이집 선택권이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한다. 실제로 그런가? 명목상으로는 보호자에게 지급하는 것이지만, 이에 대해 보호자가 가지고 있는 재량권이 거의 없다면 이는 사실상 기관지원으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교육부가 받았다는 법률해석은 좋게 말하면 법률적 융통성을 최대한 보여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왜곡한 것이다.

41조를 줬는데 무상보육 편성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에 교육교부금으로 41조를 내려보내줬는데 교육감들이 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지만, 새누리당은 이를 근거로 ‘그 돈은 어디다 썼냐'고 현수막을 내다 걸었다. 재미있는 것은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정부를 지지해왔던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의 행태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이야기를 그대로 이야기하기엔 민망했는지 이에 대한 사설이나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이를 외부필진을 통한 기고나, 기자 메모 형식으로 언급했다.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관련 칼럼

우선 지난 28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김은설 육아정책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의 글을 보자. 이이는 본인이 2012년 누리과정 도입때부터 관련 연구를 맡아왔으며, “중앙정부가 누리과정에 필요한 지출 소요 4조원 전액을 시도 교육청에 보냈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누리과정에 필요한 예산은 도입 당시부터 교부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시도 교육청도 누리과정 도입 이후 2015년까지 교부금으로 누리과정을 문제 없이 지원해왔다"고 말했다. 일단 교부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었다는 주장은 앞서 시행령 개정 현황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고, ‘문제 없이 지원해왔다'는 평가는 바빠서 그동안 신문을 보지 않았던지 아니면 ‘문제'라는 단어의 뜻을 독창적으로 이해하는 감수성의 소유자로 이해하고 말자.

중요한 것은 누리과정에 필요한 예산 4조원을 다 내려줬다는 주장이다. 정말 그런가? 현행 법령에 의하면 교육교부금은 보통교부금과 특별교부금으로 구분되는데, 이 중 보통교부금은 기준재정수입액이 기준재정수요액에 미달하는 지방자치단체에 그 미달액을 기준으로 하여 총액으로 교부하는 재원이다. 즉, A라는 지역의 교육청과 관할 학교등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필수경비 중 자체적으로 마련하기 힘든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체 교부금의 96%에 달한다. 그외 4%가 특별교부금이라는 명목으로 ‘교육관련 국가 시책사업'이나 ‘지역의 특별한 교육수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 만약 김은설 실장의 주장이 맞다면, 기존 보통교부금에서 필요한 경비인 4조원이 ‘순증'되어야 한다. 적어도 만5세만 도입되었을 2012년도와 이후의 차액이 그 정도 되어야 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증감추이(2008~2015) / *교육부 발표자료 재구성

구분

’08년

’09년

’10년

’11년

’12년

’13년

’14년

’15년

교부금

(조원)

33.2

30.6

32.4

36.1

39.2

40.8

40.9

39.5

(41.4)

전년도 대비 증가율(%)

23.4

△8.0

6.1

10.2

8.6

4.1

0.2

△3.3

실제로 살펴보자. 2012년에 3조원이 순증했다. 당시 만 5세에 대한 무상보육이 도입되었던 때다. 그 밖에 경직성 경비의 상승률은 포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점차 대상이 늘어난 2012년 이후는 어땠는가? 정말 누리과정의 대상자가 늘어난 만큼 교부금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을까? 앞서 살펴봤듯이, 교육교부금의 96%는 정부가 정한 ‘기준재정수요액'에 따라 미달액을 지급하는 재원이다. 김은설 실장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게 교부된 재원 중 누리과정에 우선적으로 편성하는 것은 재량범위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기준재정수요액이 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를 테면 김은설 실장이 근무하는 육아정책연구소에 대해 예산총액의 증가없이 연구비 지출비중을 높이라고 주문만 한다면, 자신의 수당을 줄이고 청사 청소도 일주일에 한번만 하면서 경비를 절약해 연구비를 충당할 수 있는가? 실제로 <경향신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한 대구교육청의 경우에는 저소득층 학비 및 컴퓨터 지원, 초등 돌봄교실, 기간제 교사 및 시간강사 인건비 1,615억원을 줄였고 대전교육청의 경우에는 교육환경개선사업,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지원, 급식실 현대화 사업비 857억원이 감소된 것으로 드러났다.

▲ 경향신문 28일자 6면 기사

이렇게 수준 미달의 외고로 면피하는 <조선일보>가 있다면, 아예 엉뚱한 기자칼럼을 싣은 <동아일보>는 전형적인 물타기를 보여준다. 송충현 기자의 기명 칼럼 “익명성에 숨은 체면타령"은 서울시의회 좀 더 구체적으로 ‘더민주당 서울시의원'을 다룬다. 조희연 교육감이 요청한 2개월분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 대한 사항인데, 더민주당 의원총회의 상황을 스케치한다. 그러면서 “이들에겐 코앞에 닥친 보육대란을 막는 것보다는 끌려가는 모양새를 보일순 없다는 ‘정치적 체면'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거나 “자녀나 친인척이 누리과정의 수혜 대상인 의원들은 겉과 속이 다른 당내 분위기에 대해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는 소식은 전한다. 말미에 슬쩍 “많은 유치원 원장들은 더민주당이 의총을 열어 이달 내 사태를 일단락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는 언급과 함께 이 칼럼은 마무리된다. 일단 초점은 지방의회다. 사실 이 기자는 이 사태가 벌어진 원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서울시든 교육청이든 빚을 내서라도 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동안 <동아일보>가 무상급식에 대해 보인 태도와 비교해본다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태도의 변화다. 그래서 이 칼럼은 현재 누리과정 예산 논란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서 낱낱히 밝혀지는 것이 부담스러운 보수 언론의 속내를 잘 보여 준다. 가타부타 따지기 시작하면 무조건 박근혜 정부가 불리한 상황에서, 이를 정치적 게임으로 만들어서 관심을 돌리려는 것이다. 누리과정에 혜택을 보는 더민주당 의원을 언급하며 속과 겉이 다르다고 질타하는 모양새는 코미디에 가깝다. 정치인이라면 사적 이해과 공적 이해를 구분하는 것이 기본일 텐데, 이 기자는 주변에서 그런 정치인을 본적이 없어서인지 이를 ‘표리부동'의 사례로 언급한다.

질 낮은 보도가 만드는 질 낮은 논쟁

▲ 국민일보 28일자 6면 기사

사실 한국 언론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은 어떤 정치적 쟁점도 ‘스포츠'로 만들어버리는 관점에 있다. 이번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갈등도 대개의 구도가 박근혜 정부와 개혁적 교육감 간의 갈등으로 몰고 가고 매일 매일 내놓는 입장을 중계하듯 보도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 수록 복잡다단한 누리과정의 쟁점이 쉽게 휘발된다. 이런 보도의 틈바구니에서 요즘 길거리에 새누리당의 거짓말 현수막이 뻔뻔하게 나부낄 수 있게 됐다. 그나마 지난 28일자 <국민일보>가 누리과정을 둘러싼 정책의 변화를 잘 짚어 냈다. 특히 유아교육과 보육의 정책적 통합은 부처 이기주의와 관련 이익단체들 탓에 진행되지 않은 채 ‘지출책임만 통합했다’는 분석은 어떤 매체도 다루지 못한 지점이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 가장 유의깊게 봐야 하는 부분은 2011년 기준 중기 재정전망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지방교부금이 연평균 8%가량 늘어날 것으로 봤다는 점이다. 즉, 세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제한 재정 전망 속에서 누리과정 정책이 결정되고 집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누리과정을 집행하는 교육부나 보건복지부, 무엇보다 청와대나 기획재정부는 세수 전망치가 예상보다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먼저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시행령을 바꾸고 지방정부에 이어 교육청을 겁박하고 있다. 실제로 기사에서 인용한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는 이번 누리과정 사태의 원인에 대해 “교부금 증가율 전망과 실제가 너무 달라진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라는 코멘트를 했다.

사실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공방은 ‘돈을 줬네, 안줬네'하는 수준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현재 영유아 보육 구조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살펴볼 수 없게 만든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현재 누리과정을 둘러싼 이해관계 집단의 흐름을 보면, 현행 유아교육 및 보육의 공급과정을 개선하지 않는 방식의 정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들은 보육과정의 개선이나 혹은 학부모 참여, 통합교과 및 불필요한 종교식 의례 강요금지 등과 같은 혁신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누리과정의 존속을 유지하는 집단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실 누리과정 논란을 보면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손쉬운 복지정책이 구축하는 이해관계망이다. 무상급식이 도입되어도 일선 학교나 교육청의 급식비리는 여전하고 각종 교육교부금은 교육청과 학교를 매개로 작동하는 부패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누리과정 역시 기존의 보육환경을 개선하기 보다는 오히려 기존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학부모들의 선택권은 나아진 것이 없고, 누리과정이 도입되었다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육의 질이 좋아졌다는 증거도 없다. 이런 가짜 복지정책들이 오히려 복지에 대한 불만과 환멸, 그리고 보수 언론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복지무용론을 강화할까봐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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